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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의 대화 : 인권학자 박찬운 교수의 세계문명기행> 겉그림.
 <문명과의 대화 : 인권학자 박찬운 교수의 세계문명기행> 겉그림.
ⓒ 네잎클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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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로마문명 이야기'의 종점에 다다랐다. 여기에선 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로마문명 이야기'를 가능케 한 책 이야기다.

나는 지난 십여 년간 로마문명과 관련해 적지 않은 독서를 했다. 그것의 시작은 지적 호기심이었고, 그리고 내가 업으로 삼는 인권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함이었다. 지난해 나의 세계문명기행기 <문명과의 대화>가 출간됐다. 그 책 서문에서 나는 이에 대해 언급했다. 그 말을 다시 한 번 옮겨 보아도 될 것 같다.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이니.

나는 독서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어쩌면 별 볼 없는 일개 서생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호기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알고 싶다.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오늘까지 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싶다. 그 같은 호기심과 거기에서 비롯된 지식은 내가 지금 연구하고 가르치는 인권을 실감 나게 전달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나는 인권을 그저 서가에 꽂혀 있는 육법전서상의 조문 몇 개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인류의 장대한 문명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유장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다."(<문명과의 대화> 서문 중에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도락의 차원에서 읽진 않는다. 솔직히 이것이 나의 단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어떤 때 나는 진정한 독서는 오락이 돼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것이 순수한 독서이고, 참다운 독서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책 중에서도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책, 예컨대 순수문학으로서의 시·소설, 만화, 판타지 등에 약하다. 어린 시절 가난했고, 철 들면서 생존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던 그 경험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치열하게 읽는다. 지금도 고시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은 그렇게 읽겠지만 고시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이 책을 읽을 때는 말 그대로 안광(眼光)이 종이를 철(徹·꿰뚫다)할 정도로 집중해야 한다. 정독의 정독을 하고, 노트북에 중요한 것을 따로 요약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책 속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이 된다.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책을 그렇게 읽는다. 로마문명과 관련된 수많은 책, 다는 아니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된 책을 그렇게 읽었다. 밑줄을 긋고, 중요한 연도는 외우고, 때론 중요 내용을 요약정리했다.

이제 나는 그렇게 읽은 책 중에서 일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들 책이 로마문명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책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내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언급할 것이다. 독자들도 내 설명을 듣고 혹시나 관심이 있다면 그중 몇 권을 선정해서 한 번 읽어 보길 바란다.

'로마역사의 대중화'... 이 책 덕분이다

<로마인 이야기 1-15권>(시오노 나나미 저/김석희 역) 겉그림
 <로마인 이야기 1-15권>(시오노 나나미 저/김석희 역) 겉그림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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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1년 '로마문명 이야기'를 씀에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전 15권)에 상당한 빚을 졌음은 본문 여기저기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나는 내 글에서 그것을 요약하거나 맹종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 때문에 내가 로마문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그녀의 글에서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을 가려냈기 때문에 그 책 전체를 내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남성 중심, 승자 중심 사고를 항상 우려했다. 그런 사고가 자칫 남용되면 오늘날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빚어지는 온갖 제국주의 행태들이 모두 정당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과 전쟁에서 야기된 수많은 참상들, 심지어는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만행마저도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우경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거기에도 이런 사고는 상당한 정도 영향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제껏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그의 역사관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정통 사서가 아니다. 문학과 사서의 중간 정도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역사문학'이다. 때문에 엄밀한 사료에 근거한 역사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과 추리를 냉혹히 비판한다. 하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리 역사의 정확성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역사는 과거의 일이니 아무도 그 정확성을 장담할 수 없다. 어차피 역사기술은 상상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상상력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지만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런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비록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떻게 로마는 제국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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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를 말할 때 많은 사가들(에드워드 기본을 포함해)은 로마 쇠망의 원인에 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도 찬란하고 위대했던 로마문명이 어떻게 해서 쇠망의 길을 걸어야 했나, 거기에 답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질문보다 '어떻게 해서 로마는 그리도 오랫동안 서양사에서 제국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에 답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로마인 이야기>1권에서 5권까지 로마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데 지면을 할애한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영웅이 카이사르다. 그녀는 카이사르를 로마제국의 위대한 설계자로서 소개하며, 현재의 유럽의 아이덴티티는 카이사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녀에게 있어 로마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힘 때문이 아니다. 그 힘을 영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로마제국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마가도와 로마법을 비롯한 사회적 인프라였다. 그녀는 오로지 로마의 사회적 인프라에 제10권을 헌정했다. 하드 인프라로 로마가도·다리·수도 등을, 소프트 인프라로 의료와 교육을 소개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내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종교관이다. 그녀는 다신교의 나라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로마의 다신교의 장점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이해한다. 그리고 이 종교가 로마의 쇠망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지적한다.

기독교의 배타성이 로마제국의 사회체제를 무너뜨려 결국 로마를 해체를 가속화시켰다는 입장이다. 아마도 기독교인들이라면 매우 불편한 종교관일 것.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시오노 나나미의 입장만이 아니다. 이미 18세기에 에드워드 기번도 그의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줄기차게 주장한 내용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매우 논쟁적인 책이다. 하지만 이 책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일본과 한국에서 로마사의 인식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틀림없다.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전문 사가도 이런 정도로 과거의 역사를 알기 쉽게 대중에게 설명한 적은 없다. 비록 그녀의 글이 군데군데 역사서로서의 신뢰성을 의심할 부분이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세계에 준 영향을 반감시키지 않는다.

나는 지난 2008년 여름 방학을 전후로 거의 두 달을 할애해 이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어떤 부분은 밑줄을 치고, 또 어떤 부분은 통째로 외웠다. 그러는 사이 내가 그동안 공부했던 로마사 지식이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전체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느꼈다.

로마사의 영원한 고전... 이 책 능가할 책은 아직 없다

<로마제국쇠망사>1-6권(에드워드 기번, 윤수인·김희용 외 옮김)
 <로마제국쇠망사>1-6권(에드워드 기번, 윤수인·김희용 외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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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민음사, 전 6권)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로마제국과 관련한 '불후의 명작'이다.

<로마제국쇠망사>는 하룻밤 내에 소설 읽듯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기번이 1776년부터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6권으로 간행한 방대한 볼륨의 대작이다. 이 책은 로마제국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아주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룬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그 일부만이 같은 이름의 책으로 발간됐을 분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책 전권이 드디어 완역됐다. 몇몇 젊고 유능한 전문번역가들에 의해 이 책 6권이 모두 우리 말로 번역된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속속히 알 기회가 온 것이다. 이 번역은 연구자들의 로마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쇠망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로마사 연구에 기본 중의 기본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쇠망사>가 로마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라고 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로마사 전체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아쉽게도 로마의 기원(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약 900여 년은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로마의 왕정 및 공화정 그리고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은 팍스 로마나 시기라고 하는 오현제 시대, 그중에서도 트라야누스 황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서로마제국의 멸망, 동로마제국의 성립, 신성로마제국의 건국 그리고 동로마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여 년의 역사를 기술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기번은 로마사를 쓰면서 그 주제를 쇠망(decline and fall)으로 정했는지' 궁금했다. 기왕 로마사를 쓴다면 로마제국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정기 역사와 그 이후 극적으로 만들어지는 제정의 역사를 쓰지, 왜 하필 로마의 쇠퇴기를 썼는가였다.

아마도 역사가로서 기번은 이런 기본적 질문에 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찬란했던 로마제국이 왜 쇠퇴해 결국 멸망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을까? 그런 이유로 기번의 로마사 기술은 로마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팍스 로마나에서 시작한다. 일단 로마사의 정점을 설명하고 그러한 로마제국이 왜 점점 하강 국면을 맞이 하지 않으면 안 됐는지를 기술하는 게 그의 로마사 기술의 기본적 방향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

나는 이 책을 통해 로마제국의 기독교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정리했다. 시오노 나나미도 이 부분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기독교에 대한 기술은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보이는 기번의 생각과 많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기번은 로마제국의 기독교 문제를 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철저히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도대체 로마에서 기독교는 어떤 종교였는지, 왜 그들은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한다. 종래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특한 것이라는 것이 서구세계를 지배한 관점이었는데, 기번은 그런 신학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했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사실에 기초해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근대 역사학의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왜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기번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고대의 종교 화합은 고대 국가들이 서로의 종교 전통과 의식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한 것을 통해 유지되었음을… (중략) 따라서 이런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종교적 지식의 배타적인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예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예배 형식이 신성모독이며 우상 숭배라고 멸시하는 교파가 나타난다면, 전체 공동체는 당연히 분노하여 이에 대항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상해 볼 수 있다."(<로마제국쇠망사1> 622쪽)

역사적 관점에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은 '기독교의 배타적 신앙관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의식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매우 불경한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역사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는 사실에 기초한 과학이지, 믿음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태그:#로마문명이야기, #세계문명기행,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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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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