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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말하고 꿈꾸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은 사회 곳곳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마음껏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30대 이상 여성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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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의 기자회견에 최원영 간호사가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2년 전인 2017년, 간호사의 첫 월급이 불과 36만 원밖에 안 된다고 고발한 것도 최원영 간호사였다. 그 일 이후 병원은 신입 간호사를 대상으로 미지급 임금을 지급했다.

그보다 앞선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급제 권고지침을 내렸을 때, 성과급제가 왜 환자에게 좋지 않은 일인지 목소리를 낸 것도 최원영 간호사다. 고 박선욱 간호사 죽음 이후 '태움'(간호사 교육을 명분으로 괴롭히는 문화)이 이슈가 됐을 때 공동대책위를 꾸리고 간호사 노동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운영한 것도 그다. 스스로를 '이 구역의 미친년'이라고 지칭하는 최원영 간호사. 그를 만나고 싶었다. 

"애매하게 행동하느니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겠다"
       
- 간호사로서 간호 업계의 여러 이슈에 목소리를 내셨다. 어떤 조직에 속해서 활동하시나.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최원영이다. 지금은 쉬고 있는데, 대학 졸업 후 쭉 서울대병원에서 일했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 간호사 외에 스스로를 어떤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있나.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수영선수는 운동선수가 직업이고 수영이 종목인 것처럼, 나의 활동가로서의 종목은 보건의료인 거다." 

-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는 무슨 뜻인가.
"간호사 권익을 높이고 관련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망설이고 우물쭈물하면 오히려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다. 활동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간호업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고 나 자신에게 별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애매하게 행동하느니 잊히지 않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겠다." 
        
-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어떤 곳인가.
"정식 명칭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다. 간호사 권익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건강권이라는 큰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이 두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력을 확충해달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우리에게만 좋은 게 아니다. 자기가 덥다고 에어컨을 틀었어도, 결국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시원해지지 않나. 간호사 인력이 확충되면, 간호사 한 명이 환자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과 관심이 커진다. 의료의 질이 높아진다. 간호사 인력 수준이 높아지면 환자 사망률이 가파르게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제일 좋다는 병원에서도 중환자실 간호사 1명당 환자 2명을 본다. 일대일로 보는 캐나다와는 이미 두 배 차이다. 
  
최원영 간호사는 '태움'이 논란이 됐을 때 동료 간호사들과 '간호사이다'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간호 노동자로서 느끼는 업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이전 정권 때 시행된 병원 성과급제, 30만 원대에 머무는 간호사 첫 월급에 대해서도 SNS 및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메르스 병동에서 일하기로 자처한 것도 그녀다. 최근에는 노동조합에서 대의원을 맡기도 했다. 그녀가 언제부터 활동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는지 궁금했다.  

- 의료 공공기관 성과급제 이슈가 나왔을 때 SNS에 올린 글이 조회 수 몇천이 넘었다고 들었다.
"페이스북에 의견을 올렸는데, 그게 공유가 많이 됐다. 성과급제라는 게 그냥 들으면 좋아 보인다. 열심히 일 한 사람들 돈 더 주는 일. 공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성과라는 게 뭔가. 환자를 잘 치료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거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걸 측정하기가 어렵다. 환자마다 가진 질환이 다 다르고, 치료만으로 결과를 측정할 수는 없다. 

결국 돈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게 다 어디서 나오나. 환자 주머니다. 과잉진료를 하거나 환자에게 쓰는 비용을 아끼는 거다. 병원이 부대 사업을 진행해서 돈을 버는 것도 그렇다. 병원에 음식점이 들어오면 좋은 게 아니다. 병원은 원래 가장 깨끗해야 하는 곳이지만 병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병균이 많은 곳인 게 사실이다. 메르스 같은 질병이 돌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게 좋지 않다. 

성과급제를 잘 모르면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반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게 답답해서 SNS에 털어놓은 거다. 그 후로 노조 활동도 열심히 했다. 예전엔 노조에 가입만 했었지, 무서워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했다."

- 노조가 무서웠던 건가.
"간호사들은 튀는 행동을 하는 걸 무서워한다. 의료사고도 잦고 실수도 잦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치지 않더라도, 다칠 뻔하면 실수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그런 원칙을 다 따져서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 손 몇 번 안 씻은 걸 다 세서 괴롭힐 수도 있다. 병원 안에 서울대 출신과 그렇지 않은 출신을 나누는 분위기가 있는데 거기서 찍히는 게 두려웠던 것도 같다. 본교 모임이라면서 후배들 챙기는 문화가 좀 있다. 

또 관리자는 다 서울대 출신이지 않나. 노조에 가입하면 선배들한테 찍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찍히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보면 딱히 별일 없다. 불러서 손바닥 때릴 것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막상 이렇게 활동을 하고 보니 대견해 하거나 오히려 응원하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대신 좀 살살 하라고 한다(웃음)."

- 업계가 좁아서 겁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간호사들은 세상을 두루 경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고등학교 7학년쯤을 마치고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간호대학에 와서, 바로 그 대학에 딸린 병원에 왔다. 다양한 사람을 겪지 않는다. 

그러니 비교 대상이 없다. 짜인 스케줄대로 쭉 따라가다 보니 그게 이상한 줄 모른다. 처음에 출근할 때 31만 원을 받았는데, 억울하지 않고 좋았다. 첫 달에는 내가 하는 일도 별로 없고 교육 기간인데도 차비를 주네? 실제 내가 쓰는 차비보다 더 많네? 나는 차 안 타도 되는데. 이러면서 좋아했던 나 자신이 슬프다."

'백 없는' 사람들을 위한 효과적인 안전망
 
 최원영 간호사가 인터뷰한 다큐시리즈 스틸컷
 최원영 간호사가 인터뷰한 다큐시리즈 스틸컷
ⓒ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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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업계가 유달리 업무 환경이 고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의료 업계 자체가 고되다.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일이니 많은 부분들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몰라, 나 배고프니까 밥 먹으러 갈래' 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화를 내는 일도 좀 용인되는 사회인 것 같다. 누가 실수할 때 불같이 화를 내도 생명을 다루는 문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육체노동에서 가장 고된 일, 감정 노동에서 가장 고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으면서 감정노동까지 많이 하는 직업은 흔치 않은데 간호사는 그 두 가지의 평균점이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것 같다."

- 감정 노동이 많은가.
"환자를 대하는 일인데, 아픈 사람은 기본적으로 기분이 나쁘다. 인생에서 병에 걸린 게 얼마나 큰일이겠나. 내가 중환자실에서 일해서 그런지 러닝타임이 긴 슬픈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가족들이 우는 일을 계속 봐야 한다. 영화처럼 기적을 바랄 수도 없다. 나는 왜 매일 누군가 죽는 곳에 출근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싶지는 않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된 것도 있지만 직업에 덧씌워진 성차별적 프레임도 있을 것 같았다. 젊은 간호사를 무시한다거나, '아가씨'라고 부르거나 반말하는 일도 종종 보았다. 나이 든 간호사가 많지 않은 것도 의문이었다.

- 간호사를 향한 차별적 시선이 있지는 않나. 의사는 존대하고 간호사는 하대한다거나. 
"간호사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숙련도나 리스크에 비해 사회적으로 폄하되고 있다. 그러니 간호사한테 아가씨, 아가씨 하지 않겠나. 여자 간호사라서 차별을 받는 게 아니라 간호사라는 집단 자체가 차별을 받는 것 같다. 가끔 여기를 '난민촌'처럼 비유하곤 하는데, 모두가 텐트 안에 있어서 비슷한 처지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우리 텐트만 누룽지를 먹는 거다. 다른 텐트는 밥도 먹고 반찬도 먹는데."

- 여자라서가 아니라 직업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여자 의사한테도 하대하는 사람 많다. 의사라는 권위를 성별이 눌러 버리는 거다."

- 왜 나이 든 간호사는 많이 보이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경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는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가 5년이다. 23살에 졸업하고 5년이면 28살 정도다. 관리자가 있는 걸 생각하면 더 빨리 그만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다. 일 자체가 너무 고되다. 3년 동안 3교대로 일해 보면 안다. 이 일을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게다가 지금 버텨도 이 3교대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는 것도. 

간호사는 중간 계급이 없다. 근속연수 15년이 넘어 관리직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평간호사다. 60명 간호사가 있어도 그중 수간호사는 한 명이다. 책임간호사라는 비정형화된 자리가 있지만 정식으로 차장, 과장, 부장을 단 건 아니다."

- 그럼 다들 어디로 가나.
"간호 면허를 가진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간호사로 일하지 않는다. 제약회사나 보험회사,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에 가거나 보건교사가 된다. 때로는 구급대원이 되기도 한다."

-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텐트를 찢고 나와서 누룽지 말고 다른 거 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까. 
"방법은 많다. 노조가 간편하고 빠른 방법이다. 노조에 가입하는 걸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백 없는' 사람이 접근하기 좋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료를 모으고, 뭉치고, 덩어리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여성 최초 민주노총위원장이 되고 싶다는 야망
 
 남미 여행 중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 관련 '아산 병원 사과하라' 피켓을 든 최원영 간호사
 남미 여행 중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 관련 "아산 병원 사과하라" 피켓을 든 최원영 간호사
ⓒ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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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다 보니 간호 업계가 너무 힘들고 막막하게 들렸다. 기사가 나가면 간호사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최원영 간호사는 인터뷰 내내 씩씩했다. 이렇게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라면 후배들에게 직접적인 응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간호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간호사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많으니까 우울하고 두려울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 만만한 직업은 없는 것 같다. 현실은 비관적일 수 있지만 일에 대한 낙관이 필요한 것 같다. 부정적인 자기 예언을 하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릴 때 '역시 그랬어, 내 예상이 맞았어'라고 하기만 한다. 

간호사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은퇴하고 봉사 안 해도 천국 갈 거다. 우리 직업이 가진 장점 살리고 단점을 줄여나가면 되지 않을까. 나와 '미친년'과 '미친놈'이 돼서 싸우자."

-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해주실 말이 있을까.
"나는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에게 노력하면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속임수 같다. 혼자 고립되는 거다. 성공하는 상위 몇 프로가 되는 막연한 성공 신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열심히 한다고 백 대 일에서 이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너무 희생하지 말고 어차피 공정하지 않은 사회 판을 깨부술 파티원이 되면 좋겠다. 같이 미친년이 되자. 착한 여자는 천국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고 하는 말이 있다. 텐트 찢고 나와서 다른 텐트에 있는 걸 같이 먹자고 하면 좋겠다."

- 최원영 간호사의 야망은 무엇인가.
"농담으로는 최초의 여성 민주노총위원장이라고 한다. 왜냐면 민주노총 역사상 위원장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제도를 바꾸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환자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되면 좋겠고, 환자들과 후배 간호사들이 제가 겪어온 일들을 겪지 않게 되면 좋겠다."
  
최원영 간호사를 만난 곳은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카페였다.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연트럴파크(연남동과 센트럴파크의 합성어)를 지나야 했다. 연트럴파크는 양쪽으로 작은 소로를 끼고 있는 소규모 잔디밭인데, 늘 사람이 꽉 들어차 있다. 언제부터 저 잔디에 앉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됐지? 

아마 처음에 누군가, 다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잔디에 돗자리를 펴기 시작했으리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잔디에 앉으면서, 이제는 연트럴파크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 연트럴파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주말마다 버스킹이 있는 문화공간이 됐다(소음, 음주 문제는 아직 해결 중인 것으로 안다). 그래도 처음 그 자리에 앉기 시작했던 사람에겐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리라. 

최원영 간호사가 간호 업계의 부조리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부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돗자리 까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공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 그 자리에 서 있어도, 누군가 그 곁에 가서 서는 것에 도움이 된다. 최원영 간호사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니 우리가 곁에 가서 서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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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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