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은 2억 명이 넘는 영화 관객을 기록하며(2014년 기준 2억 1506명)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영화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그 시작은 최근 다시 멀티플렉스에 상영관을 확보하게 된 영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이다. 훈훈하고 따뜻한, 하지만 현실의 비극을 결코 간과하지 않은 영화로 평가받은 영화 <개훔방>은 그 입소문이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멀티플렉스에서 사라졌다. 이에 <개훔방>을 아끼는 관객들은 자비를 털어 영화관을 빌려 이 영화의 단독 상영을 이어갔다.

좋은 영화가 외면받는 현실 뒤...'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포스터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포스터 ⓒ 삼거리 픽쳐스


이렇게 다수의 영화가 미처 관객의 평가를 다 받기도 전에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PD수첩 >은 현재 극도에 달하고 있는 영화 산업의 독과점에 초점을 맞춘다. 2014년 한 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명량> <변호인> <국제시장> 등 총 11편에 이른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말한다. 단 한 편의 영화가 천만을 달성하는 동안, 수십 편의 영화가 선택의 기회조차 잃은 채 사라져 간다고.

CJ, 롯데 등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개봉 2주 전부터 자사가 배급하고 있는 영화들의 예매를 시작하고, 가장 관객들이 많이 들 수 있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심지어 한 영화에 전체 상영 영화의 30% 이상의 상영관을 배정하는 기형적 몰아주기를 통해 흥행을 넘어 '천만 관객'을 이루어 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형적인 독과점 체제에서 대기업의 배급망을 타지 않은 영화는 감히 그 경쟁 대열에 끼기조차도 힘들며, 설사 끼었다손 치더라도 <개훔방>이나 유지태 주연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이하 <더 테너>)처럼 불리한 시간대에 배치됨으로써 조기 종영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 <개훔방>을 조조나 심야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은 아예 보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대기업 배급이 아닌 영화들에게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나마 <개훔방>의 경우 제작사와 관객들이 힘을 합쳐 이 영화에 대한 여론을 불러 일으켜 다시 멀티플렉스에 다수의 관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더 테너>의 경우는 멀티 플렉스가 아닌 독립영화관 단 한 곳에서만 상영하여 관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고 한다.

실제 4년 여의 제작 기간,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더 테너>의 제작사 대표는 개봉 첫 날 불리한 상영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이 영화의 흥행을 포기했다고 밝힌다.

제작, 배급, 상영까지 수직 계열화된 대기업의 영화 산업

 영화 <더 테너 리리토 스핀토> 포스터

영화 <더 테너 리리토 스핀토> 포스터 ⓒ 모인 그룹


이렇게 대기업들이 자사 배급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심지어 편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상영하고 있는 현실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 PD수첩 >은 기획에서부터 제작-배급-상영까지 시스템화된 대기업의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독과점을 그 이유로 든다.

지난 10년 간 영화 산업이 이 같이 이어져 왔고, 최근엔 영화 <광해>처럼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세 달 동안 상영관을 억지로 유지하는 경우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개훔방>은 당시 함께 상영되던 <오늘의 연애> 보다도 좌석 점유율이 높았지만, 결국 대기업의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 버리게 되었다. 반대로 최근 개봉한 <쎄시봉>은 반응도 미비하고 좌석 점유율도 낮지만, 대기업이 배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많게는 30%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영화 산업에서 '갑' 중의 '갑'이 된 대기업을 두고 < PD수첩 >은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입을 빌려 공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1938년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직계열화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독과점이 문제가 되자, 영화 제작 및 극장 소유를 분리하도록 법적 명령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매각했고, 1980년 규제가 완화된 이후에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대기업의 영화 산업 독과점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전횡의 일면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재래시장 주변에 대기업의 마트가 들어서서 재래시장을 잠식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고, 대기업의 커피 체인점이나 베이커리가 거리에 하나 둘씩 들어차서 중소 상인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PD수첩 >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같은 현상이 그저 영화 산업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그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란 점까지 짚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영화 <개훔방>과 <더 테너>로 시작해 '천만 영화'의 화려함 뒤에 획일화되어가는 영화 산업 전반을 < PD수첩 >은 체계적으로 잘 짚어 나간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이 '이젠 인터뷰하기도 지긋지긋하다. 지난 10년 동안 내내 그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토로를 통해, 이 문제가 심각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그 해법까지도 제시하고 있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물론 <개훔방>의 재상영이라는 분명한 결과물이 나온 후에야 뒷북치듯 이 문제를 들여다 보는 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요원해 보이는 해법을 위해 꾸준한 환기는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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