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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한 이용자가 SNS에 올린 글이다. 주민들에게 하대당하는 아파트 관리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27일, 한 이용자가 SNS에 올린 글이다. 주민들에게 하대당하는 아파트 관리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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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강남구 한 아파트의 관리소장을 하고 계신데, 평소 주민들이 음식이나 물건을 나눠주고는 한다. 꼭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이지만. 어제는 집에 왔더니 거실에 치약이 가득했다. 불안한 기운은 역시, 뉴스를 보니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이슈가. 참 대단해...

주민들 집 가서 땀 흘려 일해주고, 이런 물건 받으면서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을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서 더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다. 못된 사람들..."

지난 27일, 한 이용자가 SNS에 올린 글이다. 주민들에게 하대당하는 아파트 관리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주민들이 선의에서 치약을 '선물'한 것인지, 가습기 살균제 성분 문제가 불거진 치약을 '처리'하려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표했다. 그간 아파트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익히 보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리소장이 이런 처지라면, 경비 노동자들의 상황은 오죽할까. 아파트 경비원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작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의 기간 동안 3500건이 넘는 결과가 나온다.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목은 '폭력', '폭언', '갑질', '눈물', '해고', '투신' 등이다.

면밀하게 내용을 분석하지 않아도 부정적인 기사들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중에는 '죽은 꽃 살려내라' '종놈 주제에…' '경비원 청부폭력'처럼 괴담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마법사도 아닌데, 무슨 수로 죽은 꽃을 살려낸다는 말인가.

매우 드물게, 훈훈한 소식을 발견할 수 있다.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 때부터 함께 했던 경비원이 암 진단을 받고 사직하게 되자, 입주민들이 함께 모금하여 경비원 아저씨의 치료를 위해 성금을 전달했다는 소식이다. 따뜻한, 그러나 흔치 않은 기사였다.

경비원의 불안과 눈물에 대한 기사와 매우 드문 미담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이 있다. 바로 아파트 경비원은 어떤 일자리인가에 대한 '관심'과 이들의 노동이 아파트라는 공동체에 사는 우리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책임 의식'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일자리에 대한 관심은, 경비원이 어떻게 고용돼 있고 어떤 업무를 하는가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용은 불안하고, 눈치 볼 곳은 많고... 고단한 경비원

지난 2014년 10월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경비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14년 10월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경비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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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49만 원, 24시간 교대근무, 평균 65세의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

현재 우리 사회 경비원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대부분(서울지역 아파트의 경우 85.9%)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한 용역회사 또는 관리회사를 통해 고용된다. 소속된 회사가 일차적인 고용주이긴 하지만, 이들 업체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관리 업무를 위탁한 곳. 결국 입주민들에 의해 고용된 셈이다.

또한 경비 업무가 이루어지는 아파트 단지의 관리소장의 업무 감독을 받으며 일해야 한다. 따라서 입주민들, 관리소장, 용역회사 모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사장님'이 너무 많은 고용구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다.

층층시하에서 일한다 해도 안정적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마저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2015년부터 최저임금이 100% 적용되면서 상당수 아파트에서 대량 해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각주①).

또 적절한 근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기 힘든 구조다.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경비원들의 고용계약 역시 해지되는 경우도 흔하다. 용역업체들은 퇴직금 등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3개월 또는 6개월 안팎의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1년 이상 근무했음에도 퇴직금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다.

경비원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 또한 필요하다. 대부분 24시간 교대의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데다 경비업무 이외에 택배수령, 분리수거, 주차관리, 청소와 같은 추가적인 일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업무 과정에서 입주민들과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며 처우에 대한 불만도 생긴다.

휴식시간이 있지만, 경비원들에게 이 시간은 '휴식'이라기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에 가깝다. 휴식시간이 무급이기 때문이다. 휴식시간을 늘려 임금인상의 폭을 조절하기 때문에 2015년 기준 휴식시간은 통상 8시간 내외가 되었다(각주②). 하지만 휴게장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입주민들의 업무요청에 노출되어 대부분의 경비원은 자유롭게 쉬지 못한다.

경비원의 노동권,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14년 경비노동자 분신사건이 있었던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에서 “분신으로 아파트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동료 경비원 전원에게 사실상 해고통보를 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2014년 11월 26일 오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노원역 앞에서 경비원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막아달라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14년 경비노동자 분신사건이 있었던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에서 “분신으로 아파트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동료 경비원 전원에게 사실상 해고통보를 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2014년 11월 26일 오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노원역 앞에서 경비원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막아달라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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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에 관한 책임의식이다. 이러한 책임 의식은 입주민들의 대표자회의가 실질적인 사용자 역할을 한다는 것에 기반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자신의 고용에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경비원이 63.7%였지만(아파트 노동자 지원방안 연구, 2015,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작 아파트 주민 개개인은 경비원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다. 모두의 책임이어야 할 경비원 고용, 부당한 처우, 업무 내용 등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경비 업무는 대표적인 노년의 일자리다. 그렇기에 이들의 노동권 문제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의 막다른 일자리 해법을 찾기 위한 희망제작소 사다리포럼의 2016년 논의 주제로 아파트 경비원 고용문제를 선정한 데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경비 업무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라고 할 만큼 고령의 재취업종이지만(각주③), 일자리의 질이 아주 낮다.

노년의 일자리이니 그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하는가. 고령의 노동은 처우가 열악한 것이 당연하며,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막다른 일자리이어야 하는 좋은 노년의 일자리를 꿈꿀 수 있어야 진짜 '일할 맛' 나는 사회일 것이다. 오늘날 경비원 일자리의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의 노년기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 3개월마다 해고... 우리 '같이' 삽시다

* 각주
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아파트경비노동자의 숫자가 약 4만여 명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제14호 희망이슈, 2016.9. 희망제작소)
② 노원노동복지센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일대의 아파트 경비노동자 휴게시간은 2012년 6시간 내외에서 2015년 8시간 내외로 2시간가량 늘어났다.
③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5년 펴낸 아파트 노동자 지원방안 연구 결과, 아파트 경비원 남성비율은 99.3%, 평균연령은 65.6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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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희망제작소, #아파트경비원, #노동, #일자리,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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