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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중순의 한미 정상 회담은 미일 정상회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미중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동북아 체스 두기 과정의 중요 지점이었다. 이후 11월 초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으로 가는 중요 길목이라 관심이 더욱 모아졌다. 평가를 위해서는 양국이 채택한 북한에 관한 공동성명과 회담 공동설명서(Joint Fact Sheet), 그리고 공동기자회견 등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성과에 대한 논란들이 있지만 비판적 시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한미정상회담의 네 가지 의제

첫째, 한미동맹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역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 또한 한국이 미국의 아태지역 재균형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언급은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력의 일부 축을 맡아 주기를 희망하는 미국의 바람이 담겨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세계차원의 적극 개입을 환영한다, 글로벌 한미동맹으로 격상한 것은 앞으로 시리아 등 미국의 군사행동에 한국도 적극 개입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전작권 전환이 순조롭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은,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는 기존의 합의가, 도무지 막연하고 그 시한도 알 수 없기에 불안하던 우리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말이기는 하다. 진정한 주권과 안보, 그리고 국가의 위상은 전작권을 소유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작권 전환이 한미동맹의 폐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더 이상 횡행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우리가 취해야 할 중요한 지렛대임은 틀림없지만 문제는 한미동맹에만 함몰되어 통일을 위한 장기전 외교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데에 있다.

둘째, 북한 도발이나 핵에 관한 입장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국제사회 공조를 계속 강화할 것, 한미일 3자 협력을 바탕으로 5자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중국 등과 협의도 심화할 것 등을 언급했는데 기존의 정책과 전혀 다른 바가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고집하는 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양국은 절대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 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의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존의 핵·미사일 정책과 다를 게 없지만 오바마가 북한 핵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를 보였다는 것이 의미라면 의미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핵보유국임을 헌법과 만천하에 천명한 북한이 특별한 계기 없이 기존의 핵 보유 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얼마나 이러한 압박이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19일, 북한은 핵은 민족의 보검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셋째, 다양한 분야 즉, 경제협력, 우주개발, 사이버안보, 신기후변화체제, 국제테러폭력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합의에 대해서는 글로벌 차원으로 한미 동맹관계를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우주개발, 사이버안보 등의 협력이 경제분야, 미사일 방어체제, 정보 분야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협력도 보다 심화시킬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미국이 의도하는 대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체제에 자연스럽게 떠밀려 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한미일 삼각체제 강화는 분단 현상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결코 한반도 통일에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포괄적 한미동맹 차원에서 군사적 사이버 공조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기존의 압박정책으로 북한붕괴를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미 정부가 사이버나 이와 관련된 다양한 수단을 통한 북한 압박 작전을, 한국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구나 흡수통일 아이디어가 짙게 들어가 있는 드레스덴 연설에 대해 미국이 지지한 반면, 북한은 강력 반발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6.15공동선언에 정면 위배되고, 2000년 이전으로 완벽하게 되돌아간 통일의제라 할 수 있다.

넷째, 중국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한국이 중국과 아주 좋은 관계가 되기를 원하며 미국도 중국과 좋은 관계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오바마의 말은 우리의 대중국 관계 강화정책에 다행히 브레이크를 걸지 않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오바마의 립서비스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얼마나 미국이 이를 허용할 지는 미지수라는 이야기다.

이번의 '중국경사론'(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가에서는 한중관계 강화를 불안해하고 싫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이는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라고 한 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전히 미국은 한국이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종합 평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평가한다면 첫째, 한국의 국익보다 미국의 국익을 더 많이 챙겨준 회담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움직일 TPP 가입, 미국MD체제 공유를 이끌고 올 우주개발 협력, 북한의 선비핵화(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이 지역의 긴장은 해소되지 않아, 미국의 사드배치, 한일 정보교환, 미국 무기판매 등이 가능) 등은 모두 미국의 이익에 더욱 방점이 찍히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무엇보다 이번 회담에 대해 북한이 적극 호응하고 나서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북한의 반응이 '북한에 대한 공동성명'의 성과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렛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성명에서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가 없자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20시간 만인 17일(현지 시각), 외무성 성명을 내고 미국에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1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해괴망측한 반공화국 광대극", "친미사대 매국행각", "동족대결 구걸행각" 등이라며 폄훼하면서 "상전과 주구가 펼쳐놓은 너절한 어리광대극"이라며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의 반응을 보니 회담 성과에 대한 답이 저절로 드러난다.

셋째, 한·미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미제의 위협'을 핑계로 핵을 개발해온 북한의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그나마 이번 방미에서는 저번 방미 때보다는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이 조금 약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이는 대북한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이산가족 상봉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넷째, 핵 문제를 넘어서는 포괄적 대북 접근으로 한미간 공감대를 확장한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한미중 공조' 가동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없다. 한국 정부가 이 부분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섯째, 언론의 심각한 편파보도를 확인시켜준 한미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 항상 대부분의 언론이 그렇게 해 왔듯이 이번에도 방미 성과를 침소봉대하기는 여전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북한에 관한 공동성명은 한미 양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남북간 군사적 대치 관계를 풀고자 하는 뚜렷한 의지 또한 보이지 않았다. 창의적인 북핵 문제 해법도 없었고, 우리의 핵심적인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와 차세대전투기 핵심기술 이전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또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얻는 성과도 없었다. 역사적 문제를 덮고 미래로 가라는 오바마의 말은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술이라든지 미사일방어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방어에 필요한 능력" "한국이 필요한 능력의 강화" 등을 언급했다. 사드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미사일방어 체계', 즉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바마의 립서비스에 춤추고, 한미동맹이 강화되었다는 성과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전망

통일이 한반도 운명의 사활인 이 시대, 앞으로 모든 외교적 평가는 그것이 통일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통일에 긍정적이었다기보다는 부정적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미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미국도 찬성한다는 것 등의 긍정적 언술도 있었지만 이러한 의례적 표현에 혹하여 전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한다면 마치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이 왔다고 주장하는 꼴이 될 것이다. 중국경사론을 희석시키려다 통일추진에 긍정적이지 않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에 여지없이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미관계를 글로벌 파트너 관계로 확장시켰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의 요구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고 자칫하면 미·중 사이에서 주도권 잡기는커녕 균형잡기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 관계가 안정세에 접어들기는 하였지만, 앞으로 미중 사이에 긴장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이에도 대비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이슈를 선점·주도해 나가는 외교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결국 남북관계 회복으로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넓혀야 한다. 한미 동맹도 잘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긴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중국경사론이 더욱 활개쳐도 중국과의 관계는 주저 없이 더욱 확대해 가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희망한다는 오바마의 립서비스를 적극 활용하여 한중관계 심화를 현실화해야 한다.

어차피 한반도 통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암초가 있기 마련이고 중국경사론도 그 암초의 하나의 불과하다.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통일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미일 삼각동맹에만 함몰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한반도 통일은 그야말로 백년하청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 타파를 두려워하는 자 결코 통일을 이룩해 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지웅 박사는 (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장이며 ACTS대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한미정상회담, #중국 경사론, #전시작전통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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