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화, 경희대 부정입학 진실을 밝혀주세요."
"닐로와 장덕철의 음원 사재기를 조사해 주세요."
"벌레소년의 <평창유감> 허위사실 유포로 수사해주세요."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대한빙상연맹의 부정부패 조사를 요구합니다."
"일베 저장소 폐쇄 청원합니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를 조롱한 만화를 그린 윤서인을 처벌해주세요."
"연극인 이윤택의 상습 성폭력,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합니다."
"레진코믹스를 세무조사해 주세요."
"배우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고 김성재 사건 재수사 해주세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방영 금지 요청합니다."
"배용준·박수진 부부 삼성병원 특혜 의혹을 조사해 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모바일 첫 화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모바일 첫 화면. ⓒ 사이트 캡처


지난해 8월 신설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정치·경제·사회 등 시사 분야뿐 아니라 연예·문화 쪽 청원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시사 분야나 연예나 내용은 다르지 않다. 비리나 부정의, 강자의 갑질, 특혜 의혹, 억울한 일을 당한 약자의 사연 등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 주된 요구다.

지난해 11월 말 올라온 배용준·박수진 부부 삼성병원 특혜 의혹 청원은 30일 동안 6만8032명의 동의 서명을 얻었다. 조산한 박수진의 아기가 삼성서울병원 니큐(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출입이 금지된 조부모가 니큐에 출입했고, 면회 횟수도 일반인보다 잦았다는 것이다. 답변 기준인 20만 명엔 미치지 못했으나 당시 많은 논란과 비판을 낳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비리와 관련된 전명규 한체대 교수에 대한 조사 및 처벌 청원은 현재 190여 건이 올라와 있다. 그중 한 청원에 1만6187명이 몰렸다. 전 교수는 사임서를 제출했고 현재 문체부 감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엔 배우 한예슬의 의료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24일 기준 1678명이 서명했다.

현재까지 청와대가 답변한 21개 청원 중 연예스포츠 관련 청원은 총 4건이다. 지난 2월 중순 제기된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대한빙상연맹의 부정부패 조사 청원이 무려 61만4127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해당 청원을 통해 연맹에 대한 문체부 감사를 이끌어냈으나 지도부의 잘못을 어린 선수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밖에 연극인 이윤택의 상습 성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청원(20만8522명), 고 장자연 사건 재조사 청원(23만5796명),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22만2770명)이 큰 관심을 모았다.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다룬 JTBC <진실추적자 탐사코드> 2012년 9월 23일 방송분 '성폭력으로 풍비박산난 한 가정 - 어느 자매의 자살'의 한 장면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도 청원인원이 20만 명을 넘기자 청원 마감시한이 남았음에도 경찰청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 JTBC


30일간 20만명 동의 받으면 청와대가 답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이해 문을 열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백악관처럼 우리도 국민의 청원에 답하자"고 아이디어를 냈고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호응했다. 해당 제도는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청와대나 관계 부처가 공식 답변하도록 돼 있다. 지난 13일까지 21개의 청원에 대해 답변이 이뤄졌으며, 현재 8개 청원이 답변 대기 중이다. 2017년 8월 19일부터 현재까지(4월 23일 기준) 16만9500여 건이 게시됐다. 하루 평균 680여 건이 올라온 셈이다.

지난 19일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성인남녀 3516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7%가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16.3%에 그쳤다. 청원 게시나 동의 서명을 해 본 응답자 비중도 44.8%에 달해 국민청원에 대한 높은 관심이 드러났다.

이렇게 시민들의 호응이 높은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답답함을 바로 호소할 수 있는 편리성'을 꼽을 수 있다. 국회 청원, 주민청원, 국민권익위 국민신문고 제도 등이 기존에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의견이 많다.

국회 및 주민청원은 시민들이 독자적인 청원을 할 수 없고, 반드시 국회의원실이나 지방의회 의원실을 경유해 해당 의원의 '청원 소개 의견서'를 첨부, 청원서를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인터넷에 접속해 익명으로 청원할 수 있는 데다 청원 게시 및 동의에 별도의 로그인이 필요 없다.

왜 청와대 청원게시판으로 몰릴까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들의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봤다. 새 정부가 이전 정권에 견줘 덜 권위주의적이고 좀 더 시민친화적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그런 청원 제도는 모든 정권에서 다 있었다"며 "하고 싶은 말은 옛날부터 항상 많았는데 신문고를 열어놔도 반응이 그동안 신통치 않았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청원을 하면 아무튼 정권에서 신경을 써서 응답을 해준다는 기대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이어 그는 "20만 명이 넘어야 답변하는 규정도 흥미를 끌고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된다"고 덧붙였다. 

지 교수는 또 국회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정한 절차를 만들어서 입법부나 사법부에서도 응답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놔야 한다. 국회에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사이트를 만들어도 된다"면서 "국회가 응답을 잘 안하니까 청와대라도 가서 하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국회에서 계류됐던 법안이 최근 청와대 청원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면서 통과된 경우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의 정치참여 의지와 욕구가 높아졌고, 새 정부가 그러한 국민의 참여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봤다. 구 교수는 "국민들이 촛불 시위를 통해서 정권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효능감(정치과정 참여를 통해 느끼는 성취감)이 커졌다. 참여 의지와 욕구도 매우 높아졌다"면서 "새 정부가 국민 참여나 촛불시위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찾고 있고 정당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청원게시판을 열었다. 직접 민주주의적인 욕구를 받아 안아서 제도화하는 길을 열었다는 면에선 장점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엔 그때그때 여론과 민의가 빠르게 반영된다. 이슈가 되는 사건이 경쟁하듯 청원게시판에 올라온다. 이에 따라 다수의 동의가 몰리면 청와대가 답변을 하기 전이라도 관련 정부 부처와 국회 등이 비교적 빠르게 반응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수사 중인 네이버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의 경우 지난 1월 17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댓글 조작단이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고, 묵인·방조하는 포털도 공범"이라며 문제 제기를 하자, 다음날인 18일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이 올라왔다. 19일 네이버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도 청원인원이 20만 명을 넘기자 청원 마감시한이 남았음에도 경찰청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고 장자연에 대한 재조사 결정도 청와대 청원의 영향을 받았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1차 사전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청원게시판에서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지난달 27일 재조사를 결정했다.

 탤런트 故 장자연씨의 발인이 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운데 고인의 영정이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2009.3.9

고 장자연에 대한 재조사 결정도 청와대 청원의 영향을 받았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1차 사전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청원게시판에서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지난달 27일 재조사를 결정했다. ⓒ 연합뉴스


"방탄 군 입대 면제" 등 떼쓰기 청원도... 그럼에도

반면 분풀이, 떼쓰기, 막무가내식 황당 청원이 몰리면서 개인의 분노 배설 창구로 변질됐다는 의견도 다수를 이룬다. "방탄소년단 군 입대를 면제해 달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폐지해달라" "일정 키 미달인 사람은 롱패딩을 못 입게 해달라" 등 개인을 공격하거나 미확인 사실,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청원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폭력적·선정적 청원에 대해 삭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해 청원실명제 도입이나 부적절한 청원 신고 기능, 중복 청원 동의 방지 등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민이 불편하게 느끼는 의견도 간간이 올라오고 있지만 이 역시 국민 의견의 일부다"라며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지 않은 이상은 특별히 제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주형 교수도 "막무가내식 청원의 경우 청와대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얘기할 수 있다. 아무리 얼토당토 안 한 것이라고 해도 말할 자유는 있다"면서 "그런 것이 무서워서 청원제도를 못할 것은 아니다. 부작용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황당한 청원의 경우 시민들이 그만큼 몰리지 않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제가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월 말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업무보고에서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면서도 "답변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곤란한 질문이라도 원론적 답변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민청원 추천 20만 건 이상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언급한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는 앞서의 황당한 청원 외에도 입법부나 사법부 영역의 청원이 많이 올라오는 것에 대한 고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주형 교수는 "대통령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헌법상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국가원수이기도 하다"면서 "사람들은 '대통령님 해주세요'라고 국가원수로 생각해서 청원하지만 실제 권한은 행정부 수반이다. 입법이나 사법 관련 부분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런 부분에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교수도 동일한 문제를 지적했다. 구 교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의회, 사법부, 정당의 역할, 성숙한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전문가 층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절차가 의도치 않게 무시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인민재판·마냥사냥식의 여론몰이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구정우 교수는 "여론 재판처럼 돼버려 사법부 재판보다 훨씬 가혹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보인다"면서 "이런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시시비비를 당장 선명하게 가릴 수 없다 보니 하소연하고 분풀이하듯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하는 게 많은 것 같다"면서 "정당과 입법·사법부의 역할은 사라지고 대중이 옳다고 믿는 것이 퍼지고 그것이 팩트가 되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고 경계했다.

청원 팩트 인권 청와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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