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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또 오토바이를 보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는 날렵하게 생긴 오토바이 사진이 떠있다. "베트남에 있을 때 오토바이 타는 게 가장 좋았는데..." 나 들으라는 듯 그렇게 말한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달랏의 고원지대를 오토바이로 날마다 달렸고 낫짱(나트랑)의 해안 도로를 거칠 것 없이 달렸으니, 그 바람과 자유가 그리울 만도 하다.

남편이 오토바이를 그리워하는 기세가 보이면 미리 차단한다. "나, 과부되는 것 싫어. 오토바이는 베트남에서나 타는 것이지 한국에서는 안 돼." 이렇게 말하면 남편도 선선히 맞장구를 친다. "맞아, 오토바이는 베트남에서 타는 거지."  

그 역시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를 탈 자신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미련은 남는지 사진을 지우지 않고 내려둔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 느꼈던 자유로움과 질주 본능은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큰 욕망인가 보다.  

바람을 안고 달렸던 베트남 생활

추운 겨울 동안 따뜻한 베트남에서 지내보리라 마음먹고 여행 계획을 짤 때 우리가 가장 마음에 두었던 부분은 오토바이였다. 베트남을 떠올리면 길을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부터 생각날 정도로 베트남은 가히 오토바이 천국이다. 우리도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닐 생각이었다.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이동수단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확장을 뜻한다.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이동수단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확장을 뜻한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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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빌려서 타고 다닐 거라고 했더니 이웃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했다.

"그거 위험할 텐데요.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열이면 열 명 다 위험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할만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는 위험한 탈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오토바이는 맨 몸으로 타는 것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쓰지만 그외 다른 보호장구는 거의 없으니 만약 사고라도 나면 맨 몸뚱이로 길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도로 환경은 오토바이에게 친절하지 않다. 차량들은 오토바이를 보면 거추장스럽게 여길 뿐 따로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오토바이 타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토바이, 위험할 텐데요?"

이렇게 위험한 오토바이를,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타야 하니 어찌 걱정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국제면허도 따고 여행자 보험에도 가입했다. 만약에 사고가 나서 다치기라도 하면 의료 기술이 좋은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치료를 받을 셈으로 보장 내용이 좋은 보험을 찾아 들었다.

이렇게 온갖 걱정을 하면서 베트남으로 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많은 오토바이 물결 속을 헤치고 다녔지만 별 일 없이 잘 다녔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타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위험하지 않았다.

작년 겨울에 두 달 동안 베트남에서 지낼 때 우리는 오토바이를 빌려서 탔다. 달랏에 온 외국인 여행자들은 오토바이를 임대해서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루 빌리는 데는 약 12만동(6천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되고 장기로 한 달 정도 빌리는 경우에는 우리 돈으로 약 12만 원 내외를 주면 된다. 
 
바람을 안고 달리노라면 웃음이 벙글벙글 절로 나온다.
 바람을 안고 달리노라면 웃음이 벙글벙글 절로 나온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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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달랏은 고원지대일 뿐만 아니라 지형적으로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곳이라 오토바이가 최고의 이동수단이다. 간혹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보이지만 그것은 백의 하나, 아니 천의 하나도 되지 않는다.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도 달린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밀려서 그런지 속도를 잘 내지를 못한다.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달랏 역시 오토바이가 주요 이동수단이다.  

날개를 단 남편, 자유를 얻었다

베트남의 달랏에 도착한 지 사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오토바이를 빌렸다. 이제 우리만의 이동수단이 생겼다. 아무 때나 달릴 수 있고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무한 확장될 것이니 이 아니 좋을 쏘냐.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는 연신 벙싯댔다.

'오토바이'라는 날개가 생기자 그는 훨훨 날았다. 달랏 시내는 물론이고 그 인근 지역까지 훑고 다녔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그 기분은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인 듯했다. 남편의 등에 바짝 붙어 앉아서 달리는 나 역시 절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운전 면허가 있는 사람이라면 따로 오토바이 면허, 즉 원동기 면허가 없이도 125cc 이하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외국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국제면허에 이륜자동차운전면허가 첨부되어야 한다. 즉 외국에서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이륜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국제면허에 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베트남에서는 주요 이동수단이 오토바이다.
 베트남에서는 주요 이동수단이 오토바이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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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1종 보통 운전면허가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125cc 이하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베트남에서도 특별히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사람들 말로는 면허증이 없이도 얼마든지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이륜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국제면허를 발급 받았다.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라는 말이 있더니 달랏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등하교 시간대에는 도로에 오토바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틈새로 파고들려면 여간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 물결 속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 처음에는 계속 들먹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요령을 터득했다. 일단 오토바이 머리를 들이밀면 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얼마나 오토바이를 잘 타는지 거짓말 좀 보태서 일 센티미터 간격을 두고도 피해갈 정도였다. 그렇게 차차 적응하며 베트남에서 두 달 동안 잘 살았다.

남편은 지금도 가끔 말한다. "오토바이는 자유야.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면 좋아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던 적도 있었어." 떨어질까 두려워 남편의 허리춤을 꽉 부여잡고 달렸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자유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 같다. 맨 몸으로 부딪혔던 그 바람은 남편의 말마따나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할 일들을 하고 난 후의 자유를 누린다.
 할 일들을 하고 난 후의 자유를 누린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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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꽉 짜인 일상을 살았던 남편이었다. 부모님에게는 믿음직한 맏아들이어야 했고 형제들에게는 든든한 큰형님이어야 했다. 처자식을 위해서 싫은 소리를 들어도 삼키며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 무거운 책무 앞에 짓눌리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훌훌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인들 왜 하지 않았을까.

오토바이의 다른 이름은 '자유'

그렇게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남편이 퇴직과 함께 책무에서 조금은 놓여날 수 있었다. 마음으로만 꿈꿨던 여행도 원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자유롭지 않았을까. 거기에다 오토바이로 달리기까지 하니 그의 가슴 속 응어리들이 풀려나가는 듯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바람을 가르며 마음껏 달렸다. 내재되어 있던 질주 본능이 깨어났다. 거칠 것이 없었다. 삼십여 년 간 해야만 하는 일들을 수행하며 살았던 우리는 이제 해야 할 일들에서 놓여났다. 할 일을 얼추 다 했으니 하고 싶은 일을 좀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쏜가.

오토바이의 다른 이름은 '자유'였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노라면 스멀스멀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나를 규정짓던 것들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렸던 베트남 두 달 살이였다.

태그:#베트남여행, #베트남달랏 , #오토바이, #달랏, #은퇴후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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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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