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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돌고래 태지에게

안녕. 태지. 나는 사실 널 잘 몰라. 서울대공원에 갔을 때 사육사 선생님들이 당시 남아있던 3마리의 돌고래를 만나게 해주셨는데 아마도 그 중 하나였겠지. 너와 함께 있던 금등이와 대포는 제주도 고향으로 돌아갔지.

내가 너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일본 다이지에서 잡혀왔다는 것. 쇼를 하다 서울대공원이 해양관 수리를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제주에 있는 한 공연장(퍼시픽랜드)에 가게 되었다는 것. 그 정도.

당연히 너는 나를 잘 모르겠지. 우리는 유전자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서식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까. 내가 쓰는 이 편지도 넌 읽을 수 없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너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적어도 글이란 다른 이들에게 나를 전달하는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일이고. 또 내가 해방되고 싶어 하는 행위겠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자아를 발견하고 충족하며 사는 일인데. 돌고래 역시 그러하다고 배웠어. 그걸 너무 최근에서야 알았어.
금등 대표가 야생방사훈련을 위해 제주로 떠난 이후 혼자 남은 큰돌고래 태지
 금등 대표가 야생방사훈련을 위해 제주로 떠난 이후 혼자 남은 큰돌고래 태지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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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몰랐어. 나도 다른 사람들도. 돌고래는 그냥 자연 어디에선가 살다 평화롭게 우리 곁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느 날 너는 가족들과 헤엄치다 요란한 진동과 소리에 놀라 당황할 때 수십 대의 보트가 너를 해안가로 몰았겠지. 모두 어딘가에 갇히고 그리고 바다를 뒤덮은 피비린내. 네 형제와 부모는 네가 보는 앞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고 넌 어리니까 살아남았겠지.

우리 인간들은 어린 짐승을 상품가치가 있다고 말해. 넌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딘가로 잡혀오고. 먹고 싶지 않은 냉동고기를 먹어야 했고. 여린 네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았을테고. 그러다 어느 날 한국으로 팔려왔겠지.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지느러미도 흔들고 헤엄도 치고 회전도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지. 정확하게 말해 살아내는 거.

돌고래의 존엄성을 인정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너를 괴롭게 한 것은 네가 동료들과 헤어져 혼자 살아남게 되었을 때야. 우리는 모두 동물을 때리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말해. 네 몸 값이 얼마인데 널 때리겠어. 네가 인간과 같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은 네가 혼자 남았을 때 했던 니 행동에서 바로 알 수 있었지.

너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구석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시멘트 바닥에 올라가기도 하고. 우리는 이 정도는 알아.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 넌 지금도 그 쇼업체에 혼자 갇혀있지. 너와 동료들은 가림막 사이로 서로 볼 수는 있겠지만 네 동료들이 쇼를 하러 나가면....

밥 잘 주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돌고래는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존엄한 존재. 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소통하고 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나임이 중요한 것이 인간인 것처럼. 돌고래도 그렇다는 것. 우리와 별 다르지 않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벽만 보며 지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밥만 주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제주로 떠나는 날

네가 제주에 있는 퍼시픽랜드로 이송되던 날. 난 경기도에 있는 한 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었어. 시간이 맞았다면 네가 가는 걸 볼 수 있었을텐데. 전철을 타고 마침 서울대공원 역을 지나는데. 이미 네가 떠났을 시간인데. 그런데 그런데... 난 내렸어. 그리고 달렸지. 숨이 턱 막혀왔는데 그날 따라 해양관이 왜 그렇게 멀던지. 멀리서 멀리서 네가 없는 해양관이 보였지 힘이 풀렸어. 아 떠났구나. 숨을 고르고 나니 낡은 해양관 천장이 보였지.

제주 퍼시픽랜드로 떠나던 날
 제주 퍼시픽랜드로 떠나던 날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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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그렇게 급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금등 대포가 야생방사 훈련을 위해 제주로 떠난 이후 너의 정형행동(고등동물에게 나타나는 이상행동.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이 너무 극심했기 때문이야.

넌 다른 남방큰돌고래와 달라서 원래 서식지 일본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잖아. 넌 갈 곳이 없어서 서울대공원에 남았었지. 그거 알아? 우리가 하는 행동 중 다수는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조금은 비겁한 변명이지만. 이해해 달라는 말도 부끄럽지만. 해양관이 낡았고 수리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너를 받아주지 않았지. 국내 어느 수족관도 다 거절했었어.

안타까운 이 마음이 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일 거야. 이 세상 어느 누가 감히 타자의 욕망을 나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 나 역시 외롭고 힘겨우니까 갇힌 너를 생각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아마 공감이겠지.

대한민국에서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더듬거려야 하는 답답함이고. 길 하나 없는 어두움 수풀 속에서 잔가지들에 몸이 찔리면서도 전진해야 하는 공포이고. 아무도 알아듣지 않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고통이고. 평화보다 싸움과 갈등이 많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길. 진리에 대한 추구. 그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라고 배웠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진리는. "인간이 동물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착취할 권리는 없다."

너를 보낸 이후 너를 돌봐주신 사육사 선생님들, 수의사 선생님들도 많이 아파. 마음이. 네가 행복한 곳으로 가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어. 너를 많이 그리워해.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강하게 살아남자


다들 이유가 많대. 너에게 투자한 돈을 걱정하는 사람. 직업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사람. 회사의 이미지.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아. 누구나 생존하고 싶어하잖아. 그래도 난 적어도 지성인이라고 한다면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착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기에. 네가 다른 돌고래들과 함께 공중회전을 하고 수족관 안을 헤엄치고 쇼가 끝나면 관람객들 앞에 서서 사진을 찍혀야 하는 삶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돌고래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돌고래 자신이잖아. 나는 그렇게 계속 말을 하고 다녀. 어디에서건. 그 이야기들이 퍼지고 퍼지고 또 퍼지다 보면 때로는 이윤보다 생명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

퍼시픽랜드의 전형적인 돌고래쇼. 조련사와 수영을 하면 공감은 클 수 있으나 위험도도 높다.
 퍼시픽랜드의 전형적인 돌고래쇼. 조련사와 수영을 하면 공감은 클 수 있으나 위험도도 높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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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1월 20일이면 서울대공원과 쇼 업체의 위탁계약기간이 끝나. 그 이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아무도 답을 안 주니까. 너의 삶에 최선의 길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답을 아는 사람들은 말이 없어. 우리 인간은 이윤과 책임 비난 등 이런 거에 민감한 종이거든.

나는 그것도 다 이해해.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거든. 깊이 깊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들어올수록 굉장히 복잡한 관계들을 발견하게 돼.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분명히 대다수의 동물들은 불행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인생에서 앞으로 풀어야 할 실타래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할 것이고 설득의 근거도 필요하겠지. 이해시켜야 하니까.

아직은 그래도 너를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너를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거야. 그럴거야. 그것이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남은 희망. 인간도 약하고 대부분 불행해. 하지만 적어도 인간은 자연을 지휘할 힘이 있잖아. 동물들은 늘 당해왔고. 그러니까 우리가 강자지. 강자는 약자와 경쟁관계가 아냐. 약자는 무조건적인 보호의 대상이어야 해. 난 말할 수 있어. 무조건 우리 잘못이야. 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지만.

태지야. 넌 강해. 그러니까 강하게 살아남자. 멋진 돌고래 태지.

덧붙이는 글 | 태지는 현재 퍼시픽랜드에 있으며 서울대공원과의 위탁계약이 끝나는 11월 20일 이후 퍼시픽랜드에 남아 쇼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민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태그:#큰돌고래 , #태지, #퍼시픽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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