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사(한국사) 교과서들.
 국사(한국사) 교과서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역사교육의 획일화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 보여주는 가까운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시대 역사교육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주의 시대라고 알려져 있지만, 유교는 정계에 진출했거나 정계 진출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의 사상이었을 뿐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사상은 아니었다. 유학은 유학자들만의 사상에 불과했다.

민간에는 불교 신앙을 숭배하는 백성들이 훨씬 더 많았다. 또 한국의 전통적 신앙인 신선교(신선도·선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선교는 인간과 하늘이 하나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이룬 초월적 존재인 신선이나 선녀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신앙이다.

신라 화랑과 고구려 조의선인과 고려시대 재가화상 등이 신선교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마저도 시를 쓰거나 대화할 때마다 툭하면 신선을 언급한 것은 신선교 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반영한다.

이렇게 유교 이외의 사상이 민간에 퍼져 있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유교는 조선시대 사상계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대표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유학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매우 배타적이었다. 그래서 신선교나 불교는 배척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고대사에 무지했던 '조선 엘리트'

유학자들의 배타성은 역사교육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그들은 '유교 위주, 중국 위주, 남성 위주, 농경지대 위주'의 역사관을 신봉했다. '농경지대 위주'라는 것은 농경민족만을 문화민족으로 인정하고 유목민족은 야만족으로 천시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유학자들은 역사교육이 다양한 관점으로 시행될 경우에는 자신들이 사회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고 믿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담은 획일적 역사교육이 시행되어야만 자신들이 사회를 통제하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를 압박했다. 유교주의 역사교육을 획일적으로 시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이 점은 세조 3년 5월 26일자(양력 1457년 6월 17일자) <세조실록>과 예종 1년 9월 18일자(1469년 10월 22일자) <예종실록> 등에서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고조선비사><삼성기><삼성밀기>를 포함한 다수의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고 이 책들을 몰수했다. <예종실록>에 따르면, 금서를 숨긴 자는 참수형에 처했다. 금서를 불태우고 지식인들을 구덩이에 매장한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유사한 일이 조선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 및 신선교 서적을 은닉한 사람은 참수형에 처한다는 부분(빨간색 밑줄)을 담은 예종 1년 9월 18일자 <예종실록>.
 고조선 및 신선교 서적을 은닉한 사람은 참수형에 처한다는 부분(빨간색 밑줄)을 담은 예종 1년 9월 18일자 <예종실록>.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금서가 된 책들은 거의 다 고조선과 신선교에 대한 것이었다. 고조선 서적과 신선교 서적을 한데 묶어 금지한 것은 고조선의 국교가 신선교였기 때문이다. 고조선을 이해하는 것은 신선교를 이해하는 길이고 신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고조선을 이해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두 부류의 서적을 모두 금지했던 것이다.

유학자들에 의해 점령된 조선 정부가 고조선 및 신선교 서적을 금서로 지정한 것은 고조선·신선교라는 키워드가 '유교 위주, 중국 위주'라는 역사관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고조선·신선교의 진상을 알려주는 역사서를 그대로 놔두고는 자신들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확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역사교육의 획일화로 인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사서(四書) 즉 <논어><맹자><중용><대학>이나 오경(五經) 즉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에 나오는 역사 지식만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들만으로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엘리트들은 고조선 역사를 포함한 한국 고대사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은 유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목적으로 제시하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례가 중국 고대사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기 나라 역사의 중요성이나 다양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중국 역사에 관한 획일적 지식만 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서오경에 나오는 중국 역사와 배치되는 지식을 갖게 되면 과거시험에 급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시험 문제가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출제됐으니, 정부가 금지하는 고조선 역사서를 읽는 사람들은 조정이 아닌 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출세를 위해서라도 중국 역사 위주의 획일적 역사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삼국유사> 속 고조선 역사

그 같은 역사교육으로 인한 폐해 중 하나는 한국 고대사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삼국유사> 속의 고조선 역사가 조선시대 사람들의 머리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사람들의 머리까지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고조선 역사.
 <삼국유사>에 소개된 고조선 역사.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관련사진보기


유학자들과 조선 정부는 고조선 서적들을 철저히 탄압하면서도 <삼국유사> 같은 책에 나오는 고조선 역사는 그대로 방치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국유사>에서는 고려시대 이전 역대 임금들의 프로필을 정리한 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을 본문에서 가장 먼저 소개했다. 우리가 잘 아는, 환웅의 아들인 환인이 지상에 내려와 곰과 함께한 결과로 단군이 태어났으며 그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본문 맨 앞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고조선 역사를 본문 맨 앞에서 소개한 <삼국유사>는 조선시대에 금서로 지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고조선·신선교에 대한 책을 소장하기만 해도 참수형에 처하면서 <삼국유사> 속의 고조선 역사를 그대로 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이 탄압을 받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삼국유사>가 오로지 고조선만을 다룬 역사서가 아니라서 그냥 봐준 걸까? 고조선 외에 다른 나라들의 역사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할 수 없었던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고조선 관계 서적을 소장하기만 해도 참수형으로 다뤄야 했다면 고조선 역사를 맨 앞에서 다룬 서적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가했어야 한다. 책 전체를 금서로 지정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고조선에 관한 부분만이라도 삭제시켰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유학자들과 조선 정부는 <삼국유사> 속의 고조선 역사를 그대로 방치했다.

그것은 <삼국유사>에 담긴 고조선 역사가 고조선 역사의 진상을 알려주기에 불충분한 것이었거나 고조선 역사의 진상과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봐서는 고조선 역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탄압할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삼국유사> 속의 고조선 파트를 그냥 놔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고조선을 이해한다. 이것은 유학자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가 고조선을 이해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까지도 고조선 역사의 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역사학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사라진 고대사 서적들을 열거한 뒤 "지금 전해지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이다. 어느 것은 전해지고 어느 것은 전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다음에 "김부식과 일연 두 사람의 저서만이 우수해서 그것들만 전해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채호는 유학자들의 역사 청소 혹은 역사교육 국정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유학자들이 '중국 중심, 유교 중심'의 획일적 역사관을 유포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대신에, 우리는 한민족 최초의 왕조로 알려진 고조선 역사의 진상에 다가갈 기회를 빼앗겼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역사교육 국정화가 고조선 역사의 진상을 숨기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퍼뜨리는 데에 훌륭히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역사교육 국정화가 전 사회적으로 획일적 역사관을 정착시키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역사의 진상을 배우고 그것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는 매우 유해한 것임을 알려준다.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을 사람들은 배타적인 소수의 집권세력밖에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Youtube(시사와 역사 채널).kimjongsung.com. 제15회 임종국상..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 여자 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