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07 18:58최종 업데이트 19.03.07 18:58

미세먼지 '비상'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5일 연속 서울, 경기, 인천지역에 발령되어 최악인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주변 건물이 흐릿하게 보인다. ⓒ 권우성


서울의 대기오염지수(AQI)가 169㎍/m³(매우나쁨)를 기록하던 지난 5일, 파리의 대기오염지수는 30㎍/m³(보통)를 찍고 있었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져 두려웠던 적은 있었어도, 파리에 살면서 대기오염 때문에 두려웠던 적은 거의 없다. 중국 같은 얄궂은 이웃을 두고 있지 않으나, 대기오염은 대도시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외곽 도시를 포함, 1200만 명이 삶을 공유하는 이 도시에서도 오염된 공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를 위해 부단한 노력해왔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며 파리 시장은 줄곧 사회당 쪽에서 맡아왔다. 환경에 지대한 관심과 의지를 가진 이들 시장들이(2001~2014 베르트랑 들라노, 2014~현재 안 이달고) 연달아 재임하면서, 환경 문제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7년에 시작된 파리시의 공공자전거 제도 '벨리브(velib)'가 생겨나고, 4개 라인의 트램(tram·노면전차) 설치는 '에콜로지(생태학)'가 정책에 스며들어 시민 삶의 패턴을 바꿔놓는 것을 경험한 첫 장면에 해당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시장
 

안 이달고 (Anne Hidalgo) 파리 시장 ⓒ 연합뉴스

  
파리시가 지금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오염지수를 갖게 된 것은 그동안 체계적으로 전개되어 온 정책적 노력의 결실이다. 들라노에 시장의 후계자로, 지난 2014년 취임한 이달고 시장은 일찍이 어디서도 본적 없는 저돌적인 에콜로지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에너지로의 전환과 환경보호를 위한 정책과 의견을 내놓으며, 시민들의 인식을 뒤흔들어 놓고, 초록으로 뒤덮인 청사진을 현실로 앞당겨 왔다. 

2013년 파리의 대기오염지수가 75㎍/m³(보통)를 넘어선 날은 연간 47일이었고 100㎍/m³(민감)을 넘어선 날도 이틀이나 되었다. 그러나 2018년 오염지수가 75㎍/m³를 넘어선 날은 16일로 줄었고, 100㎍/m³을 초과하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이달고 시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2030년 석유 자동차 0의 도시', '2050년 재생에너지 100%의 도시'를 파리의 목표로 내걸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차를 12년 내에 퇴출시킨다는 것은 이달고 시장만의 목표였으나 이제는 파리시의회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공식 플랜'이다. 나아가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전환 플랜의 일부가 됐다. 파리시가 이 같은 목표를 발표를 하고 나서, 정부 또한 2040년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모든 석유 차를 퇴출시키고 전기차 또는 수소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중에서도 대기오염을 앓는 대도시에선 보다 빠르게 석유차를 퇴출하겠다는 내용의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파리 시내 한 가운데 설치된 수소 충전소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시내 알마광장에 설치돼 있는 에어 리퀴드사의 수소 충전소의 모습. ⓒ 연합뉴스

 
파리 시내를 운행하는 모든 차량은 에너지 등급이 표시된 스티커를 부착하게 되는데, 2030년부터는 전기차, 수소차 등 석유를 원료로 하지 않는 차량에는 녹색스티커가 붙는다. 15년 이상 된 석유 차량은 이미 지난 2017년부터 파리 시내의 특정 구역에선 이용이 제한된다.

매연을 많이 내뿜는 오래된 차일수록 사용에 제한이 많고, 결국 12년 안에 파리 안을 다니는 모든 승용차는 전기/수소차로 전환해야만 한다. 도시 대기오염의 주 원인으로 꼽히는 디젤 차량의 퇴출은 2024년까지로, 더 가까운 곳에 있다.  대신 오래된 디젤 차량 소유주가 전기차나 수소차를 구입할 경우 최고 1만유로(1200만 원)까지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 

이달고 시장은  2016년부터 일요일 하루를 '차량 없는 날'로 정해, 파리 시내 절반에 달하는 면적에서는 승용차가 운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차 없이 살아가는 삶, 그 낯선 불편함에 익숙해지도록, 시민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달고가 "차 없는 파리"를 시행하자, 일부 승용차 운전자 협회가 "이달고 없는 파리"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파리 외곽에서 자동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달고의 반 승용차 정책이 승용차 운전자의 자유와 평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라면서 격렬한 항의를 멈추지 않는다. 

만약 차종 전환에 대한 일방적 요구만 있었다면 이런 정책은 현실적으로 수용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요구와 함께 대안도 제시되어야 가능하다. 에너지 전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대기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대중교통망의 확충이다.

시가 시민들에게 제시한 대표적 대안이 광역급행철도망 'GPX(Grand Paris Express)'다. 지난 2010년부터 준비한 이 프로젝트는 2020년~2030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완공될 예정이다. 이미 파리엔 14개의 지하철 노선과 5개의 광역고속전철 라인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는 4개의 지하철 라인을 신설하고 기존의 라인을 연장하여 총 205km의 철로를 추가로 건설한다. 그렇게 72개의 역을 파리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세우면서, 파리 외곽지역과 시내와의 거리를 단시간 내에 연결, 도로 교통 이용자의 수를 대폭 줄일 것을 보인다.  

또한 공공자전거 벨리브에 이어  지난해 등장한 전동퀵보드(최고 시속24km)도 도심 내 대체 교통수단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도시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응급 처방을 위한 전제 조건

"오늘 대기오염 때문에 지하철이 무료래!"

파리 사람들이 대기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 때는 보통 이런 상황에서다. 피부로 대기의 변화를 또렷이 감지하지 못해도, 지하철이 무료로 운행된다는 사실을 통해 대기오염지수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즉, '무료 지하철'이 대기 오염을 알리는 하나의 사이렌 역할을 해온 셈이다. '공짜니 타시라' 라는 메시지이기보다 '오늘은 가급적 승용차를 타지 말기 바란다'는 공적인 조언을 하는 방식이며,  그 조언을 하는 측에서 베푸는 정책적  배려가 지하철 무료운행인 셈이다. 

이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환경오염에 대한 대중의 문제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이 갑자기 추가된 이용객을 수용할 자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출근 시간 때면 배차 시간이 1분 30초인 파리의 지하철은 평소 이용객의 10% 정도의 사람이 추가로 탑승해도 수용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미 만년 '지옥철'인 서울의 통근 지하철에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무료라고 해서 더 탈 사람도, 더 태워줄 자리도 없다.

대기오염지수가 75㎍/m³를 넘어서게 되면 파리시 등 관계 당국은 비상등을 켜고, 대기 오염수치를 낮출 방법을 찾는다. 파리시 대기오염의 주범은 자동차 배기가스(29%)임이 밝혀진 이상,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건 필수다. 파리시가 지하철을 무료로 운행할 때 드는 비용은 1일 4백만 유로(약 50억 원)다. 이를 통해 줄어드는 자동차의 운행률은 5% 정도. 이 비용은 파리시를 비롯한 일드 프랑스의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부담해 왔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줄어드는 차량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러한 방침에 대한 비난 여론은 거의 없었다. 시민들은 파리시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부단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이것은 그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되는 방법 중 한가지일 뿐. 어차피 공공재인 지하철이 하루 이틀 돈을 못 버는 대가로 시민들이 조금 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게 그다지 나쁜 셈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시는 대기 오염이 심한 날 지하철 무료 운행을 포기하고 할인 티켓을 판매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는데, 이는 정부가 더 이상 비용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불편할수록 공기는 맑아진다
 

프랑스 파리가 2050년 완성을 목표로 진행중인 청정 도시의 청사진. ⓒ 유튜브캡처

 
파리는 사실 이전부터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도시였다. 파리의 구도심은 수백 년 된 도로와 건물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하고 도로도 비좁다. 차로 이동하는 데 30분이 걸린다면 주차장을 찾는 데 1시간이 걸리는 일이 태반이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은 출퇴근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출퇴근에 승용차를 이용하는 파리시민은 전체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집계된다.  

이미 충분히 불편했던 이 도시가 최근엔 더 심각하게 불편해 지고 있다. 곳곳의 도로가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 공사의 대부분은 보행로와 녹지공간을 넓히고 차로를 줄이는 데 집중돼 있다.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이 파리 시내에서의 운전을 포기하는 것을 본다.  계획대로라면 앞으론 한층 더 고차원의 불편함이 운전자들을 괴롭힐 전망이다.

반면, 파리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차를 이용하는 비율이 30%로 훨씬 높다. 그러나 이 30%의 자가용 운전자들도 주변에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면, 그걸 이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절대 대수라고 한다. 이들에게 차는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철저한 이동수단이며, 더 편리한 수단이 있으면 얼마든지 포기가 가능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이달고 시장이 자동차와의 싸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시는 2050년까지 재생 에너지로 100% 전환하겠다는 또 다른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 주택 단열 공사 지원, 태양열 에너지 시스템 설치 지원, 도심 내 녹지 공간 확대, 육류 소비 축소, 채식 확대 등의 세부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제시된 개별 정책안이 무려 500가지에 이른다. 이는 파리시가 1천 명이 넘는 시민들로부터 의견을 제안 받아 100회가 넘는 회의와 토론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파리시가 환경을 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저돌적으로 추진해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달고 시장은 이렇게 되묻는다.

"모두의 건강한 삶을 지키고, 우리 아이들에게 살만한 지구를 물려주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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