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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늘 즐겨가던 해변 길 코스로 강릉 사천에 있는 운양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 가고 있었다. 유난히 짙푸른 쪽빛 바다 색깔에 몇 번씩이나 시선을 빼앗겨 그대로 해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파도는 적당히 잔잔했지만 바람이 무척 거세게 불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바다 색깔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우니 나와서 감상해보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넣은 후 학교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마산 우산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안내로 진짜 신속하게 모두들 대피한 모습.(자료사진)
 마산 우산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안내로 진짜 신속하게 모두들 대피한 모습.(자료사진)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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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진이 났어요! 빨리 운동장으로 대피하세요!"

수업 중에 갑자기 다모임실 문을 열고 다급하게 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진.이.라.니... 갑자기 '지진'이란 단어를 듣자 나와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듣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전래놀이 중 '실뜨기'에 열중하던 아이들의 동작이 '얼음 땡' 놀이를 할 때처럼 멈췄다. 다시 한번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외쳤다.

"훈련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고요! 당장 모두 밖으로 나가세요!"

그 순간 나는 예주 학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수업을 한창 진행 중이던 조금 전에 갑자기 예주가 나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지진이 난 것 같아요."
"뭐라고? 무슨 지진이 나?"
"방금 제가 느꼈어요, 지진인 것 같아요."
"오늘 밖에 바람이 많이 불더라. 아마 바람에 창문이 심하게 흔들린 거겠지."

불과 몇 분도 되기 전에 예주와 내가 나눈 대화였다. 예주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니...

지진 실제상황, 모두가 부둥켜안고 버틴 10분

모두가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한자리에 모이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안 됐다. 실내화를 신은 아이는 그나마 침착한 편에 속했고, 양말 바람에 겉옷도 걸치지 못하고 맨몸으로 뛰어나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순간에 아이들과 선생님이 모두 불안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그 와중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 머릿수를 세면서 낙오된 아이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마침 2학년 아이들 방과 후 수업 중이어서 모두 이끌고 나오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나도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 수를 하나씩 헤아리고 있었다.

강풍이 몰아치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선생님도 아이들을 끌어안고, 아이들도 서로서로 꼭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10여 분을 버텼다. 교장 선생님이 '더이상 여진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니 학교 건물 쪽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모두 또 전속력으로 학교 쪽으로 뛰어갔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즉시 귀가를 시키고 남은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 인솔하에 교실에서 상황을 주시하라는 교장 선생님의 지시가 이어졌다. 나는 아직 6학년 수업이 남았지만 오늘은 수업 진행이 어렵겠다는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사천을 거쳐 순긋해변과 사근진해변, 경포해변으로 이어지는 귀갓길.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차를 세웠다. 오늘 일어난 일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폭풍전야처럼 평온한 바다와 하늘이 얄궂다.
▲ 순긋해변 폭풍전야처럼 평온한 바다와 하늘이 얄궂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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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아까 보았던 눈부신 쪽빛을 그대로 발산하고 있었다. 멀리 경상도에서 일어난 땅속 지진 때문에 난리를 치른 사실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바다가 얄미울 정도였다.

집에 와서도 한 차례 지진의 진동을 느꼈다. 베란다 창문이 몇 초 동안 '드르륵' 흔들렸다.
아, 아까 예주가 혼자 느꼈던 것처럼 나도 홀로 집에 있으면서 느낀 것이다. 무서웠다. 공포가 온몸에 전율처럼 다가오면서, 오늘의 실제상황이 2주 전 일과 겹치면서 더 크게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다.

재난대응 훈련받은 아이들, 어른보다 침착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재된 지진대피요령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재된 지진대피요령
ⓒ 국민재난안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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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2시경. 2018 평창동계올림픽 D-100일을 맞아 '2017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을 강릉시 전역에서 실시했다. 그때에도 나는 운양초 방과 후 수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운동장으로 나가 전교생과 함께 지진 발생에 대비한 대피훈련을 받았다. 아이들은 철없이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한 마디가 모두를 집중하게 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모두 운동장에 모여서 인원점검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아나요? 누가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알아야 하니까요. 진짜 지진이 나면 친구가 혼자 건물에 깔려 죽어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은 나에게도 찬물을 끼얹듯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어 교감 선생님도 '무엇보다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대피훈련은 각 학년별, 교실별로 가장 빠른 비상구와 대피경로를 알려주고 반드시 기억하도록 강조하면서 마무리가 됐다.

그 대피훈련을 받은 지 2주 만에 진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상황이 되자 어른인 선생님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재빠르고 침착하게 배운 매뉴얼대로 대피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도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리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처럼 진짜 지진이 일어났고, 미리 대피훈련을 받았던 운양초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생존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지진'은 무시무시한 자연재해의 하나지만 나는 오늘 '지진' 덕분에 많은 것을 겪고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서,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아서 방과 후 강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깊게 해보았다.

의례적으로 하는 민방위 훈련과 동일 선상에서 재난 안전훈련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2주 전과 오늘의 지진 실제상황을 함께 겹쳐 놓으니 아찔해진다. '안전불감증'이 뼛속 깊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반성이 들었다.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선생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지진'을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고 또렷이 기억해야겠다. 그렇지만 이후로는 더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소망한다.


태그:#지진, #재난안전교육, #실제상황, #강릉운양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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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을 솔향 가득한 강릉에서 펼치고 있는 자유기고가이자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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