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눈이 내린 지난 달 26일 한양대학교 IT/BT관에서 2016 한국야구학회 가을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흥미로운 학술논문 발표를 비롯해 이상훈 LG 트윈스 피칭아카데미 원장의 특별 강연, 야구계 전문가들이 패널로 출연한 대담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야구학회는 지난 2013년 1월 16일 창립총회에서 '한국야구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당시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연구'와 '학'이라는 단어의 중복을 지적하며 '한국야구학회'로 이름을 변경, 올해로 4년째를 맞이했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학술대회가 열리고 겨울엔 겨울야구학교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이 날은 이상훈 원장의 특별강연으로 행사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평소 학술대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야구계 관계자들과 팬들도 적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LG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학회에 참석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연중인 이상훈 원장 이상훈 LG 트윈스 피칭아카데미 원장이 지난 26일 한양대학교에서 개최된 2016 한국야구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특별 강연자로 나섰다.

▲ 강연중인 이상훈 원장 이상훈 LG 트윈스 피칭아카데미 원장이 지난 26일 한양대학교에서 개최된 2016 한국야구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특별 강연자로 나섰다. ⓒ 유준상


'야생마' 이상훈, "프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직업"

우리가 알고 있던 '야생마'라는 이미지와 달리 강연 내내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 원장은 "아무것도 준비해 온 것이 없다"라고 운을 떼면서도 선수와 코치 생활을 하며 본인이 느꼈던 점을 풀어냈다. 강연을 진행하면서 목이 마를 때마다 맨 앞에서 강연을 듣던 팬의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셔 참석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선수' 이상훈을 기억하는 팬들은 그가 선수 시절 뛰면서 마운드에 올라간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는 이상훈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일단 올라가면 떨린다. 내가 한 방을 맞으면 팀이 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생각이 딱 지나가면, 구종을 떠나서 포수 전체를 보고 던진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던진다"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양 원더스부터 지난해 두산 베어스, 그리고 올해 LG 트윈스까지 '코치' 이상훈은 올해 네 번째 시즌을 보냈다. 이 원장은 "선수 때는 연습을 되게 안했다. 그런데 코치가 되고 나니까 연습을 엄청 시키게 되더라.(웃음) 분위기에 맞게끔 선수들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그런 코치가 좋은 지도자 상이 아닐까"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 원장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마인드를 강조했다. 그는 올해 LG 트윈스 피칭아카데미를 책임지면서 주로 20대 초반의 선수들의 육성을 담당했다. 이 원장은 "부상 등의 사유로 공을 내려놓는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대현, 유재유 등의 훈련을 도왔는데 이들은 이제 내 손을 떠나 대부분 1군 마무리훈련에 합류하게 됐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프로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JOB(직업)'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간단하면서도 한 번에 압축할 수 있는 답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 원장은 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야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강연을 통해 보여주었다.

'코치' 이상훈이 전달한 메시지

이상훈 원장은 자신도 선수생활을 했던 만큼 선수들의 입장에서 다가가려고 했다. 무조건 훈련만 시키기보단 선수들의 몸상태나 컨디션이 다른 만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좋은 신인 투수들이 프로에 입단을 하더라도 메디컬 체크를 받으면 여기저기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선수 또는 상황마다 사례가 다르지만, 이런 투수들이 스프링캠프 초반까진 좋다가 서서히 팔에 통증을 느낀다. 그러다가 결국 수술을 받으며 한동안 공을 던질 수 없게 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흔한 일이었다.

'코치' 이상훈은 단호했다. 젊은 투수들에게 스프링캠프에 가지 않는 대신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훈련에 전념하라는 주문만 했다. 젊은 투수들이 6~7월 2군에서만 던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정규시즌 막바지 1군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몇 차례 얻었다. 이 원장의 기대 그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프로야구 못지않게 고교야구에서 활약하는 투수들의 혹사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투수가 계속 던질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공을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프로에 입단하는 투수들의 경우 상태가 심각하다. 실제로 입단하면서 메디컬 체크를 받아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투수는 거의 없다.

이상훈 원장은 "주말리그를 하고 있지만, 던져봐야 일주일에 한 번이다. 대회가 진행되면 보름 정도 치르면 끝나는데, 대회에서 에이스들이 다 투입된다. 대회가 끝난 이후엔 또 운동을 하고, 공을 던지게 된다. 처음 프로에 입단해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스프링캠프 때 많은 관심을 받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을 느끼고, 수술을 받는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관리의 중요성'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는 이상훈 원장 선발 투수일 때 스케줄을 어떻게 계획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다.

▲ 자세히 설명하는 이상훈 원장 선발 투수일 때 스케줄을 어떻게 계획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다. ⓒ 유준상


할 얘기가 너무 많았던 이상훈 원장은 '밤새도록 할 수 있는 게 야구 이야기다"라고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강연에 임했다. 그리고 예정됐던 시간을 훌쩍 지나 강연이 끝났다. 강연 말미에 이 원장은 LG에서 주장직을 맡았을 당시 룸메이트였던 정재복(현재 화성 히어로즈 투수코치)과 일화를 소개했다.

"광주 원정 경기를 가서 수요일에 정재복이 등판했는데, 2회에 5실점 정도를 주고 강판된 적이 있다. 내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들어와 영혼없이 둘이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정재복이 일어나서 야구가 뭐냐고 물어봤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때 난 호텔에 있던 메모지에 볼펜으로 'ㅇㅑㄱㅜ'라고 썼다. 정재복에게 '야, 이게 뭐냐?'라고 물어봤고 정재복이 '야구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계속 질문을 던졌고, 누구나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튿날 정재복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나한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더라. 핸드폰을 갖고 있었지만 문자가 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배운 게 많은 것 같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스타일인 것 같지만, 선수의 입장을 고려하고 생각하는 '코치' 이상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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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유준상의 뚝심마니Baseball(blog.naver.com/dbwnstkd16)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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