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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8월 4일...
 아... 8월 4일...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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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생일은 8월 4일이다. 그렇다. 생일은 항상 여름방학 한가운데였고 휴가철과도 겹친다.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친구들과 그 흔한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8월 4일의 기본 설정 값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주변에 없는 날'이었다. 적어도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런 생일이자, 휴가철이자, 방학을 몇 번이나 겪었을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직했다. 첫 직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야근수당을 비롯한 시간외수당이 철저하게 지급되던 회사였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가 좋았던 것은 '여가 시간'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길고 긴 평일이 막을 내리면 주말을 기해 비로소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여름 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동료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언제 갈 거예요?" "이번 휴가때 뭐 할거예요?" 등이 주된 화두였다. 서로가 다가올 휴가를 만지작거리면서 들뜬 점심식사를, 티타임을 나누고 있었다.

이것도 잠시였다.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던 동료가 항공권 취소를 위해 인터넷 창을 띄웠을 때, 여행할 인원이 줄어 더 작은 방으로 옮겨달라며 강원도 어디의 펜션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던 통화를 엿들었을 때, 내가 알게된 것은 '미리 휴가 계획을 짜놓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였다. 첫 직장이 안겨준 사회생활의 덕목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대신 평소에 야근 안 하잖아."

부랴부랴 휴가 계획을 변경하는 동료들에게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 그때부터 월급이 권리를 묵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해 8월 초에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어김없이 그해 생일은 퇴근 후 가족과 함께 보내야만 했다.

생일날 업무 미팅 나갔는데... 이 팀장, 완전 얄밉다

동창들과의 휴가는 떠나지 못했고, 팀장과 나는 광화문에 서 있었다.
 동창들과의 휴가는 떠나지 못했고, 팀장과 나는 광화문에 서 있었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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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두 번째 직장에 입사했다. 계약서를 쓸 때부터 여러 가지 조건들을 전 직장과 저울질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약속했던 직장이었다. 몸 담았던 부서의 팀장은 회식때면 이런 말을 기계적으로 읊어댔다.

"어려운 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하고…."

술자리에서 하는 말이라 흘려들을 법 했으나 알다시피 권리를 묵살하는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그것도 같은 부서의 팀장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 말들은 너무나도 든든한 말이었다.

어김없이 여름이 시작됐고, 하나둘씩 휴가 이야기를 꺼내놨다. 하지만 전에 겪었던 회사에서 맥없이 무너졌던 '휴가 계획'들이 떠올라 조용히 동료에게 물었다.

"휴가 올리면 다 보내줘요?" 
"여긴 휴가 자르는 거 못봤어요."

이번에야말로 그럴듯한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톡방의 동창들과 휴가 일정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함께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하지만 대한민국 기업에서의 휴가는 일기예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것. 아니나 다를까 휴가를 하루 앞두고 기자는 동창들의 단톡방에 '참석 못한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전해야 했다. 휴가 기간임에도 급하게 진행해야만 하는 회의가 있다는 것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회사에 몸담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정황들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휴가는 8월 3일부터였고 생일인 8월 4일 오전에 나는 정장을 입고 광화문의 미팅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기자를 보자마자 팀장은 미안하다고 했다. 단톡방은 아우성이었다. 미팅이 끝나고 난 이후에 기자는 단톡방에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젊을 적엔 말이야, 돈보다는 직함이 중요한 거야."

그날 미팅에 불러 미안하다는 말을 끝내면서 대표가 한 말이다. 그의 손목엔 IWC 시계가 둘러져 있었다. 어제는 브라이틀링이었다. 그날은 휴가 첫날이자 생일이었고 직함보다는 돈이 더 중요했으며 돈보다는 쉴 수 있는 권리가, 꼰대의 훈수보다는 함구가 더 절실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팀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대표님."
"…."

쿨하게 휴가 가라고 했다... '꼰대'가 등장했다

팀원에게 쿨하게 휴가 가라고 했다. 그 팀원은 결국 떠나지 못했다.
 팀원에게 쿨하게 휴가 가라고 했다. 그 팀원은 결국 떠나지 못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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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후, 직장을 옮겨 새로운 명함을 파게 됐다. 전보다 젊은 분위기의 회사였다. 전체적으로 평균 연령도 낮았고 인원도 전보다 많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중간에서 업무를 관리하게 됐다. 팀원들보다 회사 대표나 다른 팀장들과의 소통이 잦은 직급이었다. 보고하는 일보다는 보고받는 일이 많았고 지시받는 것보다는 지시하는 편이 잦았다.

팀워크를 위해 전보다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껴 되도록 많은 주제로 동료들과 이야기하고자 노력했다. 업무와 회사생활에 있어 필요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당부했다. 전 직장의 팀장을 반면교사 삼아 회식 자리, 술취한 말들은 최대한 뱉지 않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소통을 유도했다.

그렇게 팀원들과 별의 별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은 휴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는 점이었다. 업무 특성상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밤낮없이 함께 일했던 팀원이 쭈뼛대며 말을 꺼냈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휴가 좀 쓸 수 있을까요?"

왜 안 되겠느냐며, 그렇게 하라며 그를 다독였던 나는 며칠 뒤, 그것이 속단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가 보냈던 휴가신청서가 반려된 것이다. 대표에게 묻자 곧바로 답변했다.

"지금 회사 사정 알잖아. 쟤 없으면 다음주에 어떡하라고."
"사람이 쉬어야 일도 하죠, 대표님."

당신의 휴가는 이미 휴가가 아니다

십수 년간 방학과 휴가철과 생일이 겹쳤던 것이 마치 환상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휴가철'에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이들이 있기나 한 걸까? 지난 7월 8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9.3%는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단다.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는 이유로 '바쁜 업무'(41.3%)가 가장 많았다고. 한국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통계가 아닐까?

더 기가막힌 통계도 있었다. 바로 '휴가를 가기위해 가장 많이하는 거짓말'에 관한 통계였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지난 2015년 여름, 직장인 1033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휴가철에 가장 많이하는 거짓말은 비행기 티켓 예매나 숙박시설 예약 등 '여행일정을 이미 잡아서 휴가일을 바꾸기 힘들다(50.8%)'란 말이었다.

이러한 거짓말은 관리자급(42.1%), 과장급(44.4%), 대리급(49%), 사원급(55%) 순으로 직급이 낮을수록 빈번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54.9%)이 남성(46.5%)보다 많았다. 거짓말까지 해야 겨우 지켜낼 수 있는 권리라니…. 이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단순한 시쳇말이 아니라 2016년 한국사회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대명사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우리는 휴가를 쓰지 못하는가? 우리는 그토록 근면성실한가? 당연히 아니다. 다음 통계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휴가철 꼴불견 중 최악의 꼴불견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55.8%가 계속 업무 연락을 하면서 휴식을 빼앗는 직장 상사라고 대답했는데, 그 중 본인은 바빠서 휴가 못 간다며 빈정대는 이른바 '꼰대형'이 16.2%, 휴가 기간 동안 업무가 쌓여있을 것임을 강조하는 '저승사자형'이 12.8%, 휴가 후 바로 많은 일 더미를 건네는 '깡패형'이 11.3%, 휴가철에 평소보다 더 많은 이메일을 보내는 '메일 테러리스트형'이 4%였다.

이쯤되면 휴가가 휴가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맛있는 식사 준비해 놓고 한창 먹으려 하는데 옆에서 '맛있게 먹어. 난 일하고 있을게. 아이, 참 바쁘네. 맛있게 먹어' 하는 꼴. 소화는 커녕 급체해서 개워낼 것이 뻔하지 않나.

꼰대 호통에 선배 뒤통수... '사직서.hwp'가 아른거린다

사직서.hwp... 커서만 깜빡깜빡 (책상이 이렇게 더럽다는 건 안 비밀)
 사직서.hwp... 커서만 깜빡깜빡 (책상이 이렇게 더럽다는 건 안 비밀)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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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용하기도 고루한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근로환경이 열악한 10개국 중 3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십수 년째 최상위권으로, 2014년 기준 통계에 의하면 독일인들보다 연간 4개월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중에 익스피디아가 지난 2013년 집계한 바에 의하면 연간 유급휴가일수는 평균 10일로, 주요 24개 국가 중 가장 적었다. 그마저도 10일 중 평균 4.4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균 30일이나 주어져 가장 많은 유급휴가를 보장받는 프랑스 근로자들은 대부분이 주어진 휴가를 다 쓰면서도 휴가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단다.

전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리도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설문조사와 통계를 토대로 유추하건데 이는 한국 근로자들의 근면성실함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전형적인 '꼰대들의 갑질' 탓이다. 많건 적건 일단 보장된 휴가를 본인이 원할 때 쓰겠다는 데 반대 의견이 구구절절이다. 이따금씩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기업의 소식이 미담으로 들리는 것, 그런 당연함이 특별한 복지로 보이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얼마전 JTBC의 한 프로그램에서 도올 김용옥은 젊은이들에게 일갈했다. '헬조선은 젊은이들이 만드는 것'이며 '헬조선이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꼰대들 호통과 잔소리에, 상사 눈치보며 하루를 버텨내다가 이따금씩 믿었던 선배에게마저 뒤통수를 맞다보면 '사직서.hwp'를 열까말까 수십 번씩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각종 고지서가 날아드는 월말 의무방어전을 간신히 치르는 게 이 땅의 청년 근로자들이다. 그런 직장마저도 못구해서 안달난 마당에 헬조선을 말할 자격이 없다니요. 오히려 그대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시느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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