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전구매하기]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 수익금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사전 구매하실 분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편집자말]
파릇파릇한 19살의 백기완(왼쪽 1951년), 30대 초반의 백기완(가운데 1960년대), 40대 후반의 백기완(오른쪽 1979년). 맨 오른쪽 사진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기 9개월 전의 모습이다. 몸무게 81kg의 거구였던 백기완은 고문으로 반쪽이 되고 만다.
 파릇파릇한 19살의 백기완(왼쪽 1951년), 30대 초반의 백기완(가운데 1960년대), 40대 후반의 백기완(오른쪽 1979년). 맨 오른쪽 사진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기 9개월 전의 모습이다. 몸무게 81kg의 거구였던 백기완은 고문으로 반쪽이 되고 만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새내기 신학생에서부터 40대 청년 사제가 되어가는 문정현 신부의 모습.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청년 문정현은 “김대건 신부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고단한 이들을 위한 실천과 순교의 마음을 품는다. 1974년 유신정권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하고 관계자들을 선고 하루만에 사형시킨 뒤 고문증거를 덮기 위해 화장하려 하자, 청년사제 문정현은 시신을 지키고자 맨몸을 던진다. 차량에서 떨어져 다친 다리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새내기 신학생에서부터 40대 청년 사제가 되어가는 문정현 신부의 모습.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청년 문정현은 “김대건 신부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고단한 이들을 위한 실천과 순교의 마음을 품는다. 1974년 유신정권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하고 관계자들을 선고 하루만에 사형시킨 뒤 고문증거를 덮기 위해 화장하려 하자, 청년사제 문정현은 시신을 지키고자 맨몸을 던진다. 차량에서 떨어져 다친 다리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오늘도 힘없는 이들의 고단한 투쟁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는 현역 투사라지만, 백기완 문정현 두 분이 기력을 다해가는 호호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두 분도 한 때는 팔팔한 젊은이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기 힘들었던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의 젊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어렵게 구해 공개합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투옥과 평화의 방랑을 잇다보니 두 분은 젊은 시절 사진을 넉넉하게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대선의 과정에서 유력 정치인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걸 기억하시는지요. 그들의 젊은 모습은 오늘의 정치행보와 비교 혹은 대비되면서 여러 대화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줄까요.

두 어른의 과거

1957년 여름, 25살의 백기완은 ‘학생자진농촌계몽대’ 활동을 벌인다. 그때 만든 나무심기 노래는 훗날 광주민중항쟁을 노래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1957년 여름, 25살의 백기완은 ‘학생자진농촌계몽대’ 활동을 벌인다. 그때 만든 나무심기 노래는 훗날 광주민중항쟁을 노래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1963년 신학생 시절(오른쪽에 선 앳된 모습의 동생 문규현은 형의 길을 따라 훗날 사제의 길을 걷는다). 사제수품 후 교구에서 활동하던 1967년 무렵의 문정현.
 1963년 신학생 시절(오른쪽에 선 앳된 모습의 동생 문규현은 형의 길을 따라 훗날 사제의 길을 걷는다). 사제수품 후 교구에서 활동하던 1967년 무렵의 문정현.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1957년 여름 강원도 양양. 앞줄 왼쪽 세 번째에 앉은 청년이 농촌계몽대장을 맡은 백기완.
 1957년 여름 강원도 양양. 앞줄 왼쪽 세 번째에 앉은 청년이 농촌계몽대장을 맡은 백기완.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1970년대 농촌지도자풍의 문정현 신부. 한국사회는 사실상 농경사회였고 농촌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종교계에도 주어져 있었다. 가톨릭농민운동은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70년대 농촌지도자풍의 문정현 신부. 한국사회는 사실상 농경사회였고 농촌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종교계에도 주어져 있었다. 가톨릭농민운동은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저 젊은 백기완이, 저 팔팔한 문정현이, 수십 년 흐른 오늘날의 당신들 모습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몹시도 원했던 민중세상 평화세상이 당신들이 기력을 다한 노년에조차 가닿을 수 없는 먼 희망일 뿐이라는 걸, 그 때 알았더라면 두 분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까.

전두환 자서전 VS 대담집 <두 어른>

1987년 감옥 출소 후 노동자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중년의 백기완이 대학로를 가득 메운 인파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1987년 감옥 출소 후 노동자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중년의 백기완이 대학로를 가득 메운 인파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문정현 신부는 1976년 명동성당에서 감행된 ‘3.1 구국선언’에 참여한 대가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수인번호 1003번이 그의 이름이었다.
 문정현 신부는 1976년 명동성당에서 감행된 ‘3.1 구국선언’에 참여한 대가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수인번호 1003번이 그의 이름이었다.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두 분을 탄압했던 박정희 유신정권을 여전히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분을 옥에 가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독재자 전두환은 얼마 전 뻔뻔하게도 자서전을 출간했지요. 광주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그 책이 삽시간에 수 만권 팔렸다고 합니다. 법원이 판매금지를 명령하자 전두환은 문제가 된 내용만을 삭제한 채 다시 책을 펴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살인마가 펴낸 책이 날개돋인 듯 팔리는 세상, 한 평생을 그늘진 곳으로 향했던 두 분의 삶이 담긴 책은 행여 외면 받을까 걱정해야 하다니 쓴웃음이 나온다"고요.

독재자의 삶, 두 어른의 삶

1978년 문정현 신부 석방 환영 잔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다친 다리 때문에 지팡이를 쥐고 있다.
 1978년 문정현 신부 석방 환영 잔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다친 다리 때문에 지팡이를 쥐고 있다.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1988년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군사독재 종식을 외치며 산화한 박래전 열사의 장례식. 박래전은 1987년 백기완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에서 뛰었던 학생 운동가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왼쪽)와 계훈제 선생(가운데)과 함께 박래전 열사의 영정을 따라 세종로를 걷는 백기완.
 1988년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군사독재 종식을 외치며 산화한 박래전 열사의 장례식. 박래전은 1987년 백기완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에서 뛰었던 학생 운동가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왼쪽)와 계훈제 선생(가운데)과 함께 박래전 열사의 영정을 따라 세종로를 걷는 백기완.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1987년 2월 투옥 중이던 백기완은 급속한 건강 악화로 한양대 병원으로 옮겨진다. 운동가이자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면회 온 모습.
 1987년 2월 투옥 중이던 백기완은 급속한 건강 악화로 한양대 병원으로 옮겨진다. 운동가이자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면회 온 모습.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1980년 10월의 문정현과 2015년 10월의 문정현.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고단한 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문정현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1980년 10월의 문정현과 2015년 10월의 문정현.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고단한 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문정현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 평화바람

관련사진보기


두 분의 삶과 독재자의 삶을 비교할 수 없듯, <두 어른> 대담집과 독재자들이 써내려간 쓰레기 같은 거짓과 날조의 낱말들을 비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나 두 분처럼 뜨겁게 권력과 폭력에 맞서 젊음과 늙음을 불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짜 어른, 두 어른

어느새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 허나 두 분은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함께 싸우길 주저하지 않는 현역의 투사다. 두 분의 대담집 <두 어른>에는 늙은 투사의 사랑과 고뇌가 담겨 있다.
 어느새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 허나 두 분은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함께 싸우길 주저하지 않는 현역의 투사다. 두 분의 대담집 <두 어른>에는 늙은 투사의 사랑과 고뇌가 담겨 있다.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두 어른
 두 어른
ⓒ 박은태

관련사진보기


허나 누구라도 두 분의 젊음과 늙음을 바라보며 각자의 내면에 새겨진 거울을 마주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대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아야 할까요.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우리 각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두 분의 혼잣말과 진솔한 대화가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당신에 대한 생각과 당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게 어떠신지요.

*대담집 <두 어른>의 사전판매(1쇄) 전액은 꿀잠 기금에 보태 빚을 갚는 데 사용됩니다.

두 어른
 두 어른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대담집 <두 어른> 사전구매하기
1. 다음스토리펀딩 기사 읽고 신청하기
2.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 에서 신청하기
3. <두 어른>과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휴대폰 010-3270-3828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