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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 고찰의 돌틈 사이로 해마다 풀 한 포기, 꽃 한 포기가 피어난다.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 고찰의 돌틈 사이로 해마다 풀 한 포기, 꽃 한 포기가 피어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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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시절에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마침 절에 다달았을 때였다.

유명한 절이었는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조용하고 정갈해서 무척 마음에 끌렸다. 사찰 가까이 다가가니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친구랑 가만히 서 있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신발을 벗고 들어가 절을 올렸다. 무슨 마음에서 절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알 수 없는 것들이 마음 가득 차오르는 듯했었다.

그리고 절 밖으로 나오면서 잡념을 떨친 개운한 기분은 무엇인지. 산길을 내려오면서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던 것은 절을 하면서 내가 빌었던 소원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철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이다. 시간이 흐른 후 내게 그렇게 각인된 적멸보궁은 허술하기만 한 내 마음에 영적인 기운을 주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땀범벅이 되어서 들어섰던 사찰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요즘 내게 그런 시간이 간절하기 때문이 아닐지. 그 시절의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적멸보궁은 착하고 이쁘던 내 친구와 그 시절이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스무 살 초반의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적멸보궁은 지금도 감사와 염원을 올리는 곳이란 생각을 한다. 아들아이가 군대 가기 전의 강원도 가족여행에서도 굳이 최북단 마을 끄트머리 고성에 있는 건봉사의 적멸보궁에 들렀었다.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의 기도가 전해질 것만 같은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절이다. 물론 아들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잘 마쳤고 요즘도 난 가끔 적멸보궁이 있는 절에 가고 싶어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만 보아도 고요해 지는 듯한 기분이 전해진다.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만 보아도 고요해 지는 듯한 기분이 전해진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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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5 전쟁 중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인 불이문(不二門).
‘부처와 중생은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의 불이문의 모습이 마치 오래 알고 있던 사람이 기다리며 서 있는 자태다.
 6. 25 전쟁 중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인 불이문(不二門). ‘부처와 중생은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의 불이문의 모습이 마치 오래 알고 있던 사람이 기다리며 서 있는 자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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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건봉사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적하다. 오는 길에 라벤더 꽃밭을 보고 왔는데 그 화사해진 마음을 지긋하게 눌러주는 힘이 전해진다. 입구 마당의 사명대사와 한용운님을 기리는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 옆의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한용운 님의 시비를 들여다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입구의 일주문이 오래된 자태로 다정히 반기듯 서 있다. 6.25 전쟁 중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인 불이문(不二門)이다. 일주문의 기둥은 보통 2개인데 건봉사 일주문은 4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불이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법당이 있었던 널찍한 절터가 펼쳐진다. 드넓은 터는 전쟁으로 소실되기 전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하다. 
 
 산사의 적멸보궁을 에워싼 자연 속의 수녀님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뒷모습.
 산사의 적멸보궁을 에워싼 자연 속의 수녀님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뒷모습.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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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치아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숲이 감싸고 있다.
 부처님의 치아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숲이 감싸고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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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갔던 일행들은 능파교를 건너 대웅전엘 먼저 갔지만 나는 적멸보궁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적을 때 먼저 조용히 보고 싶었다. 돌계단을 오르고 어리연이 뒤덮은 양쪽의 연못에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다. 마침 앞서 가던 두 분의 수녀님이 샘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사찰의 이곳저곳 꼼꼼히 살펴보는 수녀님의 뒷모습이 보기 좋다.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열반의 상태인 적멸(寂滅)과, 보배같은 궁전이란 보궁(寶宮),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고요하기만 한 적멸보궁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뒤편으로 가본다. 부처님의 치아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숲을 등지고 서 있다. 그 아래 촛불 기도를 올리는 분이 있어서 나도 기다렸다가 초를 하나 사서 마음을 담아 촛불 공양을 했다. 이런 사소하고 어설픈 짓이 괜히 위안이 되는 가엾은 중생...
   
 마음 담아 촛불공양, 이렇게라도 감사를 전하고 위안을 얻는다
 마음 담아 촛불공양, 이렇게라도 감사를 전하고 위안을 얻는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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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대웅전을 들러 나오는 길에 펼쳐진 반세기 동안 보존되어 오는 자연 속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불에 타고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을지라도 도처에서 그 시절이 보인다. 천년의 세월을 보여주는 부도탑도, 돌솟대도, 스님들이 사용했다는 대형 돌확들도 그나마 여전히 잘 보존되어 그 자리를 지켜준다면 좋겠다. 훗날 누군가가 찾아오더라도 이 대찰에 걸쳐진 만만찮은 긴 세월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도록.

*주소: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T.033-682-8100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커뮤니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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