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쓴 여러 개의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이 먼저 제작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할 혹은 제작하고 싶은 영화를 몇 편씩 말하는 버릇이 있다. 영상으로 제작되길 기다리는 시나리오들 중 영화 <그물>이 먼저 선택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김기덕 감독은 <그물>의 시나리오를 3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했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사람은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김기덕 감독을 만나 동생인 류승범이 한국에서 함께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감독 2명 중에 한 명이 김기덕 감독이라고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몇 편의 시나리오 중 류승범에게 향한 건 '그물'이었다. 그리고 <그물> 속 류승범의 연기는 김기덕 감독의 선택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물>은 모터에 그물이 걸려 의도하지 않게 남한으로 흘러가게 된 북한 어부 철우에게 일어난 일을 다룬 영화다. 국가에 간첩인지 아닌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철우의 일상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모두 '그물' 탓이다.

영화의 제목인 <그물>은 '그물' 탓에 남한으로 오게 된 어부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고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그물'이 국가고 '물고기'가 개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언제든지 그물의 어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9월 28일 영화 <그물>의 언론시사에서 김기덕 감독의 말)

6일 개봉한 영화 '그물'의 감독 김기덕을 지난 9월 30일 서울 삼청동 근처에서 만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전해서 익숙한 김기덕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들과 함께.

 영화 <그물>의 김기덕 감독이 지난 9월 30일 서울 삼청동 근처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리 모양, 복장과 신발. 김기덕의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 머리꽃


국가라니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인간 바닥의 본성과 욕망을 탐구해온 김기덕 감독이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국가에 대해서 논하는 모습은. 하지만 그는 '근본적인 고민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에 가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스톱>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 전에 <악어>나 <나쁜남자> 같은 인간에 대한 욕망을 다룰 때에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인간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창작을 하는 여유가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남북문제처럼 안심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정서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불안과 공포가 느껴지더라. 기본적으로 자유로워야 영화도 만들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최근작이 더 그런 경향성을 띠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쪽에 더 의식이 가. 고민이 되고."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런 고민들에 고착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화두인 인간에 대한 고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원형적인 인간성 같은 것들. 인간은 왜 이런가. 나를 포함해 모든 인간들이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 그런 인간성이 인류를 지속해갈 것인지. 그런 문제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영화 <그물>은 우리 세대만 생각하면서 만든 영화는 아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좀 더 안전한 남북관계를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영화 <그물>의 김기덕 감독이 지난 9월 30일 서울 삼청동 근처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덕 "우리 스스로 언제든지 <그물>의 어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 머리꽃


잘 알려진 대로 김기덕 감독의 부친은 6.25 전쟁에 참전한 뒤로 총을 맞고 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김기덕 감독은 "내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빨갱이 새끼들은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분노가 내게 그대로 쏟아졌고 각인됐다"고 말했다. 영화 <그물> 속 북한군에 의해 부모를 잃고 침과 피를 튀기며 애국가를 열창하는 국정원 조사원(김영민)이란 기괴한 인물은 김기덕 감독의 부친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김영민의 캐릭터에는 내가 당시 그의 나이대에 갖고 있던 분노가 투영돼있다. 늘 아버지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해병대에 입대했고. (김기덕 감독은 해병대 하사관으로 5년간 군에 있었다) 내가 영화감독이 되면 그의 주관적인 분노를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했다."

6.25 전쟁에 대한 김기덕 감독 개인의 화두는 그가 제작과 각본을 맡은 <붉은 가족>이나 제작투자까지 감행했던 영화 <일대일>에서부터 계속 이어진다. "이산가족 세대도 다들 돌아가시고 어쩌면 정말 두 개의 국가로 갈 수밖에 없고 더 적대적인 남북이 아니라 두 개의 국가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한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열강들 사이에서 이 땅이 대리전 혹은 전쟁터가 되는 두려움 같은.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직시해보자는 뜻에서 만든 영화다."

유해진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나이가 들어 유해졌을 수도 있다"며 웃던 김기덕 감독. 그는 "이제는 인간이 악하다기보다는 환경과 시스템으로 그렇게 된다는 원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간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라고 했다. 본인 자신에 대한 영화든 그게 아니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문제제기든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기덕 감독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영화들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대안을 찾을 수 있고 또 어떤 방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오히려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또 한 편의 김기덕 영화, 아시아 고대 왕국의 종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무신(Who is God)>의 제작이 예정돼 있다. 중국에서 촬영을 진행해 많은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 그는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현재 중국 작업은 중단된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현재로선 쉽지 않다. 심의나 계약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에서 찍을 수가 없다. 그래도 <무신>은 어느 나라에서라도 꼭 만들 생각이다."

이제는 '인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이 56세의 감독의 영화는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하며 중심 화두인 '인간의 원형질'을 담아낼 것으로 보인다.

그물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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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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