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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그들이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 챘어야 해요. 우리 모두 우리 말도 못하고 법을 따르기만 했어요. 그때 그들에게 맞서야 했어요."

<갈색아침> 겉그림.
 <갈색아침> 겉그림.
ⓒ 휴먼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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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갈색 아침>을 다시 꺼내 읽는다. 표지에는 살갗이 갈색인 '나'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이쪽을 본다. 얼굴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림책을 펼치면 단짝 친구 샤를르를 만난 '나'가 나온다. '나'는 카페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쬐면서 느긋하게 향긋한 차를 마신다. 그런데 샤를르한테 키우던 개를 안락사 시켰다는 소리를 듣는다. 새로 법 때문이랬다. 갈색 고양이가 아니면 깡그리 죽여야 한다는 법이다.

정부는 갈색고양이가 새끼도 아주 조금만 낳고 먹이도 많이 먹지 않는 까닭에 도시에 살기에 가장 알맞다고 선전한다. '나'는 '치, 고양이가 다 똑같지. 갈색 고양이라고 특별하겠어?' 하고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고 만다. 뒤이어 갈색이 아닌 개는 모두 죽여야 한다. 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가, 꼭 해야만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지만 입을 꾹 다문다.

이제 갈색 개 사건을 비판한 <거리일보>가 문을 닫는다. 아니, 폐간 당한다. '나'는 불안한 느낌이 들지만 걱정이 지나친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한다. 뒤이어 정부에 반대하던 출판사들이 하나둘씩 소송에 휘말리고 정부 하는 일에 손뼉치는 <갈색신문>만 남는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 지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제 '갈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책은 도서관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고양이고 생쥐고 커피고 모든 말에 '갈색'이라는 말을 붙여 쓴다. '혹시 누가 우리 대화를 엿듣기라도 할까 봐' 주위를 두리번댄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갈색이 되었는데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갈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예전에 한 번이라도 갈색이 아닌 고양이나 개를 기른 적이 있다면 죄다 잡아간다. '갈색 법'만 지키면 편안하게 살 줄 알았는데 세상은 평화롭지 못하다.

갈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갈색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평화롭게 살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말이다.
▲ <갈색 아침> 한 장면 갈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갈색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평화롭게 살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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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가 몰라도 자꾸 지금 우리 현실 세상하고 그림책 속 세상이 겹쳐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속표지에 '1998년에 처음 발표한 <갈색 아침>은 국가 권력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우화'라고 적어놓았다. 불온한 그림책이다. 웃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갈색 도시에 있다. 정부는 갈색만이 '적법'이고 '애국'이라고 말한다. 다른 색깔을 말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불법'이고 '매국'이 된다.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을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럽다. 그래도 우리 일상은 지나치게 평온하다. 세상은 갈색만 있는 건 아닌데, 하고 의심이 들긴 해도 '뭐, 나와 우리 식구 일도 아닌 걸'하고 살았다. 책 끝에 독일 나치 치하에서 살았던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림책 속 갈색 도시는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판타지 세상이다. 말하자면 '가짜'다. 갈색 법이란 것도 갈색 군인도 없다. 그런데 진짜처럼 느껴진다. 이 나라 국무총리조차도 '진출'과 '침략', '수탈'과 '수출'을 질문지를 미리 주지 않은 까닭에 눈치를 보고 답하지 못한다. '갈색'이 아닌 다른 색을 말하면 갈색 군인한테 잡혀갈 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떤 도시에 있는가. 어쩌면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로 마녀 사냥을 하는 광기어린 도시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우리는, 아니 나는 가만 있어도 과연 되는 걸까. 추천의 글에 한 귀절을 옮기는 것으로 그 물음에 대신하겠다. 추천의 글은 박상률 작가가 썼다.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이미 아무도 없겠지요. 그러니까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독재자가 못살게 굴면 침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독재자에게 그런 사람들은 눈엣가시 같은 아주 성가신 존재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자신의 손발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서점 <알라딘> 마이리스트에도 게재합니다.



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2013)


태그:#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레오니트 시멜코프, #휴먼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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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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