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반출할 자재를 챙겨 보안사원의 입회 검수를 받고 나면 탑차에 '봉인 라벨'을 붙여 준다.
▲ 봉인 반출할 자재를 챙겨 보안사원의 입회 검수를 받고 나면 탑차에 '봉인 라벨'을 붙여 준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매일 아침 1톤 탑차를 몰고 구미 1공단에 있는 대기업 프린트 사업부에 들어가면서 내 일과는 시작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대기업에 출입하다보니 정문을 지키는 보안요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엔 출입을 할 때마다 거치던 까다로운 보안절차도 이젠 숙달이 되어 능숙하게 처리하고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출입구에 신분증을 맡기면 출입증을 준다. 그 출입증을 패용한 뒤 시속 10km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프린트동까지 가야한다. 내가 출입하는 이 공장안에는 프린트 사업부 외에도 다른 사업부들이 있었다. 공장 안에 있는 여러 개의 건물마다 나처럼 자재를 타러 오는 협력업체 사람들을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 대기업은 참 대단한 회사라는 게 실감이 났다.

프린트 SMD(Surface Mount Device-표면 실장 기술)동을 우측에 끼고 돌아 들어가면 '도크장(화물 하역이 수월하도록 만든 장비가 있는 곳)'이 나온다. 도크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도크장 안쪽에 들어가면 조그만 사무실이 있다. 그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대기업 여사원에게 가면 우리 회사에서 가져가야 할 자재 목록을 받을 수 있다.

오늘 받아가야 할 자재 목록을 받아 SMD라인에 들어가면 SMD 작업이 완료된 제품이 적재된 공간이 있다. 거기에서 우리 회사로 가져가야 할 제품을 골라서 도크장으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가끔 가져가야 할 제품이 보이지 않아 SMD 조장 여사원에게 물으면 '아직 생산중이니 기다려라'는 대답을 듣곤 했다.

가져가야 할 제품을 모두 도크장으로 가지고 나오면 도크장 벽에 달린 전화기로 '보안 사원'을 부른다. 잠시 뒤 보안 사원이 오면 자재 리스트를 건네고 챙겨나온 물건이 리스트와 맞는지 확인을 시켜준다. 일일이 직접 세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안 사원의 확인을 받는다.

그렇게 확인이 끝나면 트럭에 물건을 싣는다. 물건을 싣고 탑차 문을 닫으면 보안 사원이 문에 봉합 라벨을 붙여준다. 이 라벨이 나중에 정문 통과시 탑차 내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다.

라벨이 붙은 차를 몰고 정문으로 나갈 때는 보안 사원에게 운전석 내부 확인만 추가로 받으면 된다. 그리고 출입증을 반납하고 전신 스캐너를 통과한 뒤 내 신분증을 찾아 나오면 대기업에 들어가서 내가 할 일이 끝난다.

탑차 안에는 SMD 작업이 완료된 보드가 '매거진(보드를 칸칸이 꽂아 운반할 수 있게 만든 틀)'에 꽂힌 채로 실려 있다. 회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매거진이 넘어져 보드가 쏟아지거나 하게 되면 보드 표면에 실장된 칩 부품들이 떨어져 나가버리면서 불량품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길로 천천히 돌아가야 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매거진이 왕창 넘어져 버린 적이 있다. 그 소리가 워낙 커서 운전을 하고 있는 내 귀에도 들렸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탑차 내부를 열어보았다. 바닥에 넘어진 매거진들 사이로 보드가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 것 같았다.

혼자서 최대한 수습을 해보기 위해 매거진들을 일으켜 세우고 보드를 다시 차곡 차곡 담았다. 바닥에 떨어진 보드를 주워 드는데 칩 부품들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그걸 알고도 지금은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전 직장에서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내가 직접 불량품을 만들었고 불량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 회사 생산 라인에 투입시켜 버렸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생산 라인 관리자가 나에게 와서 '불량이 많이 났으니 대기업에 들어가면 피드백을 해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그 관리자분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농땡이치며 듣던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업무 시간에 한적한 동네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를 들으며 '농땡이'를 치는것이 납품일을 하면서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 라디오 업무 시간에 한적한 동네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를 들으며 '농땡이'를 치는것이 납품일을 하면서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회사에 출근하면 매일 트럭을 타고 대기업에 들락거리는일을 하다보니 막상 우리 회사의 직원들과는 가까워질 기회가 잘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우리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불편했다. 가져온 보드를 생산 라인에 투입해주고 나면 대기업에서 받아온 전표를 2층 사무실로 올라가 엑셀에 정리를 해둬야 했다. 사무실에 앉아 전표를 입력하는 20~30분이 어색해 가시방석 같았다.

전표를 입력하고 나면 얼른 사무실에서 내려와 탑차를 몰고 다시 나와 버렸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딱히 할일 없이 회사에서 빈둥거려야 하는데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남는 시간을 한적한 동네 구석에 차를 세우고 낮잠을 자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보냈다.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대에 라디오를 듣다보니 재미가 쏠쏠 했다. 재미 없는 납품 업무를 하게 되면서 나에게 생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그 사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소개 되었다. 그 사연으로 가장 비싼 상품을 받게 되기도 했다.

내 사연이 라디오에서 나오던 날도 혼자 한적한 마을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농땡이를 치고 있었던 날이었는데 내 사연이 나오는 바람에 혼자 트럭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다른 협력업체 납품사원들은 주로 대기업 안에 들어와서 시간을 때웠다. 그 대기업 식당 건물에 가면 카페테리아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과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낮 시간엔 온통 각양 각색의 작업복을 입은 협력업체 직원들로 가득했다. 그런걸 보면 납품 사원들의 '눈칫밥'은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전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해오면서 일에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나의 역량이 키워진다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원치 않는 이직으로 납품일을 시작했을 때 '배울것 없는 일'이라면서 너무 하기 싫어 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나는 다른 회사의 납품 사원들처럼 업무 시간에 잠시 잠깐 농땡이치면서 하루 하루 시간 보내는 거에 만족하며 사는 내가 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납품, #라디오, #불량, #검수, #봉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