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라는 숫자는 참 묘하다. 10진법에서 0이 시작이라면, 9는 충만하고 꽉 차 있는 숫자. 하지만 아직 10에 도달하지 못한 미완성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에는 이런 아슬아슬한 시기를 잘 넘기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열아홉 김소현에게 지금이 딱 그런 때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8살에 데뷔해 벌써 데뷔 10년이 넘었다. 아역을 넘어, 성인 연기자로 가는 입구에 선 김소현에게 중요한 아홉수. MBC <군주>는 스물 문턱 앞에 선 김소현에게 꼭 알맞은 작품이었다. 18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현은 "10대의 마지막 작품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면서 "그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눈물 연기보다 힘들었던 멜로

 김소현, 2017년 7월 18일 <군주>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김소현은 올해 열아홉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8살에 데뷔해 벌써 데뷔 10년이 넘었다. ⓒ 싸이더스HQ


김소현은 즐겁고 행복했었다지만, 그가 연기한 가은은 시종일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사랑하는 이를 두고 복수를 위해 궁으로 들어가야 했던 아픔에, 알고 보니 사랑하던 이가 원수였다는 배신감에... <군주>는 온통 가은이를 울게 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예쁘게 눈물만 똑똑 흘리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소리 지르고 분노하며 우느라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어요. 반 사전제작이라 순서가 몰아 찍을 때가 많았는데, 하루는 우는 장면만 종일 찍은 날도 있었어요. 울다 울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울었더니 나중엔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다행히 후반부여서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가장 지치게 한 건 우는 연기였지만, 제일 힘들었던 연기는 따로 있다. 김소현은 이번 작품에서 처음 제대로 된 '멜로'를 연기했다. 전작 <싸우자 귀신아> <후아유-학교 2015>에서 사랑 연기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멜로'는 아니었다. <군주> 메이킹 필름에는 유승호와의 멜로 연기를 앞두고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김소현의 모습이 여러 번 담겼다. 그는 "아무래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많이 부족함이 있더라. 내가 보기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촬영장에서 스태프분들이 워낙 놀리셨다. 그래서 안 부끄러워하려고 억지로 노력하다 보니 더 부끄럽더라"라며 웃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의지가 된 건, 상대역인 유승호였다. 주인공으로서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받쳐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아역 출신에서 성인 연기자로 훌륭히 안착한 모범 케이스. 김소현은 "승호 오빠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갔고, 호흡이 잘 맞아 편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역과 성인의 경계에 서 있는 김소현이니만큼, 바로 직전 그 성장통을 겪어낸 선배 유승호에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어쩐지 대놓고 묻기엔 어색해 현장에서 직접 묻지 못했다고. 다음날 유승호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있으니 대신 물어주겠다 하니,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이내 한 질문을 골랐다.

"아역에서 시작해 이제는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은 거잖아요. 고민도 많고, 흔들린 적도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겨내셨는지가 제일 궁금해요."

지금 이 순간, 김소현의 고민이었다.

열아홉 김소현

 김소현, 2017년 7월 18일 <군주>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너무 어린 나이에 결정지어진 미래. 다른 꿈을 가져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 싸이더스HQ


보통의 10대라면, 지금은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 준비에 정신이 없을 시기다. 또래 중 태반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이제야 고민을 시작할 만한 시기. 하지만 김소현은 이미 진로가 결정됐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에는 분명 축복이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결정지어진 미래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중학교 때까진 그랬던 것 같아요. <후아유> 전까진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나는 지금까지 이것만 해왔는데, 배우가 되지 못하면 어쩌나, 뭘 해야 하지 불안하기도 했죠. 제 생활의 전부는 드라마 찍는 게 다였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전 등 떠밀려 시작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시켜서 억지로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엄마는 제게 그만하고 싶은지 자주 물어보셨어요.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그땐 그냥 TV 나오고 연기하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고, 지금은 계속 배우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김소현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촬영 때문에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자신이 학급 분위기를 해칠까 우려해서다.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내린 선택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을 모른다는 건 분명 배우로서는 큰 약점이다. 배우의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들의 공감대,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어려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아요. 성인 역을 했다지만, 아직 어린 역할들이었잖아요. 10대의 고민이나 경험은 연예인이든 아니든 다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건 지금부터라고 생각해요. 성인이 되고, 제 의지대로 무언갈 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싶어요. 사람끼리 부딪치는 거라든지요. 일상적인 행복, 감정, 힘듦...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겠죠.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서 오는 감정의 변화들을 기억하려고 해요."

10대는 자아를 성장시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여러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살아낸다는 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진짜 자신의 모습이 뭔지 혼란을 안겨 주진 않을까?

"맞아요. 작품마다 달라져요. <후아유> 이후로 그 해에 다섯 작품을 연달아 했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성격이 바뀌는데, 뭐가 진짜 저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밝은 애인가 싶다가도, 마냥 밝은 아이는 아닌 것 같고. 차분한가 싶으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여러 작품을 경험하며 제가 갖고 있지 않은 모습들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처음 경험한 '논란'과 '비난'

 김소현, 2017년 7월 18일 <군주>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군주> 가은이로 '민폐 여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너의 이름은> 더빙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데뷔 후 처음 겪은 구설수. 아직 어린 김소현이 겪어내기엔 버거운 논란들이었다. ⓒ 싸이더스HQ


2017년 김소현이 처음으로 경험한 것 중에는 '논란'도 있다. <군주>의 가은이가 '민폐 캐릭터'라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더빙 논란의 한 가운데 서기도 했다. 둘 모두 김소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주위 환경에 의한 것들이 많았다. '민폐 캐릭터' 논란이야 배우로서 이해되는 부분이었지만, <너의 이름은.> 더빙 논란은 좀 달랐다.

"가은이에 대한 아쉬움은 저도 있었어요. 하지만 극 안에 놓인 가은이의 상황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가은이가 위기에 처해야 세자가 구해주고, 오해가 생겨야 이야기가 전개되니까요.

하지만 <너의 이름은.> 논란은... 사실 연예계 활동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게 처음이었거든요. <군주> 촬영 끝날 즈음이었는데, 촬영하면서도 마음이 자꾸 무너지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평정심을 잃게 되고, 며칠은 정말 힘들었어요. 이런 일 때문에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제 모습도 너무 싫었어요. 많이 버거웠어요."

댓글을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읽게 되고, 그 안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고. 촬영이 끝나고도 한참 힘들었고, 한참 울었다고. 복잡한 마음은 요 며칠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 많이 위축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잖아요.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유명인의 삶이라는 게, 실제 잘못을 저질러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그동안은 마냥 연기하는 일이 재밌고, '국민 여동생'으로 예쁨 받던 아역 스타였던 탓에 미처 몰랐던 일들이다. 이번 논란도 김소현이 아홉수에 겪은 성장통 중 하나였던 셈이다.

"저에 대해 잘 알고 싶어요. 제 생각, 주관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여러 가시 돋친 말들 중, 제게 정말 도움이 될 말들과 무시해도 좋을 말들이 뭔지 판단할 수 있는 저만의 기준을 갖고 싶어요. 내성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제 주관을 뚜렷하게 갖고, 의사 표현도 더 당당하게 하고 싶어요."

'아역 스타'는 분명 독이 든 성배다. 연예인 되기도 어렵고, 스타가 되기는 더 어려운 때에, 어릴 때부터 '스타'가 되었다는 건 분명 축복이지만, 그때부터 덧씌워진 '아역' 이미지는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8살부터 연기를 해오긴 했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해를 품은 달>부터 기억하고 계셔서, 제게 '애기' 이미지가 확실하게 박혀있진 않아요. (웃음) 아무래도 연기하면 아직은 어린 티가 나죠. 그런데 굳이 의식하진 않으려고 해요. 어린 티가 많이 나는데, 억지로 성인인 척하는 것도 썩 보이지 않고, 대중이 그걸 제게 원하시지도 않는 것 같고요. 애매하긴 하지만, 중간을 잘 찾아보려고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스물 앞둔 두려움, 그리고 기대

 김소현, 2017년 7월 18일 <군주>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아역'으로 스타가 된다는 건 독이 든 성배다. 어릴 때부터 '스타'가 되었다는 건 분명 축복이지만, 그때부터 덧씌워진 '아역' 이미지는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 싸이더스HQ


김소현은 지금 이 순간이, 연기를 해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마냥 고민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느 10대들처럼,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시고 여행 다니고 운전면허를 딸 생각에 들뜨기도 한다. 이리저리 부딪치겠지만, 그런 두려움과 걱정 안에는 분명 설렘이 있다.

"<군주> 안의 인물들은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든 걸 가지고 있거나 완벽하지 않아요. 그 나잇대의 부족함도 있고, 철없는 행동을 때문에 실수도 하죠. 그런 걸 겪어나가면서 성장하고, 어른이 돼요. 저도 그냥 그렇게 성장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사람으로서요."

김소현에게, 29살의 김소현은 어떤 배우, 어떤 어른이 되어있길 바라는지 물었다.

"여유로움을 갖고 싶어요. 연기에서든, 마음에서든요. 그리고 그때도 즐거워서 연기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요. (웃음)"

 김소현, 2017년 7월 18일 <군주>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29살의 김소현은 어떤 배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 싸이더스HQ



김소현 군주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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