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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4월 11일 오후 4시 28분]

지난 편에 1919년의 3.19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덴노지 공원(天王寺公園)을 소개했다. 이번 편에는 오사카에 남아 있는 1930년대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관련기사 : 오사카 여행 핫플된 이곳에서 '독립' 외쳤던 사람들 http://omn.kr/1hkbx]

오사카 성과 조선의 의병들
  
별도 없음
▲ 오사카 성(천수각) 별도 없음
ⓒ 제갈대식(사진가/디자인이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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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사카 성'일 것이다. '오사카 성'은 그야말로 오사카의 상징 그 자체이다. 오사카 성은 일본을 전국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유명하며, 성(천수각) 내부는 그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도요토미는 일본 통일 이후, 대륙 진출(조선 침략)을 꿈꾸었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활약이 펼쳐진다. 오사카 성은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한 곳이기도 하다. 적의 장군을 모시고 있는 성이니. 하지만, 오사카성 또한 역사가 깃든 곳이니, 생각하기 따라서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사카성을 둘러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을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그 오랜 역사부터 민초(民草)가 지켜 온 나라이지 않은가. 오사카 성을 둘러 볼 때, 스스로 일어나 외세 침략에 맞선 조선의 의로운 병사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천수각을 구경하고 나올 때쯤, 당신의 손에 쥐어진 대한민국의 여권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오사카 성과 전쟁의 흔적
 
미라이자 오사카 성(舊육군 제4사령부 청사)
 미라이자 오사카 성(舊육군 제4사령부 청사)
ⓒ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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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다소 길어졌는데, 천수각 바로 앞에는 근대 양식으로 지어진 '미라이자 오사카 성(ミライザ大阪城)'이라는 건물이 있다. 1931년 3월 22일에 육군 제4사령부 청사(陸軍第四師団司令部庁舎)로 지어진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군에게 접수(接収)되었으나, 종전 후 다시 일본으로 반환되어 한동안 오사카 경찰서 본부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60년부터는 오사카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가, 오사카 시립 박물관의 새 건물이 건립되면서 2002년부터는 잠시 폐관되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내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레스토랑, 전시관,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수각 바로 앞에 있기에 다들 한 번쯤 눈여겨보는 건물이긴 하나, 단순 쇼핑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가까웠다.

오사카 성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천수각 표 끊으러 가는 길에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되돌아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오사카 성 속 윤봉길 의사의 숨결
    
오사카성에는 '미라이자 오사카 성(ミライザ大阪城)'과 같이 전쟁의 아픔이 담겨있는 흔적들이 곳곳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꼭 들러주길 바란다. 바로, 구(舊) 육군 위수형무소의 옛터이다. 위수형무소는 도시락 폭탄의 윤봉길 의사가 순직 직전 마지막 한 달을 보낸 곳이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6일 한인 애국단에 입단하여,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계획한다. 윤봉길 의사는 입단 후 3일 만에 29일 일왕의 생일날,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게 된다. 윤봉길 의사는 저격용 물통 폭탄 1개와 자결용 도시락 폭탄 1개를 감추고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식장에 입장하였다.

식이 진행 중일 때, 그는 물통 폭탄을 던졌으며,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와 거류민 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리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重光癸) 등이 중상을 입었다.

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틈을 타서 자결하고자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11월 20일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한 달간 수감 되었으며, 12월 18일 가나자와로 이송되어 육군 제9사단 구금소에 13시간 가량 머문 뒤, 다음날 12월 19일에 가나자와 육군 작업장에서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셨다.

현재 '위수형무소'는 철거된 상태이다. 오사카성 천수각 학예과(학술연구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하면, '위수형무소'는 공원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오사카성을 관광하면 '사쿠라몬(桜門)'으로 입장하여 천수각으로 들어간다.

사쿠라몬 바로 앞에는 '호코쿠 신사(豊国神社)'가 있는데, '호코쿠 신사' 뒤편이 '위수형무소'가 있었던 터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성 공원 안내도로는 '이치반 야구라(一番櫓)'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이치반 야구라'는 '천수각'으로부터 도보 5분내에 위치해 있어, 손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위수형무소'의 옛터에 다다르면, '이곳은 오사카 위수감옥이 있었던 곳으로(この地には、かつて大阪衛戍監獄があり)'라는 문구가 적힌 설명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설명판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윤봉길 의사'에 대한 설명판은 아니다. 윤봉길 의사와 비슷한 시기에 오사카 위수형무소(위수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센류 작가 쓰루 아키라'의 추도비에 대한 설명판이다.

비록, 윤봉길 의사를 추도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위수형무소의 옛터에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은 어떨까? 불어오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이 사뭇게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사카의 청량한 하늘에 서린 서글픔을 느껴 보는 것 또한 의미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역사, #윤봉길, #오사카, #오사카 성,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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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행에서 1시간만 마음을 써 주세요” 일본의 유명 관광지와 멀지 않은 곳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보 부족과 무관심으로 추도 받아야 할 장소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교육학 박사. 고려대/국민대 강사. 학교/학교메일을 통해 정식으로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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