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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구매하기]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 수익금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사전 구매하실 분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이번 글은 최근 불교적폐청산을 위해 단식을 했던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이 보내 왔습니다. [편집자말]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명진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명진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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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서산대사

단식을 끝내고 근 스무 날 만에 곡기를 다시 입에 넣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멀건 죽 한 사발만으로도 감개무량이랄까. 산다는 것은 이렇게 생생하고 절절한 감격이다. 덜컥 두 어른 대담집 출간을 앞두고, 두 어른에 대해 덜컥 글을 쓰겠노라고 약속해 놓고 쓰지 못하고 있다가 단식을 끝낸 지금 겨우 이 글을 쓴다.

효림스님과 함께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스무날 가까이 한 단식이었다.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 단식농성 천막을 쳤다. 2013년 8월 어린 승려이던 적광스님이 자승 총무원장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백주대낮에 호법부 승려들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한 곳이다. 자비와 생명평화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절집에서 일어난 무자비한 폭력사태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수사, 책임자 처벌을 제1 과제로 요구했다. 지금도 우정공원에는 조계종의 적폐를 청산하자며 대안스님과 용상스님이, 불자들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은 하루를 하건 열흘을 하건 힘들긴 매한가지다. 단식은 그것 외에는 길이 없는 이들이, 힘없는 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보내는 절규다. 참 역설적이게도 살려달라는 SOS신호이기도 하다. 세월호 유가족, 용산참사 가족들, 무수한 이 땅의 노동자들이 오늘도 이 바보 같은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아직 세상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깃발

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박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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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있다. 거리에서, 감옥에서 끌려가고 두들겨 맞으며……. 그러나 단 한 번도 도망가거나 물러서지 않고 그 길을 걸어온 분들. 두 분의 어른,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이다.

백기완 선생님은 깃발이다. '산 자여 따르라'고 호령하시며 이 거친 역사의 길을 훠이훠이 뚫고 나가는 깃발이다. 이 깃발이 있어 우리는 끌려가고 매 맞고 흩어졌다가도, 길을 잃었고 헤매다가도 다시 모일 수 있었고 길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었다.

2011년 8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하던 노동자 김진숙씨를 구하기 위해 한진중공업 담벼락을 넘을 때, 모두가 주저하고 망설이던 그 때, 그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높다란 담장을 넘어 성큼 첫 발을 내딛은 분이 백기완 선생님이셨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담장을 함께 넘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어찌 깃발이 아니겠는가.

'아리 아리 떵!'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는 당신의 지론처럼 백기완 선생님은 그렇게 길 없는 길을 만들어 오신 것이다. 
 
백기완 선생님은 우리가 두려움에 떨거나, 정신을 잃고 나태해지거나 나약해져 불의에 휘둘릴 때 매운 죽비처럼 우리를 두들겨 깨우시는 분이다. 삶의 현장에서,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번쩍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시는 눈 밝은 선지식이다. 온몸으로 역사를 밀고나가는 깃발이고 우리의 길을 밝게 열어주는 선지식인 셈이다.

우리시대의 예수
문정현에겐 참사의 현장이 교회였고 고통받는 이들이 예수였다. 한뎃잠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정현에겐 참사의 현장이 교회였고 고통받는 이들이 예수였다. 한뎃잠을 마다하지 않았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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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땅에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문정현 신부님이다.

2012년 문정현 신부님께 광주인권상을 드리며 김준태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평생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약자 편에서, 생명과 평화가 위협받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들과 함께 소리치고, 아파하고, 밥을 나누고, 비를 맞으며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압축"이라고 말했는데 한 치도 오차가 없다.

2009년 용산참사 때 유가족과 함께 농성을 하고 계신 문정현 신부님을 찾아뵌 적 있다. 그때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뭐 하는 게 있겠소. 이들이 곁에 있어 달라면 같이 있어 줄 뿐이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셨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어떤 것보다 큰 위로가 같이 있어 주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너무나 커다란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지금 제주 강정에서도 문정현 신부님께서는 여여한 모습이다. 문정현 신부님의 삶에는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어떤 것이 종교일까? 고통에 함께함이 종교다. 고통에 함께하지 않음은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현실의 예수가 있다면, 이 땅의 예수가 있다면 문정현 신부님의 바로 저 모습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두 어른의 길
문정현 신부(좌),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우)
 문정현 신부(좌),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우)
ⓒ 박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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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어른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성스러움을 느낀다. 그 어떤 법당의 부처님보다도, 그 어떤 성전의 예수님을 볼 때보다 더 그렇다. 박제화된 성스러움이 아니라 진흙탕 같은 현실의 고통을, 칼날 같은 세상의 아픔을 내 것으로 껴안고 함께 뒹굴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동체대비의 자비심일 것이며,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예수의 사랑일 것이다.  

역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비단길도 아니고 박수 받는 길도 아니다. 말 그대로 고통으로 가득 찬 풍찬노숙의 길이고 가시밭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어른은 그 길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가고 계시다.

우리가 바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 우리 생이 끝나고 그 다음, 다음 세대가 와도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끊임없이 가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세상이 어느 순간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길을 향해, 옳음을 위해 끊임없이 가고 있을 때 그런 세상은 이뤄져 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이들이 세상이 혼탁하고, 인간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오기는 하겠냐고 불안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미 꿈의 좌표가 사라진 시대라고 하기도 하고, 길을 이끌어줄 스승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좌표가 되시고, 온몸으로 시대의 스승이 된 두 어른이 있는 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뤄야 할 뜻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만일 이 두 어른이 우리 사회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어른을 대체할 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두 어른은 고유명사 백기완, 고유명사 문정현이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보통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기완이 없는, 문정현을 뺀 우리 현대사가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두 어른의 연세는 적지 않다. 이미 두 어른은 백발이 성성하시다. 하지만 이 분들을 누구도 노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당신들도 뒷방으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으신 것 같다. 다행이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 우리의 영원한 현역이시고, 영원한 당대이신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늘 건강하시기를 빌고 또 빈다.  

꿀잠을 위하여
아스팔트 위에서 낮을 견디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던 노동자들. 이들을 위한 쉼터가 생겼다.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낮을 견디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던 노동자들. 이들을 위한 쉼터가 생겼다.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이다.
ⓒ 신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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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이 아름다운 것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시고, 가장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소외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함께 잡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대담집 <두어른>도 비정규직 쉼터 꿀잠을 위해 전액 기부된다니 더욱 그러하다. 나도 작은 힘이나마 정성껏 보태고자 한다.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아니 고통을 받는 모든 이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날까지!

*대담집 <두 어른>의 사전판매(1쇄) 전액은 꿀잠 기금에 보태 빚을 갚는 데 사용됩니다.
<두 어른> 표지 이미지
 <두 어른> 표지 이미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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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어른>과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휴대폰 010-3270-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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