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과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는 김창준 선수

취재진과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는 김창준 선수 ⓒ 이준호


"이게 꿈꾸던 대학 생활이구나 싶어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웃음)"

새터민 출신으로 한국에서 축구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새내기' 김창준 선수가 밝힌 대학생활 소감이다. 아직 앳된 얼굴로 첫 인사를 건넨 김창준 선수. 제주 유나이티드 유스팀을 거쳐 올해 대전의 한남대학교에 진학한 그를, 활짝 핀 개나리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교내 캠퍼스에서 만났다.

지난 2005년, 만 9살의 나이로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기 전까지 김창준 선수의 유년 시절은 힘들고 고달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밭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교통수단이 없어서 심부름을 하려면 굉장히 먼 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녀야 했죠. 한창 뛰어 놀 나이인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그러한 고난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어려움이 축구 선수로서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동료 선수들과 코치들로부터 "정신력이 강하다"라는 평가를 듣는 그에게 여타 다른 한국 선수들이 할 수 없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은 오히려 큰 약이 되었다.

새터민 최초 한국 유소년 축구국가대표 발탁

중국에서의 생활을 마친 김창준 선수는 지난 2006년 서울 마포구에 정착했다. 그리고 교회 운동회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본 집사님의 권유로 서울 구룡초등학교 축구부의 일원이 되었다.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설날 눈 쌓인 운동장을 치워가며 혼자서 숨이 차도록 달렸습니다. 새벽엔 학교에서 축구를 하던 조기축구 아저씨들과 함께 공을 차기도 했어요."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축구 명문 동북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후 2학년 재학 시절, 새터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유소년 축구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같은 해 서울시 축구협회장배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북한에서 온 소년이 한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일생일대의 순간이었다.

"축구를 하게 되면서 꿈을 꿀 수 있었어요. 주위에는 늘 동료들이 함께 했고, 정말 잘 대해주었죠. 숙소생활도 재미있었고요. 그렇게 잘 적응할 수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제주유나이티드 고교팀(방통고)인 U-18(유스팀)의 오른쪽 주전 풀백으로 활약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백록기 고교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팀을 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결승전까지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겼고, 이후 우리는 우승을 위해 제주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죠.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이 경기에서 개인적으로는 '인생 골'을 넣었습니다.(웃음) 안타깝게 팀이 패하는 바람에 빛을 바랬지만 잊을 수 없는 경기를 펼쳤죠. 우수 선수상도 수상하였습니다.(웃음)"

 청춘을 위한 책 <방황해도 괜찮아>를 선물받고 기뻐하는 김창준 선수

청춘을 위한 책 <방황해도 괜찮아>를 선물받고 기뻐하는 김창준 선수 ⓒ 이준호


상상도 못했던 북한대표팀과의 일전

그는 축구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동북중 재학 시절 유소년 국가대표로 중국에서 북한대표팀과 경기를 했던 장면을 꼽았다.

"한국으로 올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다시 북한의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축구 경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북한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했는데, 그 때는 오히려 기분이 참 좋았어요."

또한 북한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유니폼이나 축구화를 보면서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마음이 짠했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소년은 이 경기를 통해 더욱 강한 선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는 롤 모델로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꼽았다.

"이영표 선수의 성실함에 반했어요. 저에게 이영표 선수는 축구선수로서, 그리고 은퇴 후 행보에 있어서 모두 귀감이 됩니다. 요즘도 기도를 할 때면 '이영표 선수처럼 되게 해달라'고 해요."

새터민 어린 친구들의 적응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어린 새터민 학생들에게는 주위의 관심이 정말 중요합니다.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가 있을 거예요. 미술이면 미술, 음악이면 음악, 공부면 공부 등 그 재능을 발견하고 잘 살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관심이 이 친구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저희 같은 새터민들은 좋지 않은 길로 쉽게 빠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행복 주는 축구선수를 꿈꾸며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프로선수 시절에도 이따금씩 거리로 나가 시민들과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한 기자가 그러한 지단의 행보에 대해 물었다. 그는 "축구선수라면 돈을 받고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과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밝혔다고 한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필자는 김창준 선수에게 이와 같은 사회공헌적 활동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자세를 고쳐 앉은 김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처음 축구에 입문하게 해주신 은사님이 말씀하셨어요. '너는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지금 네가 10명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때는 100명, 더 나아가 1000명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어떤 마음으로 축구를 해야 하는지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다짐해요. 주위 분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줄 아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요. 그래서 더 많은 새터민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를 통해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0년 차를 맞이한 김창준 선수. 축구와 함께 한 그 시간 동안 그는 이렇게 멋진 청년으로 자랐다. 이제는 새터민이라는 출신을 떠나 축구선수 김창준, 청년 김창준으로 밝은 미래를 그려 나가길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악수를 건네고 자리를 떠난 김 선수의 발걸음이 빠르게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배경으로 ⓒ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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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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