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패러디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극소수만 아는 사건이나 인물을 패러디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을 패러디해도 미국 사람들을 웃길 수는 없다. 반대로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럼프를 한국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한국 사람들 역시 전반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패러디는 '대체로 알만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로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일단 패러디는 화제성 있는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미 다른 곳에서 사용된 소재일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디에는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재치나 반전이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쾌함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단순히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을 넘어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을 가미한다면 카타르시스는 커질 수 있다.

활발했던 정치 패러디, 그러나 암흑기 찾아왔다

 JTBC뉴스룸 패러디, < SNL 코리아 >의 고삐가 풀렸다

JTBC뉴스룸 패러디, < SNL 코리아 >의 고삐가 풀렸다 ⓒ tvN


< SNL(Saturday Night Live) >는 패러디로 사는 프로그램이다. 한 주간에 화제가 됐던 모든 것들을 패러디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공감에 대한 관심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위클리 업데이트' 같은 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것 또한 최신 이슈에 민감한 SNL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로 수출이 됐는데, 유독 < SNL 코리아 >만큼은 패러디의 성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 텔레토비' 등 활발했던 패러디가 정권 출범 이후 자취를 감춘 것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방송사의 상황을 직감하게 해준다. 정치풍자는 완전히 사라졌고, 대통령 패러디도 자취를 감췄다. tvN의 모회사인 CJ E&M이 정치적인 압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이 중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SBS 대선 토론회에서 한 기자는" 세계 언론자유지수가 역대 최저 70위까지 추락했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지적했다. "대선 후보로서 공영방송의 점수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후보들은 대부분 낮은 점수를 주며 공정한 언론을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단순히 추측이 아니라, 언론 장악이 있었고, 그런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히 시사프로그램이 아닌, 코미디 프로그램에까지 들이댄 칼날은 정권의 치졸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SNL은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이 사태로 아주 큰 타격을 입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정치풍자가 사라지자 뻔한 패러디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국에는 정치인들을 직접 패러디하며 코너로 만들 정도의 과감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SNL은 금기를 깨고 권력자들에 대한 날이 선 풍자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텔레토비'를 이용하여 캐릭터를 만들거나, 보모를 뽑는 오디션이라는 설정으로 대선주자들을 패러디한 인물들을 내세워 대선 토론을 패러디하는 등 패러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감대는 물론 의외성과 통쾌함을 다 잡아내며 화제에 올랐다. 단순히 성대모사나 흉내 내기가 아닌 성격과 특징, 그리고 그들이 했던 발언들에 대한 해학은 SNL을 특징짓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예인 '디스', 정치 풍자만큼의 호응이 없었던 이유는?

 젊은 감각의 패러디, 공감대를 형성하다.

젊은 감각의 패러디, 공감대를 형성하다. ⓒ tvN


그러나 이런 정치풍자가 사라지자 SNL은 연예인에 집중한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에 대한 패러디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들을 '디스'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자숙기간을 거친 연예인들이 호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잘못을 희화화하는 '셀프디스'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잘못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은, 곧 유행처럼 번졌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점점 차갑게 돌아서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마치 연예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나 성찰보다는 가벼운 농담거리로 전락시키는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나 잘못을 모른 척하는 행태보다는 낫지만, 자신이 한 잘못들에 대한 가벼운 농담은 때때로 불쾌했다.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의 무게와 연예인들의 패러디 무게는 같을 수 없었다. 정치는 사회 전반에 걸친 중요한 사안이지만 연예인들은 재미와 흥미에 국한되어 있는 인물이다. 정치에 대한 패러디는 사회에 대한 패러디와 맞물려 있지만, 연예인에 대한 디스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저지르고, 그 문제를 희화화하자 풍자와 해학이 아닌, 그 잘못은 단순한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통쾌함도 풍자도 해학도 없는 패러디는 결국 잘못을 가볍게 넘기려는 연예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불과했다.

'셀프디스'뿐 아니라 전반적인 연예인 디스 역시 빛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치인의 잘못된 행동에는 입을 다물고, 그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 연예인이라는 것은 강자에게는 몸을 사리고 약자에게는 칼날을 들이대는 전형적인 행동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SNL의 패러디는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 한정된 영역에서만 가능했고, 몸을 사린 개그는 외면받기에 충분했다. 연령대가 15세로 낮춰지면서 섹시 코미디 역시 순화할 수밖에 없었던 SNL은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활력을 찾은 SNL, 언론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다

 언론의 자유는 SNL과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마저 살린다.

언론의 자유는 SNL과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마저 살린다. ⓒ tvN


그러나 최근 SNL은 다시 활력을 찾았다. 바로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나서부터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SNL은 다시 정치 패러디를 쏟아냈다. 이번에는 <프로듀스 101>과 <미운 우리새끼>(아래 <미우새>)를 패러디해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이란 코너를 만들어 냈고, 정치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이어갔다. 반응은 뜨거웠다. 단순한 성대모사가 아닌, 코미디에 섞인 시의성은 시청자들이 마음속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립싱크 파문으로 퇴출된 JYD 여가수 컴백 문제" 같은 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 역시 서슴지 않는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정치 풍자를 젊은 감각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짝 비틀어내는 능력은 SNL만의 장점으로, <개그콘서트> 등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젊은 층이 보는 <프로듀스 101> 같은 아이돌 오디션 등과 인기 있는 <미우새>을 이용해 정치를 어렵고 지루한 것에서 젊은 층이 공유할만한 이야깃거리로 바꾸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정치적 사건을 비틀어 내 웃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SNL의 시도는 신선함을 제공한다. 이렇듯 SNL의 패러디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역없는 개그'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속박이 아닌 자유가 프로그램 하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통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왜 언론이 정권과 결탁하면 타락할 수밖에 없는지는 시사 프로그램도 아닌 SNL만 봐도 증명이 되는 일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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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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