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좀비 차일드>는 독특한 판타지 영화다. 아프리카 주술 문화와 장례문화, 음악 등 이색적인 문화를 경험하는 창(窓)이다. 1970년, 1980년의 아이티, 현재의 프랑스와 아이티를 비추면서 과거와 현재, 가족과 정체성, 백인과 흑인의 관계를 주목한다. 영화는 1970년대 좀비가 된 아이티 남성과 현재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손녀에 대한 이야기다.

1972년 아이티 한 남자가 부두교 주술에 걸려 비명횡사했고 가족들은 남자의 시체를 묻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체를 꺼내 좀비로 만들었다. 다시 깨어난 남자는 좀비 무리들과 섞여 사탕수수 노예로 부려진다. 느리고 마른 몸, 몽유병 환자처럼 휘청거리며 사탕수수를 베는 모습이 무섭기보다는 슬프다. 그는 자기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밤낮으로 사탕수수만 벤다.

아이티 좀비는 주술로 움직이는 언데드(Undead) 상태다. 즉, 되살아난 시체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데려와 커피나 사탕수수밭의 노예로 부렸다. 서양인의 자본과 기술로 열대 날씨와 강도 높은 노동에 견딜 수 있는 원주민이나 노예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플랜테이션은 좀비화 된 노역자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한편 현재 프랑스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기숙사의 소녀들은 매일이 따분하다. '파니'는 최근 아이티에서 온 '멜리사'를 눈여겨보고 비밀 클럽의 일원으로 받아주려 한다. 단 조건이 있다. 만장일치를 이끌어 낼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멜리샤는 '들어라 백인들아'라고 시작하는 시를 읊어 통과된다. 마치 백인들의 횡포를 고발한 흑인의 한 맺힌 절규 같다.

열일곱 멜리사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최근 이모와 프랑스로 왔다. 밤마다 이상한 주문 같은 소리를 내고, 음악도 없이 춤을 추기도 한다. 게다가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좀비를 만들 수 있는 부두교의 나라에서 왔다. 소녀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한 멜리사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특히 파니는 슬픈 멜리사의 가족사에 단번에 매료되어 버린다.

이모는 멜리사가 역사와 정체성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라 해도 좋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독려한다. 예쁘고 젊은 너를 세상에 표현하라고 말이다. 이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 세리머니를 준비 중이다. 백인들의 식민주의로 좀비가 된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사뿐만 아닌, 아이티 전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세계사적 문제다. 하지만 연인과의 상황이 좋지 못한 '파니'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영화 <좀비 차일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좀비 차일드>는 식민화에 대한 프랑스 감독의 심도 있는 고찰이 돋보인다. 아이티는 잦은 독재와 프랑스 배상금 등의 이유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북중미 유일의 프랑스령 식민지였기에 대부분이 불어를 쓰며 아프리카 노예였던 흑인이다. 종교는 카톨릭교와 부두교이다. 우리에게는 2010년 대지진으로 알려진 나라이자 '좀비' 장르의 탄생지기도 하다. 멍한 눈빛으로 피와 살점을 갈구하는 잔혹무도한 할리우드좀비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슬프고 아픈 역사가 좀비와 얽혀 있다.

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천천히 들여다봄으로써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도 비단 다르지 않음을 직시하고 있다. 영화 말미에 1990년대부터 좀비 의식이 진행 중이며 그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뭉스러운 자막이 뜬다.

영화는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관계를 공포라는 소재와 접목한다. 틴에이저 무비와 아이티 문화의 교차라는 독특함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좀비 의식은 뒤틀린 식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아이티와 프랑스의 생소한 문화에서 현 자본주의를 노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도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된 거대 자본 시스템의 일환처럼 끼워 맞춰진 우리들의 초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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