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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 기자 말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유효할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을 보면 적어도 권력자들이 예술인을 두려워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사람이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듯이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의사소통을 한다. 예술작품은 때론 감동을 주고, 때론 고통을 주며 다양한 장면으로 삶을 환기시킨다.

송수영 미술작가의 작품은 일상적인 사물을 재편하여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수수 빗자루는 작은 새의 알을 품는 둥지가 되고 양가죽 재킷은 얼굴을 드러낸 채 가만히 응시하는 양으로 다시 태어난다. "물질과 내 몸-삶이 분리되고 격리된 사람이 아니라 내 몸과 물질, 그리고 삶이 연계된 사람이고 싶다"는 작가는 예술의 본질이 일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지난 2월 12일, 한 줌의 지푸라기와 나뭇잎들, 흙더미가 새로운 작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업실에서 송수영 미술작가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전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았다.

오래도록 아끼기... 물질을 사랑하는 법

작품 사진
 작품 사진
ⓒ 송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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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적 감수성이 도드라진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님의 정치적인 색깔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녹색당 당원이라고도 알고 있는데 평소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내 개인의 삶에서는 중요한 화두였던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환경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이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동아리는 1993년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 당시 만들어져서 이후로도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 주로 환경문제에 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해온 곳이다. 녹색당 가입도 동아리 활동을 하던 중에 했었다."

- 어떻게 보면 그런 동아리 활동이 작가님의 전공인 미술과 거리가 멀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엔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다. 동물권을 다루는 곳을 찾다가 들어간 게 환경동아리였다. 어릴 때부터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부 1학년 때 어쩌다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는데 마침 '생명의료윤리'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교수님 추천으로 동물해방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와, 내 고양이와, 이 세상과, 서로의 관계들이 다 맞물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물권의 중요성에 눈뜨게 된 거다."

- 지금은 어떤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거대담론으로서의 이슈라기보다 내 삶 속에서 실천과 연관된 지점을 다루고 싶다. 지금은 덜 소비하고 덜 구입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작업을 하면서 더 물질을 좋아하게 된 측면도 있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건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그 물질의 소중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는 거다.

우리 삶은 점차 비물질화 되고 있다. 모든 물질-물건이 쉽게 쓰고 버려진다. 그 물건의 실체에 대해서 느끼지 못한 채 쓰고 버리고를 반복한다. 예를 들어, 커피가 주는 어떤 이미지로 커피를 사는 거지 그 커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 실체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소비패턴이 멋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정말 물질을 사랑하는 것은 물질만능주의나 소비지향주의와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소유한 물질들을 아끼며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물질을 사랑하는 방식 같다."

‘How to make Micro Plastic Canape’ 전시회 포스터
▲ 테이크아웃 컵이 버려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 중 ‘How to make Micro Plastic Canape’ 전시회 포스터
ⓒ 송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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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이런 고민을 작품으로 구현한 것도 있는가?

"2017년 전시에서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이 버려지는 경로를 추적하는 작업을 선보인 적 있다. 개인작업은 아니고 팀 작업이었는데, 컵이 버려진 몇 달간을 추적하여 전시했었다. 테이크아웃 컵 같은 경우는 우리 일상 속에서 엄청나게 소비하고 버려지지 않나. 그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 보면, 단순히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이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테이크아웃 컵의 이동경로라면 매우 광범위한 영역이어서 팀 작업으로 하기에 적절했을 것 같다. 위 작업처럼 동료 작가와 협업하는 경우도 많은가?
"이 작업의 경우, 친구인 다른 작가가 예술가 지원 사업에 응모해 보자고 제안하여 같이 주제를 정해서 하게 된 거였다. 이처럼 여럿이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들의 특성 상 개인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동료들과의 교류가 그리 많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작가들은 좀 알고 있다."

- 그럼 작가님의 작품과 이와 비슷한 작품들을 일컫는 키워드가 따로 있나?
"요즘은 옛날처럼 어떤 주의로 미술사조를 묶어서 설명하진 않는다. 특정 담론 중심으로 작가들이 활동하기보다 각개 전투로 움직인다. 대신 이론가-평론가들은 작가들을 따로 분류하여 카테고리별로 묶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생태주의 미술'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작업은 작가의 삶에서 나온다

- 미술품 전시를 보러 가면 특히 현대미술은 갤러리에 비치된 작품 소개나 평론과 같은 텍스트 자료를 꼭 보게 된다.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난해하거나 의미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글로 설명한 것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은 거다. 하지만 경험상 다른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갤러리의 작품 소개만큼 어려운 글이 없는 것 같다(웃음).
"아마 어렵다고 한 그런 글들은 기획자나 큐레이터들이 썼을 것 같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론가다. 전시 소개 글은 감상자를 위한 설명이라기보다 이론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현대의 전시 형태는 전시기획이 먼저 있고 그 후에 그 기획에 적합한 작가를 불러와서 작품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전시를 만드는 건 작가가 아니라 큐레이터나 기획자다. 작가는 이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이론에 의해 언어화되기 좋은 작품이라거나 최근 유행하는 전시 추세에 걸맞은 작품이라거나, 더 선호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래서 작가들이 묵묵히 작업만 해서는 전시를 비롯한 작품활동을 하기 어렵다."

-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찾아보다가 어느 전시에서 '수공예적 노동이 동반된 작품'이라고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까 설명한 것처럼 그 전시 소개는 내가 아닌 큐레이터가 쓴 거라. 아마 나라면 '수공예적 노동'이라는 표현을 감히 못 썼을 것 같다(웃음).

사실 현대미술과 공예는 상충하는 부분이 많다. 서로 적대적이랄까. 공예는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기술을 전수하고 훈련을 통해 장인을 길러내는 식이다. 현대미술은 이런 공예적 특징을 거부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우리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철학 하는 사람이다는 식으로.

나는 현대미술을 하고 있지만 공예를 굉장히 동경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수공예적 노동으로 작품을 만든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공예가처럼 몇 년간 기술을 연마해서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 내 작품들도 개념미술의 일종이지 공예품처럼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고.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좀 더 공예가이기를 바라는 면도 있다. 물질과 내 몸-삶이 분리되고 격리된 사람이 아니라 내 몸과 물질, 그리고 삶을 연계하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한테 '너의 삶을 설명해주는 어떤 말이 있니?'라고 묻는다면 아마 대답하기 어렵지 않을까. 내 작업은 곧 내가 살아가는 것과 연결돼서 나오는 것이기에 어떤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총체적인 삶 자체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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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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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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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 작품에는 비닐봉지나 나무젓가락, 빗자루 같은 평범한 일상품들이 주로 등장한다. 어떻게 이런 평범한 물건들로 작업을 하게 되었나?
"학부 때 전공이 조소과였다. 조소과는 수업이 목조, 석조 이렇게 재료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다. 목조 수업을 들을 때였다. 나무를 깎아서 두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무 자체에 더 관심이 갔다. 여기는 벌레 먹었고, 저기는 무늬도 있고... 얘가 어디서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보통 조각을 하면 죽어 있는 무생물인 재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게는 재료인 나무가 살아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 나무가 나무 본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무를 깎아서(죽여서) 두상(인간)으로만 표현한다는 게 이 땅에 살아있는 존재는 인간만 가능하다는 생각 같아서 외로웠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살아있는 것들 천지인데도 말이다."

정치적인 행보가 자연스러운 작품을 지향하며

송수영 작가
 송수영 작가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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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두상을 만드는 와중에 다른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남들과 다른 방식이 차별화된 나의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은 하라는 걸 안 하니까 약간 문제가 있었다(웃음). 또 현대미술이 어떤 주장을 담거나 도덕적인 얘기를 하는 걸 싫어한다. 교훈적이라고. 내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자체가 내 작품을 볼 때 색안경을 끼게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나뭇잎은 왜 깎냐, 나뭇잎은 안 아프냐 공격하는 거다. "

- 그런 이분법적인 공격은 마치 채식하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비슷하게 들린다.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채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정치적인 행보가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할까?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이어나갈지 궁금하다.
"채식은 실제로 지향하고 있다(웃음). 작품은 느긋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이걸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도 아니고. 일단은 내가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니까 하는 것 같다. 너무 힘들어지면 지속하기가 어려우니 되도록 재료도 조그맣고 싼 걸 구해서 하고 있다.

만약 작업 기금이 생긴다면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좀 더 영향력 있는 작업을 하고 싶기도 하다.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 운동이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전환에 큰 영향을 끼친 적이 있다. 그런 운동처럼 여론을 시각화시키고 감동시켜 결국 움직이게 만드는 엄청난 일을 하고 싶은 원대한 꿈도 있다. 작업실에서 꼬물거리며 뭘 만드는 거에 비하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 아무래도 기금 없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업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의 경우 미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는지?
"한 논문에서 봤는데 뉴욕에서도 작품 판매로 생계유지를 하는 예술가가 전체 예술가의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걸 보고 좀 충격이었다. 현대예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도 그런 상황이니 한국은 더할 수밖에. 나 역시 작품을 돈 받고 판 것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돈벌이를 위한 노동은 따로 하고 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미술계를 보면 안타까운 게 생산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미술 자체를 향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거다. 미술 수업도 보면 자기 걸 만들지 남의 걸 보고 감상하는 건 안 배운다. 감상의 중요성을 배운 게 없다 보니 감상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교육 탓만 할 수는 없는 게, 한국의 미술은 서구 미술을 수입하고 이식한 것이라서 오늘날 미술계가 하는 것은 다 서구 맥락에서 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예술이란 것 자체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복잡하고 광범위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도 작가님의 눈으로 예술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예시로 들고 싶다. 나는 밀레가 그림 속 농부들의 삶을 잘 알고 있고 그 안에 속해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궁색하고 고되고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기에 그들이 분명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지만 그 모습이 전혀 비참해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현실을 그림 속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작가의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나 역시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평범한 삶을 일상적이지 않은 소중한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예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꼭 현대미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이나 이름 모를 사진 한 장이라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 작품들도 일상적인 재료를 오브제로 쓰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 얼마나 비루한가? 하지만 이런 존재도 새로운 가치를 내포한다. 우리 삶 역시 이것과 비슷한 것 같다. 멋진 카메라로 엄청난 장관을 담는 게 아니라 동네 한쪽에서 떡볶이 먹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는데 엄청 행복한 풍경이 만들어진다면, 그런 게 예술에 근접한 것 같다."

-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녹색전환'으로 일컫고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녹색전환'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다.
"시야를 확장하고 연결을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재는 사회 구조 자체가 많은 것들을 단절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먹는 게 어떻게 생산되고, 누가 만들고, 어디로 이동하고... 이런 연결들이 끊겨 있다. 그런 상태에서 광고로만 물건의 지식을 쌓게 되니까 분절된 형태의 감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을 예로 보더라도, 이 세상의 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하수구만 아는 사람, 일기예보만 아는 사람, 이런 각각의 고립된 정보들만으로는 물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녹색전환의 시작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박이상 시민기자는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녹색전환연구소' 사이트(www.igt.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송수영, #송수영 미술작가, #송수영 작가, #미술가 인터뷰,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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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민간연구소입니다. 내 삶과 가족, 이웃, 지구와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길 - 우정과 즐거움으로 잇는 녹색전환의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www.ig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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