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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쓰면 돈이라도 줍니까?"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확인 없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지켜보던 한 누리꾼이 SNS에 써놓은 글입니다. '타 매체보다 1초라도 빨리, 일단 쓰고 보자'라는 성급함에 무너진 건, <오마이뉴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경기도교육청과 정부 측에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고 발표한 내용을 확인 없이 기사화 해, 결과적으로 오보를 냈고 사과문(관련기사 : [알림] "학생 전원 구조" 오보, 사과드립니다)까지 걸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편집기자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 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안)을 보게 됐습니다. 이 준칙(안)은 2003년에 마련됐는데, 추진만 되었지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내용을 보면, 재난보도 원칙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인 기준들이 보도나 취재의 측면에서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우리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이 원칙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읽으면서 참 당혹스러웠는데요.

이런 문제의식이 저만은 아니었는지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을 요약하면 ▲ 보도는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며 ▲ 피해 관련 통계나 명단은 재난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도를 통해 유언비어의 발생과 확산을 방지한다 ▲ 기자는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된 즉흥적인 보도나 논평을 자제해야 한다 ▲ 현장에서 취재와 인터뷰는 신중해야 하며 ▲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등입니다.

재난보도, 더욱 신중하게 하겠습니다

재난사고는 평소 쉽게 현장을 잡기 어려운 시민기자들이 기사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비슷한 사고를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사는이야기를 쓴다거나 사고 현장 가까이 거주하는 경우 직접 현장을 찾아가 스케치 기사나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하죠.

세월호 침몰 사고의 경우, 여수에 사시는 심명남 시민기자는 직접 구조에 나선 민간다이버를 인터뷰(관련기사: "조카 찾으러 매일 잠수...못 찾고 나오면 눈물")했습니다. 현장에 갈 수 없는 시민기자들 몇 분은 '부끄러운 어른들'의 심경을 글(관련기사: 세월호 모금함 만든 아이들... 어른인 게 부끄럽다)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교육현장에 있는 서부원 시민기자는 또래 친구들이 실종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관련기사 : 고등학생들의 분노 "이보다 더 비참할 순 없다")를 담아 기사로 썼고, 사고를 수습 과정에서 정치권들의 미흡한 행태를 질타하는 칼럼 류의 주장성 기사(관련기사 : 세월호 침몰사고, 박 대통령 발언 적절했나)들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기사를 쓰기 곤란한 시민기자의 경우, 편집부로 연락을 취해 제보를 통해 협조를 구하기도 합니다(관련기사 : "구명조끼 개수도 부족했고, 고장난 것도 많았다").

반면 '빨리 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용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기사를 보내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SNS에 떠도는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으로 흥분해서 주장성 기사를 쓰는 경우, 아무 내용 없이 현장에 있는 지인이 보내준 사진만 넣어 편집부로 전송하는 경우 등이 그런 예입니다.

사건 발생 5일째인 21일, 초기 보도 행태보다 언론사들도 많이 자성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내부적으로도 어떤 사안이든 취재기자가 '확인'한 것만 기사로 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보도기관이면서 또한 방재기관이다. 재해나 재난은 대체적으로 법적판결이 따르기 때문에 여론 재판 보다는 더 보도의 객관성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자체 조사나 철저한 숫자의 검증작업으로 진실보도를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검증없이 발표하는 발표 저널리즘은 삼가야 한다. 언론사는 구조자이면서 정보 전달자, 피재자가 원하는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게 되면 그것이 구조가 되는 것이다.
- 2003년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안) 내용 정리

시민기자가 쓰는 재난보도 역시 이 대원칙에서 예외일 리 없겠지요?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두손 모아 마지막까지 기원합니다.


태그:#재난보도, #땀나는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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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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