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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8일 오후 전주 전북대 입구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기호 1번'을 뜻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 대세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8일 오후 전주 전북대 입구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기호 1번'을 뜻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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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그동안 수차례 대선에서 '하나의 민심'을 유지했다. 보수여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민주계열의 후보에게 80% 이상의 표를 몰아줬다. 그 대상은 당연히 야권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확실히 다르다. '야권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지지후보가 누구든 상관없이 "한 후보에게 몰표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오마이뉴스>는 이번 대선에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광주의 민심을 살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적으로 보면 호남의 민심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두고 팽팽히 맞서면서도 상승세가 멈춘 안 후보보다 문 후보 쪽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실제 그런 민심의 흐름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이번 민심 탐방의 핵심 포인트였다.

"누가 예쁘다고 찍고, 누가 밉다고 안 찍는 거 아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3자 구도로 치러진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호남을 지배한 키워드는 '호남 홀대론'과 '반문재인 정서'였다. 이를 전면에 내세운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고, 전국적으로도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당초 예상 의석을 훌쩍 넘어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과 부산영남에서 선전을 펼쳐 원내 1당을 차지했지만 텃밭인 호남에서 참패하며 쓴 맛을 봤다.

'호남 홀대론'이나 '반문재인 정서'는 50대 이상 특히 노년층에서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광주 동구에 한 노인정을 찾았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할머니 두 분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김정혜씨(75)는 "누가 되든 좋은 사람이 당선 돼서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야 한다"라며 "문재인, 안철수 인물로만 보면 둘 다 좋은 사람이라서 아직은 누굴 찍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투표를 했다. 그는 문재인 후보가 아직 미운지 묻는 질문에 "누가 밉고, 누가 예뻐서 찍어 주는 게 아니"라며 "문재인씨도 훌륭한 분이고, 광주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지만 너무 약해 보여서 싫었다. 안철수씨는 '호남 사위'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능력이 있어 보여서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또 다른 김아무개씨(71)는 "문재인씨가 민주화 운동도 하고 인품이 좋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잘할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같은 동구의 또 다른 노인정에서 만난 이준구(69, 남)씨는 "솔직히 문재인 후보는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한테 지고 계속 국회의원 하는 게 보기 싫었다"라며 "그 뒤에 당 대표하고 뭐 한다 하면서 시끄럽기만 했지, 뭔가 제대로 된 모습을 못 봤다, 노무현 하고는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는 "노무현은 잘 했지, 문재인은 멀었다"라며 "말은 그렇게 안 해도 전라도를 무시하는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씨는 "문재인씨 부인은 참 잘 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맞어 그건 그래, 싹싹하게 잘하더라"라며 "문재인씨 (당선 되면) 마누라 덕이 크다"라고 동조했다. 문 후보의 배우자 김정숙씨는 지난해부터 약 8개월 동안 여러 차례 호남 지역을 찾아 여러 섬과 시장 등 곳곳을 누볐다. 이씨는 김정숙씨가 이곳에도 방문했는지 묻는 질문에 "그런 건 아닌데 얘기를 들었다.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참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아내인 김정숙씨(오른쪽)가 12일 오전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구내식당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배식 봉사하고 있다.
▲ 이재명 부인과 봉사하는 문재인 부인 김정숙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아내인 김정숙씨(오른쪽)가 12일 오전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구내식당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배식 봉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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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20년 넘게 택시운전을 한 김아무개씨(55, 남)는 "문재인 후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나도 총선 때는 국민의당 찍었지만 그건 총선이고 지금은 좀 다르다"라며 "국민의당이 그때도 지금도 계속 문재인 욕만 하는 것 같아 보기 안 좋다, 문 후보는 박근혜 탄핵 때 잘했고 기회를 얻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도 아직 인기가 있다, 아마 이번에는 두 사람이 비슷하게 (득표가)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취재 중에 만난 다른 50대 남성 함 명과 여성 한 명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였다. 또 다른 50대 남성 한 명은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였다. 이들은 모두 상대 후보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장년, 노년층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반감이 지난 총선에 비해 줄어든 분위기였다. 부인 김정숙씨의 활약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문 후보의 태도가 점수를 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년, 노년 층에서는 안 후보의 강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충장로에서 자영업을 하는 강덕수(59, 남)씨는 "문재인 후보가 젊은 층에서 인기가 있기는 하지만,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 아니다"라며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다 국민의당에 있기도 하고, 두 번이나 양보한 안철수 후보가 한 번 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은 계속 '국민의당은 호남당이라 안 된다, 안 된다' 그러는데, 그런 태도가 오만해 보인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 어떻게 됐나"라며 "'안철수도 안 된다, 안 된다' 하니까 사람들이 오기가 생긴다. 큰 당이 작은 당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지지율은 문 후보가 높게 나온다고 실제 투표를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라고 말했다.

20,30대 인기 높은 문재인, '청년멘토'였던 안철수는 왜?

청년층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조선대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여, 22)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라며 "촛불집회에 여러 번 나갔다. 문 후보가 촛불 민심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후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가 자수성가하고 성공한 기업가이기는 하지만 그게 대통령의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문 후보가 살아온 삶이나 인격적인 부분에서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동안 '청년멘토'로 인기가 높았던 안 후보에게 반감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씨는 "정치를 처음 한다고 했을 때는 호감이 있었다. 하지만 합당하고 탈당하고 오래된 정치인들하고 같이 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뭔가 정치에서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뛰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옆자리에 김씨 친구는 "목소리도 이상해졌다. 비호감이다"라고 거들었다.

20,30대는 특히 두 후보 캠프가 펼치고 있는 네거티브 공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충장로에서 만난 최아무개(27, 남)씨는 "김미경 교수(안철수 후보의 처) 보좌관 갑질 의혹이 어떻게 해명되나 지켜보고 있다"라며 "개인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는 편인데, 아들 취업 의혹은 이미 해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안 후보는 부인 일 말고도 전환사체 발행이나 포스코 이사 때 일들이 문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이아무개(33, 남)씨는 "문재인 후보는 지난 대선 겪으면서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증도 됐다고 본다"라며 "아들 채용 의혹이 계속 거론되지만 확실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반면에 안철수 후보는 좀 더 검증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안 후보를 너무 띄워주는 것 같다. 주변에서도 안 후보가 괜히 정치를 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세 살 딸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김아무개(32, 여)씨는 "지난번 사립유치원장들 집회에서 한 발언은 정말 황당했다. 우리 아이도 이제 곧 유치원을 가야 하는데, 병설, 단설 어디도 보내기가 쉽지 않다"라며 "돈이 많으면 좋은 사립유치원 보낼 수 있겠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불가능하다. 안 후보가 성공해서 돈이 많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후 기자가 안 후보 보육공약에서 단설유치원 설립 자제, 사립유치원 독립성 보장 등 당시 발언 내용은 빠졌고, 병설유치원 6000개 설립이 주요 공약이라 설명했지만 "그래도 그런 자리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들은 공립유치원이 늘고, 사립유치원에 비용이 부담 없게 되면 가장 좋다. 이미 안 후보에게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앞에서 1가 입구에서 열린 '시민이 이깁니다, 광주 국민 승리 유세'에 참석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광주 찾은 안철수 "선거 위해 호남 이용만 하는 후보 뽑아서는 안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앞에서 1가 입구에서 열린 '시민이 이깁니다, 광주 국민 승리 유세'에 참석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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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에는 안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광주시당의 선거운동본부 출정식이 5.18민주광장에서 열렸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광장에는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을 포함해 500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 대부분은 40대 이상으로 보였고, 길을 가다 잠시 서서 안 후보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20, 30대가 몇몇 보였다. 그 가운데 노트를 꺼내 안 후보의 연설을 받아 적는 청년도 있었다.

자신을 광주 한 대학신문 기자라고 소개한 그는 "더 이상 안철수에 대한 환상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한 명의 정치인이 됐다"라며 "아직까지 안 후보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면 청렴함, 공정함, 기존 정치와 차별성 같은 것인데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청년멘토일 때는 자신의 성공을 겸손하게 이야기 했는데, 이제는 그걸 보고 뽑아달라고 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전폭 지지한 40대가 흔들린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 수치나 실제 현장에서 포착된 호남 민심은 50대 이상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20, 30대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우세라고 볼 수 있다. 20, 30대가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걸 감안하면 결국 가운데 40대의 표심이 판세를 가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광주에서 만난 40대 시민들은 양 후보가 제기하는 각종 네거티브 의혹이나 '반문정서'와 같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현실 문제에서 고민이 깊었다.

충장로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아무개(48, 남)씨는 "지난 총선에서는 안철수 후보를 보고 국민의당에 투표를 했는데, 이번에는 고민이 된다"라며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보다 정말 먹고사는 게 문제다. 솔직히 두 당이 합쳐서 더 힘써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야당에서 (당선이) 되는 건데, 누가 정말 어떤 공약으로 나오는지를 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주송정역에서 만난 직장인 최아무개(45, 남, 목포)씨는 "총선 때는 민주당이 너무 싫어서 박지원 대표를 찍었는데 안철수 대표를 찍는 건 조금 망설여진다"라며 "안 후보를 찍을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국민의당 의석이 40석밖에 되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안 후보가 보수 쪽 민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내 생각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김아무개(41, 여)씨는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김씨는 "국민의당이 작다고 해서 안 후보가 대통령을 할 수 없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큰 정당이 돼야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건가"라며 "문 후보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덕분에 성공한 정치인이 됐다. 안 후보가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라고 하는 걸 들었는데, 누구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 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윤아무개(42, 남)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걸 보면서 다시는 독단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며 "안 후보는 문 후보가 대표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혁신안을 내놓아도 자기 대선을 위해 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또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표를 얻으려 한다"라며 "나에게는 차악이 아닌 최악의 후보"라고 말했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은 20일. 대선 승리를 위해 문 후보는 호남의 지지를 지켜야 하고, 안 후보는 호남의 지지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태그:#문재인, #대선, #안철수, #호남,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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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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