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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한 고시원의 모습.
 서울 마포구 한 고시원의 모습.
ⓒ 황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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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고시원 구합니다. 노량진 학원가나(임용고시) 역 주변이랑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강남 해커○ 부근 고시원이나 미니원룸 구합니다. 학원과 가깝고 겨울에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부부인데 혼숙 가능한 방 구해요."

네이버 고시원 카페인 '아이러브고시원'에는 하루에 3~5건 정도 '빈 방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고시원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다. 원하는 지역이나 입주 이유도 다양하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고시원의 원래 의미는 서울 노량진과 신림 등의 고시촌으로 한정된 지 오래. 현재는 대학생·일용직 노동자·직장인·신혼부부까지 다양한 계층이 고시원 혹은 고시텔에 거주하고 있다. 주로 강남에는 직장인이나 학원생, 대학 주변에는 대학생, 영등포 등지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가격 대비 괜찮지만, 너무 좁아 오래는 못 살겠다"

대학생 이아무개(24·여)씨는 작년 초 두 달간 학교 앞 고시원에 살았다. 개강 첫 주에 뒤늦게 살 곳을 구하느라 학교 주변 방이 많이 없어서였다. 그는 "그래도 급하게 구한 것 치고는 좋은 조건으로 산 것 같다"며 "자취방에 비해 안전하고 보증금이 없는 점,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사는 대학가 '고시텔'은 보증금이나 전기요금 없이 월 40만 원선, 방마다 화장실, 샤워실, 냉장고까지 설치되어 있다.

여학생들은 비교적 안전한 '여학생 전용' 고시텔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학생들에게는 특히 '외창 유무'가 방을 고를 때 중요한 문제이다. 창이 없으면 채광도 잘 안 되고 답답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 있는 '외창'이 있는 방은 그렇지 않은 방보다 보통 월 3~5만 원 정도가 더 붙는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모두 돈을 더 주고서라도 외창이 있는 방을 골랐다고 했다. "창문이 없는 방을 보니 정말 감옥 같았다"고도 했다.

분위기는 어땠는지 물었다. 이씨는 "많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지만, 다들 눈치를 보고 인사도 잘 안 한다"고 했다. 방 밖에 있는 빨랫대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도 벌어진다. 개인 냉장고가 없는 고시원의 경우 '반찬 싸움'도 일어난다. 대체적으로 '같이 살지만 서로 잘 모르는'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의 고시원 안에서 학교 지인들을 만나면 서로 민망해지기 때문에 '조마조마했다'고도 한다. 그러면서도 미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씨는 "안에서는 궁상맞게 하고 있어도, 다들 밖에 나갈 때는 제대로 차려입는 것을 보고 마음 한쪽이 찡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아무개(26·남)씨는 "소음방지가 안 돼서 별 소리가 다 들린다"고 했다. 옆방 사람이 TV로 무얼 보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고시원 커뮤니티에도 소음문제에 관한 고민이 심하다. '옆방 소음이 너무 심할 때는 벽에 대고 동영상을 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고시원에 산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가장 큰 문제점은 방이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려면 적정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결국 두 달 만에 원룸으로 옮겼다"고 했다. 김씨도 "좁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취재를 위해 고시원에 산 경험이 있는 여러 대학생을 만났지만, 6개월이 넘게 고시원에 산 대학생은 찾지 못했다.

높은 층으로 갈수록 비싸고 넓어지는 방... "난 고시원이 슬퍼"

대학 졸업반인 김유나(26·여)씨가 4년째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한 대학 주변 고시원. 이름은 'OO고시원'이지만 형태는 원룸 수준이다. 방 안에 화장실과 부엌이 같이 있으며, 많게는 4~5명도 잘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그는 "고시원 이름을 달고 있긴 하지만 '귀족형'이고, 원룸 고르듯 골랐다"고 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로 방값을 내는 일반 고시원과는 달리 전세로 계약했다. 친구들도 고시원이라기보다는 자취방이라 부른다.

그가 사는 고시원은 같은 고시원 안에서도 방의 형태가 여러 개로 나뉜다. 김씨는 "맨 위는 주인집이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방이 좁아져서 맨 아래층은 일반 고시원처럼 공동주방과 공동욕실을 쓰는 형태"라고 했다. 그도 처음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넓은 방에서 함께 살다가, 동생의 군 입대 후에는 아래층의 덜 넓은 방으로 옮겨 혼자 살고 있다. 그가 지금 사는 층에는 8개의 방이 있지만, 맨 아래층에는 16개도 넘는 방이 있다고 한다. 방 하나의 넓이가 김씨가 사는 방의 1/2밖에 안 되는 것이다.

집이 멀어 통학이 어려운 김씨는 기숙사, 하숙, 자취를 모두 경험해보았다. 지금의 고시원을 구할 때 일반 고시원도 많이 알아봤다. "처음에 좁은 방이 있는 고시원들을 둘러보다 무서워졌다"고 했다.

"난 고시원이 슬퍼. 한 층에 20~30개 방이 다닥다닥, 통화도 못 하고, 마음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이런 데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영혼들이 있다는 것이 슬퍼."

동생이 제대했기 때문에, 그는 곧 동생과 함께 근처의 투룸 형태 자취방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왜 위층 넓은 방으로 다시 올라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넓어도 '고시원'이다 보니 동생이 남의 집에 얹혀사는 느낌이라고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2011년 10월 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일명 '박스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1년 10월 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일명 '박스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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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과 학원생 단기입주 많은 강남 고시원... 신혼부부까지

신원경(25·여)씨는 지난해 여름 한 언론사의 인턴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로 왔다. 5주간의 활동기간 중 한 달은 자취방을 계약해 살았지만, 계약이 끝나고 난 후 마지막 한 주가 애매했다. 단기로 잠깐 살 수 있는 고시원이 적격이었다. 그는 "딱 일주일간 있었는데, 씻고 잠만 자는 용도로는 며칠 지내기 괜찮았다"고 했다.

이렇게 단기간 보증금 없이 머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잠깐 그 지역에 머물 일이 있는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는다. 이렇다 보니 고시원 커뮤니티인 '고시원넷'에서는 일일 입실이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서 서울 강남의 외국어학원에 잠시 수강하러 온 대학생들이 고시원을 찾기도 한다. 학생 신분에 보증금 없이 단기로 살 집을 구하기에는 고시원이 적격이다.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직장과 학원이 몰려 있는 강남 지역의 고시원은 작년 12월 기준 431개로 집계되어, 고시촌이 있는 관악구(997개)와 동작구(500개)의 뒤를 이었다.

돈을 모으고 있는 신혼부부나 직장인에게도 고시원은 부담없이 잠시 머물기 좋은 장소이다. '아이러브고시원'에는 '혼숙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질문이 꾸준히 올라온다. 집을 옮기기 전에, 혹은 함께 유학을 가기 전에 잠시 살 집으로 고시원을 택하는 부부들을 볼 수 있었다. 소음문제 때문인지, 몇몇 부부들은 "낮 시간에 나가고 밤에는 잠만 잘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등포 고시원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시 피난처"

인력사무소가 많이 있는 서울 영등포 지역의 고시원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 영등포시장 근처의 한 고시원에서 만난 김아무개(60·남)씨는 12년 동안 여기서 살았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는 직장도 없고 가족과도 교류를 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사람 중 여자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이곳 고시원에도 여자가 없다.

그는 그를 비롯해 이 고시원에 사는 30여 명의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가족과 문제가 생겨 혼자 살게 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새벽 5시 정도에 나가서 저녁 7시에 들어오고, 일당 8만 원 정도를 받는다. 겨울에는 일이 없는 편이라, 한 달에 방세 20만 원을 제하고 60만 원을 벌면 아주 많이 버는 것이라 했다.

이곳 고시원의 방은 한 몸 누이면 꽉 찰 정도로 작지만, 그래도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없는 '쪽방'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밥도 주고 난방도 된다. 김씨는 "영등포역 부근에는 화장실도 없는 쪽방이 많은데, 고시원은 그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 지나친다는 대학생들의 고시원보다는 분위기도 꽤 좋다. 김씨는 인터뷰 도중 다른 거주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올 때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웃었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마주치면 간단히 안부를 묻는 정도"라고 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인간관계라고 해봐야 이 좁은 고시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사회에서 떨어져나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정부니 이런 데서 취업알선 이런 거 하는데 그게 안 돼. 자기 혼자 산 사람들이라, 암만 좋은 직장 줘도 석 달 안에 튀어나와. 자기 혼자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 뭘 해보려고 하면,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을 고취시켜주는 쪽으로 한번 해보면 괜찮을 거야. 모임을 주선해주거나 하는 방법으로.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이 고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재개발 구역이 있다. 재개발이 고시원 거주자들에게 준 타격도 컸다. 맞은편에 있던 고시원은 재개발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개발에 따른 이주비용을 받을 수 없었다. 재개발 구역 지정 3개월 이전부터 산 사람만 이주비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는 세입자들에게 이주비 600만 원을 지급했지만, 고시원을 거주지로 등록해서 산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거야. 그런 건 문제가 좀 있지. 딴 데 가서 살면 되지만, 대우가 불공평한 거지."

박철수 반값고시원운동본부 대표는 "고시원에 사는 취약 계층의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더 나은 주거 형태로 나아갈 길이 거의 없다"며 "지원도 없는 임시 피난처에 머물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반값고시원운동본부는 이연숙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교수와 함께, 공공이 주도하며 민간이 협동조합 식으로 출자해 참여하는 주거형태인 '참여형 공공주택'을 추진 중이다.

덧붙이는 글 | 황혜린·남기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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