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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가사 中

2000년 8월 21일, 19살의 나이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8일, 약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실업계 고등학교 '실습사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이었는데 무려 15년 동안을 지속해왔다. 물론 중간에 이직을 여러 번 하긴 했지만, 친구들 군대에 가 있는 시간 동안에도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꾸준히 직장을 다녔다.

20대의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친구들은 대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며 캠퍼스의 '낭만'과 '해외여행' 같은 걸 떠올릴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소리와 납땜 연기뿐이다. 즐거웠던 순간이래 봐야 직장에서 만났던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 정도가 전부다. 지나고 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청춘'을 오로지 돈 버는데 쏟았다.

어린 나이부터 15년 동안이나 직장생활을 했으니 '돈은 엄청나게 벌었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자작곡 가사에도 나오듯이 500만 원정도 시세의 중고차 한 대와 주식계좌의 잔고 500만 원, 그리고 몇 개 통장에 쪼개 넣어둔 수백만 원 정도가 전부다. 대한민국에서 '고졸' 학력으로 20대에 직장을 다녀봤자 얼마 벌지 못한다. 그렇게 번 돈 으로 혼자 생활하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다.

20대 중반이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산다는 게 얼마나 불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학을 졸업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진짜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잘 선택해서 진학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을 해야 한다면 학벌이 좋지 못한 내가 손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되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도 '학벌' 중심으로 직급이나 연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5살 늦게 진학한 대학... 5년만에 겨우 졸업했다

25살 늦은 나이에 진학해 5년만에 겨우 취득한 '학위증'
▲ 학위증 25살 늦은 나이에 진학해 5년만에 겨우 취득한 '학위증'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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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고등학교 실습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1~2년 동안 번 돈을 모아 학비를 마련했으니 그 돈으로 대학교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참 기특한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형편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에도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어서 기술 배워서 돈을 벌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런 우리 집 형편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가 대학교를 다니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 나는 산업기능요원을 통해 군 복무를 대체하고 25살의 나이로 '사이버대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사이버대학이 처음 도입되던 시기였다.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늦게 진학한 대학이었는데 학생이기 이전에 나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졸업을 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학위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한 건 이미 마지막 직장에 '고졸'로 입사를 한 뒤였다. 그래서 결국 나는 '대졸'이라는 학력을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끝냈다.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오로지 '고졸' 학력으로 버텨냈다.

15년간 총 8군데의 회사에 다녔다. 그중에 7개의 회사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1곳은 최근 8년간을 다녀온 대기업이다. 결국, 15년간 7개의 중소기업과 1개의 대기업을 다녔는데 결과론적으로는 대기업만 살아남고 중소기업은 다 사라졌다.

하지만 돌아보면 꼭 대기업을 다닐 때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대기업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모든 게 다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는 동안 내 실력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전 7곳의 중소기업에서 갈고 닦은 내 경력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도 있었고 직접 한 선택도 있었다. 15년 동안 8곳의 직장을 다니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지나고 보면 잘한 선택도 있고 잘못된 선택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테다.

나는 아직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시니어들처럼 멋진 인생의 성공담을 들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서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고졸' 신분으로써 인생을 살아온 경험을 가감없이 들려줄 순 있다. 나의 이야기로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들어 무언가를 '선택' 해야 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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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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