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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배달통을 든 음식 배달원들이다. 예전에는 배달 음식의 종류가 주로 자장면이나 짬뽕 같은 중국음식이었다면 요즘은 치킨, 피자를 비롯해서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만큼 배달 음식이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가져와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음식을 배달해서 먹었을까? 최초의 배달 음식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이미 배달 음식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1936년 7월 23일자 <매일신보> 기사 중에 '여름철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서 불이 날 지경'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 시대를 너무 몰랐던 탓일까. 1936년에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전화통이 불이 날 지경이라는 문장에서는 뒤통수를 크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하고 궁핍하기만 했을 것 같은 1930년대가 전화통에 불이 날 만큼 전화보급률이 높고 배달 주문이 많았을 그런 시절이었던가, 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우리의 음식문화는 어땠을까, 그 시절 사람들은 무얼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시켜준 책이 바로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식탁 위의 문학 기행)이다.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은 1909년부터 1943년까지 발표된 산문, 소설, 르포르타주 및 신문기사 중에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발췌해 엮은 책이다.

책은 백석, 이효석, 채만식 등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이 음식에 대해 쓴 산문 및 소설과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글 중에 재미난 것은 기자가 추탕집(추어탕집) 머슴과 냉면집 배달원으로 위장하여 취재한 기획기사까지 있다는 점이다.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은 음식을 통한 문학적 향취는 물론 잘 몰랐던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 식탁 위의 문학 기행> 표지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 식탁 위의 문학 기행> 표지
ⓒ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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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그리운 것은 역시 김치

냉면의 양대산맥이라 하면 비빔냉면으로 유명한 함흥냉면과 더불어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내는 평양냉면 아닐까. 올여름 유난히 더웠던 날씨 탓도 있으려니와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메뉴에 올라 사람들의 구미를 한껏 당겼던 평양냉면. 그렇다면 그 시절 사람들의 평양냉면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효석의 평가는 아주 냉정하다. 1939년 <여성>지에 발표한 <유경식보>는 이효석이 평양에서 4년을 살면서 느낀 평양 음식에 관해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이효석은 평양의 자랑은 국수가 아니라 만두가 되어야 한다며, 평양냉면은 물론 평양 음식 전반에 대해 평가절하 하였다.

반면 1929년 12월호 <별건곤>에 쓴 글에서 김소저는 <사철명물 평양 냉면>이라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평양 냉면에 대한 소회를 적고 있다.
 
조선 사람이 외국 가서 흔히 그리운 것이 김치 생각이라듯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 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방안에는 바느질하시며 삼국지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고요히 고요히 울리고 있다. 눈앞에 글자 하나가 둘셋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리가 차차 가늘게 들려올 때 "국수요-" 하는 큰 목소리와 같이 방문을 열고 들여놓는 것은 타래타래 지은 냉면이다. 꽁꽁 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치국에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풀어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 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본문 207-208쪽)

그런데 '조선 사람이 외국 가서 흔히 그리운 것이 김치'라는 표현은 좀 뜻밖이다. 외국 여행이 자유로운 요즘이면 몰라도 1929년 아닌가. 하지만 1928년 5월호 <별건곤>에 실린 이정섭의 <외국 가서 생각나던 조선 것>이란 글을 읽으니 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 생각과 많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동지섣달 추운 날에 백설이 펄펄 흩날릴 때에 온돌에다 불을 뜨듯이 때고, 3, 4 우인이 서로 앉아 갈비 구워 먹는 것이라든지, 냉면 추렴을 하는 것도 퍽 그리웠다. 그리고 양식을 먹은 뒤에는 언제든지 김치 생각이 퍽 간절하였다. 김치야말로 외국의 어느 음식보다도 진품이요 명물일 것이다. (본문 63쪽)

어느 시절에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여 부유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법!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모두가 가난하게 핍박 받으며 살지는 않았을 터이니 온돌에 불 때고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갈비를 구워먹는 사람들이며 요즘처럼 외국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들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추운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 하던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탓으로 돌려야 할까. 

<미스터 션샤인>의 꽃빙수가 사실이라고?

인기리에 방영중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빛깔 고흔 얼음을 갈아 꽃처럼 맹근 여름 별미'라고 소개된 빙수. 저 시대에 무슨 빙수냐며 PPL에 꽂힌 역사왜곡은 아닌지 인터넷에서 한창 설왕설래 하게 했던 꽃빙수는 실제로 있었을까? 1929년 8월호 <별건곤>에 실린 아동문학가 방정환의 <빙수>란 글을 보면 약간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보다도 밀크셰이크보다도 써어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 (중략) 빙수에는 바나나 물이나 오렌지 물을 쳐 먹는 이가 있지만, 얼음 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 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라지는 것같이 상긋-하고도 보드랍고도 달콤한 맛이니, 어리광 부리는 아기처럼 딸기 탄 얼음물에 혀끝을 가만히 담그고 두 눈을 스르르 감는 사람, 그가 참말 빙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본문 182쪽)

1897년 8월 5일자 독립신문에 "슈표 다리(수표교) 빙슈 파는 집에서 빙슈를 사 먹는데"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드라마에 나온 빙수가 고증이 안 된 전혀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한말을 지나 일제강점기 동안 격변하는 시대 모습을 소설로, 산문으로, 르포르타주로 담아낸 책이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이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무얼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결정했다. 오늘은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이다. 책의 제4부 팔도명물 음식예찬 중 대구의 명물로 소개된 대구탕반. 쇠고기를 가지고 개장처럼 만든 것으로 본토인 대구에서 대발전해 서울까지 진출하였다는 육개장이 바로 대구탕반이다.

조선 사람의 특수한 구미를 맞추는 고춧가루와 개장을 본뜬 데 특색이 있다는 육개장. 잘못 먹었다간 입술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스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만 흘린다는 육개장. 입술이 부푸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낙점이다!

덧붙이는 글 |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 식탁 위의 문학 기행>
백석, 이효석, 채만식 외 지음, 이상 엮음, 가갸날 펴냄, 2017년 11월, 224쪽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 식탁 위의 문학 기행

백석.이효석.채만식 외 지음, 가갸날(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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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2017년 그림책 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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