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전구매하기]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 수익금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사전 구매하실 분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편집자말]
두 어른이 비정규노동자의 쉽터 '꿀잠'을 위해 붓과 칼을 들었다.
 두 어른이 비정규노동자의 쉽터 '꿀잠'을 위해 붓과 칼을 들었다.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딸!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어렵더라도 잊지는 말아줄래. 아빠에겐 참, 고마운 두 어른이 있어. 온몸으로 아빠의 뒷배가 되어준 분들이야. 너는 잘 모를 거야. 두 어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실, 아빠도 다 알지는 못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만 보고 들은 게 아니니 여기서 말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네가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분들의 헌신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꼭 한 번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어. 아빠가 두 어른 곁에서 목격한 일들을. 이 시대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이기도 해.

흰수염 거리 신부, 사자후 백발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좌), 문정현 신부(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좌), 문정현 신부(우)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아빠에겐 문정현 신부님이 신기한 존재였어. 처음 뵌 것도 성당이 아니라 투쟁 현장이었지. 2006년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군 기지가 평택 대추리로 이전을 앞둔 때였어.

당시 평생을 대추리에 살던 마을 주민들과 수많은 활동가들이 모여 싸움을 시작했지. 매일 집회나 문화제가 열리다가 어느 순간, 아예 마을로 이주해 투쟁을 했어. 그 싸움판 무리에 천주교신부님이 뒤섞여 있었단다. 문정현 신부님이었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어. 아빠가 알고 있던 성직자의 모습과도 딴판이었지. 어땠냐고?

흰 수염을 길게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셨지.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시면서 노래도 불렀어. 사실, 아빤 그때 '이상한 동네 어른이네'라고 생각했단다. 행색이 데모꾼이었거든.

그래서 마주칠 때마다 조심스럽게 꾸벅 인사만 했어. 그때만 해도 아빤 평범한 쌍용차 노동자였고, 싸움이 일어나면 맨 앞이 아니라, 2~3줄 뒤쯤에 있었으니까. 맨 앞줄에 있던 신부님과는 거리가 있었지.

백기완 선생님은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뵈었어. 가까이선 그때 처음 뵈었지. 평택공장에서 정리해고반대 집회가 크게 열렸는데, 노구를 이끌고 오셨어. 사자갈기 같은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에게 힘찬 발언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해. 집회발언을 부탁드렸는데, 30분쯤 강연을 해주셨지.

아빤 발을 동동 굴렀어. 예정된 순서에 따라 행사가 진행해야 하는데, 시간이 길어지니까. 백 선생님에게 말씀은 못하고 애간장만 태웠지. 근데 아빠만 그런 거야. 집회가 끝나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백 선생님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단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데 속이 시원하다고 좋아했지.

사자후 같은 말씀 속에는 자본의 속성, 권력의 속성에 대한 통찰이 가득했어. 아빠 같은 노동자들에게 당부도 전하셨지. 그때, 백 선생님이 하신 말 중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단다.    

"이것 봐! 노동자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되지 말어! 거짓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잘 싸우란 말이야! 정리해고 그까짓 것 이겨버리란 말이야!"

그 후로 아빤, 백 선생님이 평택공장에 '떴다'하면 옥상 꼭대기에 올라 힘차게 붉은색 깃발을 휘둘렀어. 선생님이 헬기에서 쏟아지는 최루액을 맞게 내버려 둔 게 미안했고, 눈이 뒤집힌 구사대 놈들에게 욕을 보시게 한 게 죄송했거든. 내 딴에는 고마움의 표시라고 한 게 깃발을 휘두르는 거였지.

문정현 신부님은 뭐했냐고.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싸우고 계셨지. 그래도 평택공장에 자주 오셨어. 신기한 게 멀리서 봐도 문 신부님의 나부끼는 미사복은 왜 그렇게 선명하던지. 그렇게 우리는 누군지 보이지도 않는 서로에게 기대기 위해 함께 손을 흔들고, 깃발을 휘두르고, 노래를 불렀어.  

두 어른, 담장을 넘다

한진중공업 부산공장에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1차 희망버스가 도착했다. 두 어른은 맨 앞줄에 서서 부당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했다.
 한진중공업 부산공장에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1차 희망버스가 도착했다. 두 어른은 맨 앞줄에 서서 부당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했다.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백기완, 문정현이 담장을 넘었대!"

2011년, 희망버스라고 너도 들어는 봤을 거야. 한진중공업의 부당한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발랄한 연대였지. 아빠는 1차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부산공장에 갔단다.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도 오셨지.

갑자기 누군가 외쳤어.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곧바로 담장 밑으로 사다리가 내려왔지. 하지만 아빤 선뜻 담장을 넘을 수 없었어. 겁이 났던 것 같아. 그때 아빠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으로 집행유예기간이라서 잘못하면 다시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거든. 몸조심해야 할 때였지.

"이러다 또, 구속되는 게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부산으로 내려오는 희망버스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쌍용차 투쟁 때 어려워지니까 아무도 공장으로 들어와서 싸우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이날 투쟁에선 반드시 공장으로 들어가 함께 싸우겠다 말했는데도 몸이 굳어버렸어.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가는 사람들 옆에서 애먼 줄담배만 피우며 망설였어. 그때, 그 소리를 들은 거야.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담장을 넘었다'고. 뭐에 홀린 것처럼 사다리를 타고 담장에 올랐어. 용기가 생겼거든. 아빠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선들 중에 '두려움'이라는 선 하나가 툭하고 끊긴 느낌이었어.

이 일이 있고부터 삶의 궤적이 조금 바뀌었어. 아빠는 무섭고 망설여지는 순간에도 뒤로 숨지 않고 맨 앞자리에 섰어. 결국, 아빠의 지난 몇 년간의 불법행위들(?) 뒤에는 두 어른이 있었던 거지. 덕분에 경찰서 들락거리는 전문시위꾼 취급을 받게 됐지만 주눅 들진 않았어. 후회도 없고. 그분들은 모르겠지만 아빠는 이렇게 든든한 뒷배를 얻었으니까.

"제발 좀 살려주세요!"

너도 알지. 김정우 아저씨. 2012년 서울 대한문에 분향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하는데, 이 말을 하고 정우 아저씨가 서럽게 우는 거야.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이 멈추질 않았거든. 그때 지부장을 맡고 있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어. 사회원로 분들도 곁을 지켜 주시다가 눈물을 흘렸지. 취재 왔던 기자들까지 울었으니 어땠겠어. 그야말로 눈물바다였지. 근데, 적막을 깨고 이런 호통소리가 울려 퍼졌어.

"김정우! 울지 말어. 어깨 펴!"

백기완 선생님이셨어. 순간, 약해진 모습에 다들 뜨끔했지. 하지만 이 말을 하고 백 선생님도 우셨단다. 호통 칠 때는 언제고 눈물을 훔치셨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인 눈물의 힘이 쌍용차 투쟁을 이끌고 갔다고 아빠는 생각해. 공장에서 쫓겨나고, 누구 하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기막히고 서러운 날들이었거든. 포기하고 싶어도, 물러서고 싶어도 갈 곳이 없었단다. 서로의 울음이 벼랑 끝에서 잡은 동아줄 같았어.

그 사이 문 신부님은 제주 강정에 계셨어. 주민동의도 없이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정부에 맞서 싸움을 이어갔지. 각자 싸워선 희망이 안 보인다고 쌍용차(S) 해고자와 강정(K) 마을주민, 그리고 용산(Y) 유가족이 주축이 돼서 큰 싸움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어.

신부님이 종자돈도 내놓으셨단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 수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기획단을 꾸린 게 'SKY연대'였단다. 뭘 했냐고? 장장 한 달간 걸었어. 제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지. 고행 길이었단다. 하지만 몸은 힘든데, 마음은 편했어.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기나긴 투쟁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 자신을 껴안아주는 기회였으니까. 아빠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 다리가 아프셨던 신부님이 휠체어를 타고 우리와 함께 걷던 그 길을.

딸! 며칠 전 너와 함께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잖아? 너는 군인들이 광주시민을 때리고 죽이는 장면마다 눈을 가렸지. 아빠 손을 꼭 잡으면서 너무 무섭고 슬프다며,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며 물었지.

아빠도 너의 손을 꼭 잡았어.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광주역에 사람들이 모인 장면에서.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여 주먹밥을 나누고, 악기를 두드리고, 춤을 추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너도 알잖아. 그들이 며칠 뒤 어떤 폭력과 죽음과 이별을 맞이하는지. 영화가 끝나고 광주정신을 되짚어봤단다. 기념식 때 내놓는 정치적 수사나, 때 되면 TV에서 특집 편성하는 흘러간 옛 이야기는 아닐 거야. 폭력과 죽음에 맞선 사람들에게 서로의 손과 마음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광주정신이 아닐까? 그들 곁에서 주먹밥을 나누고,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광주정신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국가사업이라고, 경제가 어렵다고, 더 많은 이윤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와 주민들이 곳곳에서 쫓겨난단다. 공권력을 동원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오늘의 대한민국. 권력 유지를 위해 총칼로 광주사람들 죽인 어제의 대한민국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아빠는 잘 모르겠어.

'빨갱이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해 국가에 맞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언론보도가 80년 광주에서만 일어났던 일일까? 강정에서, 용산에서, 쌍용차에서, 밀양에서, 성주에서, 그리고 세월호에서 비슷한 언론보도가 이어졌지. 알바노동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이, 급식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에 나설 때도 똑같은 프레임을 덧씌웠어.

딸아, 기억하렴! 두 어른의 삶을

두 분은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와도, 경찰에 가로 막혀도, 쓰레기차 위로 쫓겨 올라가서도 외치고 또 외치길 멈추지 않았다.
 두 분은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와도, 경찰에 가로 막혀도, 쓰레기차 위로 쫓겨 올라가서도 외치고 또 외치길 멈추지 않았다.
ⓒ 정택용(좌), 노순택(우)

관련사진보기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은 평생 투쟁 한복판에 서있었단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는 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지. 다들 변하잖아.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시류에 편승해 스스로를 합리화해. 결국 욕망 때문에 변절하는데, 세상 탓을 하거나 사람 핑계를 대지. 평생 싸움을 이어가는 것도 대단하지만 내 욕망을 세상의 변화로 방향을 잡은 두 어른이 아빠 같은 사람에겐 더 신기하단다.

두 어른이라고 유혹이 없었을까? 두려움이 없었을까?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고 해. 하지만 망설이고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한 발짝 나아가셨지. 그렇게 투쟁의 길을 걸어오신 두 어른을 보면, 아빠는 가끔 슬퍼.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아스팔트 위에서 천형(天形) 같은 삶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가슴이 먹먹해.

딸아! 기억해줄래? 이 땅에 두 어른이 있단다. 백기완 문정현은 또 다른 광주에 있던 사람들과 밥을 나누고 노래를 부로고 춤을 추던 사람이란다. 누가 불러주거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가끔 들리는 게 아니라 평등과 평화를 위해 길 위를 지켰던 사람이고, 그 싸움의 운전대를 자임했던 사람들이야. 자신의 삶이 찢기고 멍들어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지. 그런 평생의 발자국들이 사람들에게 이어졌고 그 사람들이 또 다른 투쟁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어.

너도 언젠가 두 어른에게서 위로와 힘을 얻길 바랄께.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순간이오면, 두 어른을 떠올려보렴. 두 분이 만들어 온 길 위의 밥과 춤과 노래를 생각해보렴. 두 분의 이야기를 네가 기억한다면 너에게도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실 꺼야.

<두 어른> 표지 이미지
 <두 어른> 표지 이미지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대담집 <두 어른> 사전구매하기
1. 스토리펀딩 기사 읽고 신청하기
2.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에서 신청하기
3. <두 어른>과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휴대폰 010-3270-3828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