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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아마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아래일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 검찰수사 반박하는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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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간 이 전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보복 운운하며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 검찰 수사가 자신의 턱밑까지 올라오자 다시금 정치보복 프레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당선에 감사기도 한 보수 교회들 

이 전 대통령의 성명을 보면서 문득 2008년 1월 교회에서 직접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난 당시 서울 청파동에 있는 한 보수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대표기도에 나선 장로는 "이명박 장로님을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비단 이 교회만 아니라 많은 교회에서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가 울려 퍼진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2007년 대선을 훨씬 앞둔 시점부터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노골적으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설교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을 지원했다. 이들의 설교는 이랬다.

"대선은 할 것 없다. 올해 12월 대선은 무조건 이명박이 하는 거니까, 장로님이니까. 만약에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 버릴 거야. 생명책에서 안 지움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 찍어!" - 전광훈 목사, 2007년 4월 청교도영성훈련원 집회

"예수님 잘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기도하자. 장로님(이 전 대통령 - 글쓴이)이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3일 금식 기도를 시작하라." - 김홍도 목사, 2007년 12월 주일예배 설교 

아예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는 이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한반도운하추진 국민운동본부 총괄본부장을 맡아 그의 대표적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 홍보에 앞장섰다.

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개신교계는 자신감을 얻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8년 1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국민일보> 기고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미화했다. 그의 기고문 중 일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8년 1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국민일보> 기고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미화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8년 1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국민일보> 기고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미화했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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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소통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중략)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막힌 담을 헐고 갇힌 물길은 터서 유무상통으로 흐르게 하는 소통인으로서의 책무가 있다.

최근 대운하로 국론이 분분하다. 경제 혹은 환경적인 담론은 전문가의 식견에 맡기기로 하고, 대운하를 소통의 측면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대운하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면 문명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길이 통하면 정신이 통하게 마련이다. 대운하가 한국 전체를 관통하면 산간벽지에까지 이어지는 물길의 소통으로 우리 민족의 암적 존재인 지역분열의 종식과 통합을 이루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국민일보> 2008년 1월 13일 오정현 칼럼 '대운하와 문명사적 소통' 

이어 이 전 대통령의 취임이 임박한 2008년 2월 최근 세습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우리 국가기관이 몇 년 동안 이분(MB)을 죽이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국가의 모든 정보와 힘을 다 기울여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돕듯이 우리 MB를 도와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설교했다.

조여오는 검찰 수사망, 교회는 잠잠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가능성은 지난해 10월 추석 연휴를 전후한 시점에서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었다. 당시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이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 3500명을 동원해 30개의 여론조작팀을 운영해 왔다는 내용을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에 보고했었고, 원 전 원장은 관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만에 하나 원 전 원장의 입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 이 전 대통령의 소환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이후 다스 실소유주 의혹, 한-UAE 원전 계약 당시 한국군 자동개입 이면 합의 의혹에 이어 가장 최근엔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 등 연이어 비리 정황이 불거지면서 이 전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여기에 17일 JTBC <뉴스룸>은 이 전 대통령에게 일격을 가했다. 다스의 사장과 전무였던 김성우, 권아무개씨가 지난 1999년과 2000년 두 해 동안 제주도에 6만㎡(1만 8000여 평)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이 땅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두 사람이 사들인 땅 가운데에는 해군기지가 건설된 제주 강정동 땅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JTBC <뉴스룸>은 "강정동 땅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 착수되면서 가격이 급상승했다"고 전했다.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공사를 강행하려는 해군과 경찰, 이에 맞서 기지 건설을 막으려는 강정 주민과 종교인·활동가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다. 이때 이명박 전 정권은 구럼비 발파를 강행하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들을 '종북'으로 매도했다.

만약 JTBC <뉴스룸>의 의혹 제기가 사실이라면, 즉 강정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면 매일 강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 전 대통령은 종북몰이를 하며 제 잇속을 챙긴 셈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공분할 일이다.

이런 와중에 이 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보수 개신교계는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는 양상이다. 2007년 대선 당시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이 전 대통령으로서도 곤란할 수밖엔 없으니 말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성명에서 '정치보복' 프레임을 꺼내든 건 보수 결집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확한 속내는 이 전 대통령 본인만 알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정황상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보수 개신교계도 계산에 넣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믿었던(?) 보수 개신교계가 잠잠하니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더욱 속이 타들어 가게 생겼다.

사실 보수 개신교계는 이 전 대통령을 전폭 지지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지난 2014년 종교전문기자 백중현은 자신의 책 <대통령과 종교 –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개신교는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키웠지만, 이명박 집권기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의 위기상황을 맞는다. 이미지와 신뢰도, 교세의 동반하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보수 개신교계가 처한 상황을 볼 때 위기를 돌파할 탈출구는 죄책 고백, 즉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는 길 외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보수 개신교계는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성 소수자 문제를 끄집어내 정치에 개입하는가 하면, 종교인 과세에 '순교적 저항' 운운하며 극력 반대운동을 펼쳐 빈축을 샀다.

이 전 대통령 같은 위인이 보수 대형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에 오른 건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보수 개신교계의 죄악은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회개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이 전 대통령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만약 정히 회개하기가 꺼려진다면, 사후관리 차원에서 이 전 대통령의 우군으로 나서 그와 운명을 함께 하라. 어쩌면 이 길이 국민과 역사 앞에 속죄하는 가장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태그:#이명박 전 대통령, #전광훈 목사, #김홍도 목사, #오정현 목사 , #한반도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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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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