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논란을 보도한 SBS < 8 뉴스 > 화면.

티파니 논란을 보도한 SBS < 8 뉴스 > 화면. ⓒ SBS


"유명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티파니가 광복절에 자신의 SNS에 일본의 전범기를 올려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비난이 거세지자 게시물을 삭제하고 자필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SBS가 언제부터 이렇게 연예인의 "역사의식 부재"에 관심이 많았었나. 하필 광복절 전날에 한 실수라 괘씸죄가 적용됐나. 그도 아니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 걸그룹은 그 책임감이 더 무거운 건가. 행여나 티파니가 경쟁사인 KBS의 예능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어선가.

광복절인 15일 SBS <8뉴스>는 <소녀시대 티파니, 광복절날 '日 전범기 무늬' 문구>란 리포트를 통해 사과문까지 게재하며 일단락되는 듯하던 '티파니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더욱이 친절하게도 "아이돌 스타의 역사의식 부재가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라며 지난 5월 안중근 의사 사진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AOA의 설현과 지민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어제(14일) 일본 도쿄에서 콘서트를 마친 뒤 올린 사진에 일장기 이모티콘을 붙였습니다. 오늘 오전엔 사진 공유 SNS 스냅챗에 고가의 가방을 찍은 사진에 일본 전범기 무늬로 장식된 '도쿄 재팬'이라는 문구를 함께 올렸습니다. 욱일기로 불리는 일본 전범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깃발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인기 연예인이 그것도 광복절에 SNS에 일본 전범기를 올린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습니다. 출연 프로그램 하차 요구로까지 번지며 논란이 커지자, 티파니는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자필 사과문을 올렸습니다.(중략) AOA의 설현과 지민은 한 케이블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 사진을 보고 '긴또깡' 등을 언급해 지탄받았고, 빅뱅의 탑과 빅스 등도 일본 전범기가 그려진 의상을 입었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되고, 티파니는 안 되는 '역사의식 부재'

 티파니가 SNS 게시한 자필 사과문.

티파니가 SNS 게시한 자필 사과문. ⓒ 인스타그램 갈무리


씁쓸한 것은 SBS의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는 정반대의 행태였다. '티파니 논란'이 검색어에 오르고 SNS를 달구던 그 광복절 하루, 다른 한 축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안중근 의사 순국 장소' 발언이 구설수에 올라 있던 상태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한 광복절 경축사 중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문장이 문제시 된 것이다. 실제 안중근 의사가 숨진 장소는 중국의 뤼순 감옥. 경축사 직후,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라는 사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와 함께,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건국절' 발언은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관련,  학계와 여야 정치권의 반발과 논란에 또다시 불을 지키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연예인의 역사의식 부재"에 일침을 가하던 SBS는 이 논란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했다. 대신 <사드, 안보 위한 자위적 조치…예정대로 진행>과 <박 대통령, '헬조선' 정면 반박…"용기 갖자">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맛에 맞을 경축사 요약을 1, 2번 리포트로 내보냈다.

아마도 SBS는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의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반면 같은 시각 JTBC <뉴스룸>은 건국절 언급에 대해 <박 대통령 경축사서 "건국 68주년" 언급…논란 재점화>를 1번 리포트로 내보낸 뒤, 전화 연결을 통해 찬반으로 나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와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주진오 교수의 입장을 듣기도 했다. 절대 SBS처럼 연예인의 역사의식 부재를 언급하는 걸로 대신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설현에게 사죄를 강요하던 이들, 대통령에겐 왜 침묵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중근 의사 순국 장소' 논란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부랴부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경축사 전문엔 하얼빈은 뤼순으로 고치는 촌극을 벌였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한 셈이지만, 공식적인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건국절 논란 역시, 16일 오전 청와대 대변인의 ""어제 대통령 말씀은 말씀대로 이해해달라"는 동문서답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티파니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SBS 홈페이지 해당 뉴스엔 일제히 비난 글이 달렸고, 티파니가 출연 중인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시청자 게시판엔 하차를 요구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달렸다.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SNS 반응도 일부 찬반이 있었지만 비난이 거셌다.

참담하고 참혹하다. 곧바로 자필사과문까지 올린 연예인에게는 득달같이 달려가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은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침묵하나. 더불어, 연예인에게 과한 책임을 요구하던 이들은 다 어디갔나. 그 연예인에게 집중된 관심을 쏟는 언론을 질타하던 이들이 왜 SBS의 이중된 행태는 모르쇠로 일관하나.

대통령은 단순한 실수 아니냐고.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 사진을 두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난스럽게 '긴또깡'이라 말한 것은 "역사의식 부재"고,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틀린 것은 무려 실수(!)라고? 그렇지 않다. 충분히 동일선상에서 비교가 가능한 맥락이다.

같은 맥락에서, (경중은 다를 수 있지만) 연예인들의 실수에 사죄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사과를 요구해야 맞다. 백보 양보해, 이번 경축사 논란이 실수라고 한다면 1년에 한 번, 그것도 손꼽히는 국가 기념일에 수십 분동안 한 대통령의 연설에서 팩트조차 거르지 못한 보좌진들은 당장 해임해야 마땅하다. 대통령 역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고. 

언제부턴가, 정치인과 공인들에게 필요하고 요구될 책임감과 도덕성을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에게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대리만족이랄까. 권력층과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극도에 달하고,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불만족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헬조선'의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지금에라도 되짚을 필요가 있다.

<티파니의 두루뭉술 사과, 정말 '깊이' 반성했나>와 같은 기사를 쏟아내는 매체들, KBS나 SBS 게시판에 달려가서 '티파니 하차'나 쌍욕을 해대는 이들, 20대 초반 아이돌일 뿐인 설현과 지민이 뚝뚝 흘리던 눈물을 보고서 "뭔가 해냈다"고 안도하는 이들 모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사과를 요구하시라. 그게 바로 "역사의식 부재"에 제대로 책임질 이들을 향한 정당한 분노와 항의다.

티파니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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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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