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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에 대한 긴급 성명을 발표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TV 연설 갈무리.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에 대한 긴급 성명을 발표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TV 연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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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의 파리 테러로 130여명이 숨지고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이 정도로 심각한 살상사건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알제리 독립전쟁(1954-62년) 때도 파리에서 간간이 테러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다. 파리는 올 초에 이미 테러 공격을 받은 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는 과정에 있었기에 충격은 더 심했다.

1월의 테러는 언론의 자유와 유태인 상점을 겨냥하는 타깃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요일 저녁 주말을 즐기는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자살 테러였다는 점에서 그 잔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전쟁에 돌입한 프랑스

파리는 대도시이지만 실제 테러가 발생한 곳은 서울의 사대문에 해당하는 무척 좁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비극은 이들이 모두 파리 시내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샤를리 에브도가 위치했던 똑같은 동북부 지역에서 이번에도 바타클랑 콘서트홀 공격이 이뤄졌다. 다행히 피해는 적었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축구 경기가 펼쳐지던 운동장 역시 공격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10개월 만에 당한 두 번째 공격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반응은 격한 감정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프랑스 정부의 반응은 무척 신속하고 강경한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 다음날 이번 사태를 '다에슈(Daech)'가 자행한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반격으로 이 테러 집단을 소탕하겠다고 밝혔다. 다에슈는 이슬람국가의 아랍어 이니셜이다.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형식적 합법성을 부여하거나 '이슬람'을 내세워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전쟁에 돌입하는 만큼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또한 16일에는 상원과 하원을 모두 소집하여 압도적 표결로 비상사태에 대한 3개월의 기한을 보장받았다. 우파에서는 6개월의 비상사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날 프랑스 의원들은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국가(國歌)를 합창하며 단결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2001년 미국 9.11사태 직후 미국 의원들의 국가 합창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었다고 평가한다.

비상사태란 단순히 반테러 조치를 강화하는 강경한 정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일상적 권리가 중단되는 체제를 뜻한다. 간단한 예로 비상사태에서는 모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다. 1월의 테러 이후 대통령도 참여해서 테러에 굴하지 않겠다는 시위를 벌였다면, 11월 테러 이후의 프랑스의 대응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잠시 접고 전쟁에 돌입하겠다는 전혀 다른 방향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지속과 중단을 가르는 대립이다.

터키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와 반IS 전선

이슬람국가(IS) 테러로 89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주변에 15일 정오께(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쌓여 있다.
▲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앞 추모 현장 이슬람국가(IS) 테러로 89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주변에 15일 정오께(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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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 대통령의 전쟁은 두 전선에서 동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하나는 국내에서 더 이상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일이다. 실제로 비상사태 하에서 치안당국은 사법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시민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전 영장이 없이 감청을 하거나 수색, 체포, 연금 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번 비상사태 선언 이후 이미 1233건의 수색을 통해 230건의 무기를 압수했고, 266명을 가택연금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프랑스 여론은 정부의 조치를 대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압도적인 84%가 추가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하나의 전선은 시리아와 이라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이슬람국가를 박멸하겠다는 해외 전쟁이다. 프랑스는 이미 항공모함 샤를 드 골을 지중해 동부로 이동하여 이슬람국가 세력에 대한 폭격을 강화하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미국의 오바마, 독일의 메르켈, 터키의 에르도안, 러시아의 푸틴 등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을 만나며 거대한 반 IS연합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각 국가마다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대연합을 형성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11월 24일 러시아의 전투기를 터키가 격추시킨 사건은 다양한 세력을 하나로 묶는 어려움을 대변해 준다.

이슬람국가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라카(Raqqah)는 인구 25만 명의 도시이기 때문에 공습만으로 IS를 박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IS 박멸이라는 프랑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상군의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에서의 실패에서 볼 수 있듯이 서방군대가 아랍 땅에 들어가면 오히려 부작용을 키울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의 다양한 종교 및 종족적 역학을 활용하여 이슬람국가를 제압해야 하는데, 대리 세력을 활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제2의 IS, 제3의 IS

올랑드의 전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IS가 무너졌다고 가정하더라도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IS는 서구에 대한 증오로 뭉친 극단주의 세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이 아무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두 나라를 무너뜨리면서 알 카에다를 공격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해도 알 카에다는 다른 얼굴,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파리 테러 직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인질극을 벌인 조직도 알 카에다 계열이라고 한다. 현재의 IS가 사라져도 제2, 제3의 IS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 1월, 그리고 이번 11월 테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테러리스트들이 대부분 유럽에서 태어났거나 자라난, 유럽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유럽에서 차별당하고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근본주의 이슬람의 유혹에 넘어가고, 시리아나 이라크, 예멘 등지에 가서 세뇌와 훈련을 받은 뒤 테러의 행동에 나서는 패턴이다. IS의 힘은 영토를 통제하는 정치조직으로 이들에게 은신처와 훈련캠프를 제공하면서 물질적 지원과 상징적 보상을 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서구사회의 소외현상과 비서구사회의 국가 실패가 만나 21세기 테러리즘의 토양을 제공하는 셈이다. 프랑스의 신속하고 강경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공격을 당한 국민들은 보복을 원하고 당장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유럽에 거주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전사'들을 모두 체포하거나 감시할 방법은 없다. 한 명의 위험인물을 24시간 감시하는 데는 20~50명의 요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설사 체포하더라도 새로운 전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또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방대한 영토에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들을 설립하는 것도 서방세력의 능력 밖이다. 미국이 보여주었다시피 단기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쉽지만 장기적 평화를 만드는 일은 지난하기 때문이다.

전쟁담론과 아슬아슬한 프랑스의 미래

이번 테러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올랑드 대통령과 발스 총리가 밝히고 있듯이 테러와의 전쟁은 향후 수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발스 총리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테러 공격까지 언급하며 사회의 긴장감을 잔뜩 높이고 있다.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과도한 대응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여기서 무척 중요한 배경이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2017년 대선이다.

2012년 당선된 올랑드는 사르코지처럼 좌충우돌의 대통령이 아니라 '정상적인'(normal)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너무 정상적이라 그런지 올랑드는 당선 직후부터 인기가 추락하여 역사상 가장 지지도가 낮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2013년 초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토벌하겠다며 말리에 군대를 파견했다. 올랑드의 대 테러 전쟁은 이미 그 때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제 시리아와 이라크까지 전선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내치에서 실패한 대통령이 테러 정국의 장기화로 다음 선거에서 득을 볼 수 있는 흐름이다.

테러는 또한 극우 민족전선의 지지도를 끌어올릴 것이 확실하다. 대선에서 마린 르펜이 선전하여 2002년 그의 아버지처럼 결선투표에라도 올라간다면 올랑드의 재선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초선의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생각하는 것은 상수다. 또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재선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정책적 판단은 없을 것이다.

염려스러운 부분은 프랑스의 전쟁 담론이 더 많은 충돌과 공격을 불러오는 일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진행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상징적 적이 되었듯이, 프랑스의 전쟁 리더십은 프랑스를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 목표로 부상하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과거 식민주의의 역사로 인해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안고 있으며 중동에 다녀온 전사의 수도 제일 많다. 여러모로 프랑스의 미래를 바라보면 아슬아슬한 빙판을 걷는 느낌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숭실대·사회과학연구소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슬람국가, #파리테러, #올랑드,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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