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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장 뜨거웠던 도시는 단연 전남 순천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슈를 쏟아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구원파 유병언의 최후 도피처로, 그의 주검이 발견된 곳이다.

유병언의 최후 도피처만큼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순천 출신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이다. 관객 수 1700만을 기록하며 역대 흥행순위 1위에 오른 영화 <명량>은 순천과 여수를 오가며 촬영했다. 그리고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이 순천에서 학교를 다닐 때 들은 괴담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영화 <핸드폰>(2009)의 시사회 때 배우들과 직접 순천을 찾기도 했고, 명절에는 후배들과 어울려 야구를 즐기기도 한다.

나는 순천 사람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순천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스무 살,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다.

"너 어디에서 왔니?"
"순천이요."
"아! 순천. 고추장! 순천 고추장."
"고추장은 순천이 아니라 순창이요. 전북 순창."
"아, 미안. 나 순천향대학교는 알아."
"거긴 충남에 있는데요."

비슷한 패턴의 대화가 반복되었다. 서울은 텔레비전 속에서만 봤던 광화문이나 한강이 눈앞에 펼쳐 있었고, 연예인이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다니는 신세계였다. 반면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출구 때문에 한참을 헤매었고,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튀어나오는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

2014년 가장 뜨거웠던 도시 '순천'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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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전성시대'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서울로 상경한 스무 살 청춘들의 이야기다. 지방 출신 아이들에게 서울은 동경의 무대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서울은 차갑고 냉정하지만, 가족 같은 하숙집 식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1994년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한 해였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황금기였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낭만의 시대였다.

드라마에도 순천 이야기가 있다. 극중 캐릭터 해태(손호준 분)는 순천 출신이다. 지방을 무시하는 서울 깍쟁이들에게 우리 동네에도 백화점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순천 출신 유명인들을 줄줄이 늘어놓지만, 서울 친구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순천 자랑을 좋아한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고 했다. 그만큼 순천에는 인물들이 많다. 순천 대대 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무진기행>과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김승옥 작가는 순천의 대표적인 작가다. 이전에 <후송>이라는 작품으로 1962년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된 서정인 작가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순천 선암사 출생인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쓴 고 정채봉 작가도 손꼽히는 문학가다. 순천에는 현재 김승옥, 정채봉의 문학관이 있고, 조정래길을 만들어서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선발전 1위는 누구였을까. 손기정? 아니다. 바로 순천 출신 남승룡이다. 올림픽에 조선인 3명이 나가는 것을 꺼렸던 일본은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남승룡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탄압한다. 사람들은 베를린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기억해도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은 대부분 모른다. 그는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더 부러웠다고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해태 역의 배우 손호준을 순천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허뻐'와 '긍께'를 연발하며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는 손호준의 실제 고향은 광주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순천시 명예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만큼 순천 사람들이 드라마에 보여준 관심과 열기는 대단했다.

2014년 7월, 유병언의 죽음과 영화 <명량>의 흥행만큼 큰 사건이 순천에서 일어났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박근혜의 남자' 이정현이 '노무현의 남자' 서갑원을 꺾고, 26년 만에 보수정당의 깃발을 순천에 꽂은 것이다. 가는 곳마다 순천 재보궐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왔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 이정현의 당선도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18대 대선을 닮은 2014년의 순천

2011년 11월,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 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김선동 의원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던 회의장에 최루탄을 던지며 항의했지만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내려놓게 되었다. 호남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다.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순천만큼은 조금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으로 국회의원을 여러 번 지냈던 김경재는 순천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현재 그의 행보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서갑원이 매산고와 국민대학교 졸업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서도 순천에서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그도 비자금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국회의원 자격을 잃었다.

서갑원이 떠난 자리는 통합진보당의 김선동이 차지했다. 야권의 통합이라는 타이틀로 김선동이 당선되었고,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꽤 시정 운영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경재, 서갑원, 김선동으로 이어지는 국회의원 자리를 노리는 인물은 많았다. 순천시장을 지냈지만, 후보경선에서 탈락한 노관규.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출신으로 큰 정치에서 활약했던 조순용. 후보자 경선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해 당을 나와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변호사 출신 구희승이 대표적이다.

7월 30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의 순천시 곡성군 최종 후보자는 5명이었다. 노무현의 남자 서갑원. 박근혜의 남자 이정현. 통합진보당의 맥을 이을 이성수. 천재라 불린 변호사 출신 구희승. 전남 교육의원 김동철. 이성수 대신 출마를 고민했던 통합진보당의 이정희가 등장했다면 정말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선거가 되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참 흥미로운 선거전이었다. 순천시 곡성군 지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야당 후보인 이정현은 압도적인 표차로 서갑원을 누르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정현은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고, 중앙 정당의 선거 지원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의 최측근답게 거대한 예산 공약도 빼놓지 않았다.

순천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이정현
 순천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이정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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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순천의 정치 판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2011년 서갑원에게 18대 국회의원 자리를 이어받은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은 통합진보당 간판으로 19대 국회의원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현재 순천시장 조충훈과 전임 노관규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사실 순천에서 국회의원과 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굳이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이 필요치 않았다. 순천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 아니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정현이 순천시 곡성군 유권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 성과는 분명하다. 그만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순천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존재했다.

서갑원의 당선을 가정해 보자. 이미 순천에서 높은 인지도를 쌓은 그는 향후 몇 년간 국회의원 자리를 지킬 것이다. 번번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노관규와 구희승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무소속인 조충훈 시장도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의무는 없었다. 순천에서 '제2의 김선동' 후보의 당선을 노리고 있는 통합민주당 또한 마찬가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야권이 단일화를 이뤘다면 이정현을 이길 수 있었다. 18대 대선 또한 그 모양새는 다르지 않았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뭉쳤지만, 적은 내부에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질적인 당내 파벌 문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친노'와 '비 친노', '호남'과 '비 호남', '정당인'과 '비 정당인'의 프레임은 야권의 분열을 가져왔고, 김두관처럼 자기만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4월 재보궐 선거, 변화의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

요즘에도 순천 자랑은 여전하다.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 알지? 우리 학교 출신이야."
"가수 이현! 노래 '밥만 잘 먹더라' 몰라? 1년 선배잖아."

상대는 반응이 없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순천에 유명한 사람 많지? 너희 학교엔 누구 있어?"

나의 이야기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효리랑 한지민. 더 이야기해? 박시은, 이승연, 이정희, 황수경, 골프선수 한희원..."

그렇다. 상대는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 전체도 아니고, 한 고등학교에서만 저렇게 많은 인물들이 나올 수 있다니.

서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정당보다는 공약을 먼저 보는 것이다. 때로는 여우같이 얄밉지만, 그런 면에서 서울 사람들이 부럽다. 당장 영호남의 지역감정과 투표 편중 현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변화의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 2015년 4월 재보궐 선거는 2014년 7월의 순천과 달라야 할 것이다. 선거를 준비하는 진보진영 그리고 투표하는 유권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순천 촌놈도 서울 깍쟁이도 믿는다. 함께라면 분명히 바꿀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예능작가의 세상읽기 10] '응답하라 대한민국! 무너진 피디수첩'편은
(http://blog.naver.com/hstyle84)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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