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직에 있는 자가 공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비용, 업무추진비. 정부가 업무추진비 공개를 권고하면서 의회와 자치단체 중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월별로 공개하는 곳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사용 시간, 사용처 등이 자료에 빠져 있고 사용내역마저도 추상적이라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충북인뉴스> 기획탐사팀은 2019년 하반기 동안 충청북도와 11개 시·군 자치단체, 의회까지 총 24개 기관의 업무추진비를 정보공개 청구해 분석했다. 이어서 지난 9월, 구글 매핑(mapping) 서비스를 이용해 어느 식당에서 업무추진비가 많이 쓰였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털어드립니다, 업무추진비' 1부 충청북도 세금맛집지도를 제작했다.
세금맛집지도를 열람한 횟수는 총 21,977건(2019년 11월 27일 기준)에 달했다. 투명하지 못한 업무추진비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펴본 자료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된 경우, 전체 군비로 범위를 확장해 추가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지난 10월에야 모든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업무추진비 분석 결과를 토대로 오·남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보도한다.
김재종 옥천군수는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에 <명가>라는 복합 단지를 조성해 △명가 샤브마을 △유한회사 명가 △명가하우스웨딩 △보나페티 △명가 등 요식업 및 숙박업을 운영해 왔다.
<충북인뉴스> 기획탐사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년 4개월 만에 <명가>에서 쓰인 군비가 3천 9백 여 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옥천군은 <명가>에서 왜 이렇게 많은 군비를 지출했을까. 군비 사용 내역과 방법 그리고 옥천군수와 <명가>의 관계에 대해 집중 조명해 봤다.
김재종 옥천군수 취임(2018년 7월) 이후 올해 10월 25일까지, 김 군수 가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옥천군 군비 4천만 원 가량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옥천군은 간담회·퇴임식·직원 회식 등 각종 행사를 군수 장녀 명의의 음식점에서 개최했다. 그 중 김 군수가 직접 사용한 금액만도 1천2백50여만 원에 달한다. 그간 공직자 가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업무추진비 등을 집중 사용해 문제된 사례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규모다.
같은 기간 다른 군수들이 쓴 업무추진비와 비교해 보면 집중 결제가 이뤄졌단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김 군수가 딸 명의 음식점에서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약 500만 원이다. 같은 기간 도내 음성, 진천 등 다른 군 단위 자치단체장들이 음식점 한 곳에서 사용한 금액은 많아야 3백 만 원 대를 넘지 않았다.
<명가>는 원래 김 군수가 운영하던 음식점이었다. 현재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올라 온 김 군수의 경력사항을 보면 '명가하우스웨딩홀 대표'(1993~) 약력이 그대로 걸려 있다. 군수는 현행 규정상 겸직이 불가하기 때문에, 지금은 딸이 <명가>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가>는 지역 내에서도 메뉴 가격대가 비교적 고가인 업소로 평가받는다.
옥천군청과 김 군수 측은 대규모 행사는 웨딩홀 연회장에서, 비교적 인원이 적은 모임은 한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개최해 왔다. <명가> 입장에서 옥천군수와 군청은 가성비가 상당히 좋은 고객이다. 행사 1인당 식대가 3만 원대 전후임에도 불구하고, 인원수 많은 행사는 모두 <명가>로 몰리기 때문이다. 사실상 <명가>가 옥천군 주최의 대형 행사를 독점하고 있다.
큰 행사는 군수님 식당서… 그렇게 지출된 군비만 '4천 만 원'
2019년 6월 26일 있었던 옥천군청 보건행정과 직원 퇴임식에 군수도 참석했다. 해당 부서는 이 행사비로 <명가>에서 240만 원을 지출했다. 보건행정과는 지난해 연말에도 <명가>에서 송년회를 개최했다. 당시에도 81명이 참석했고, 236만 원 상당이 결제됐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이 부서 직원 간담회도 <명가>에서 열렸다. 당시에는 76명이 참석해 104만 원이 지출됐고, 모두 김재종 군수의 업무추진비에서 결제됐다. 군청 내 특정 부서가 7개월 사이 직원 행사를 세 차례 가지면서 <명가>에 치른 금액만 600만 원에 달한다.
내부 행사뿐 아니라, 수십 명의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도 대부분 <명가>에서 이뤄졌다. 옥천군청 자치행정과는 2018년 8월 '일본 고노헤마치 중학생 방문단 만찬'(42명 참석, 약 154만 원 지출)과 2019년 4월 '옥천군-부천시 공무원 야구동호회 친선교류'(20명 참석, 약 70만 원 지출) 등 이례적인 행사도 모두 명가에서 치렀다. 옥천군통합방위협의회 위원들이 분기별 협의회를 마치고 가진 식사 자리도 1·2·3분기 전부 다 <명가>에서 있었다. 건 당 최소 20만 원에서 최대 36만 원의 군비가 지출됐다.
"(군수되기 전에는) 당시 군수가 나랑 (군수 선거에서) 경쟁했던 사람이니 사람들이 <명가>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어요. 공직자들이 우리 집(식당)을 찾는 건 1년에 5~6건도 안 됐죠. 빈도가 아무래도 전보다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아침 조회 시간에 우리 공직자들한테 그래요. '내가 군수라고 해서 내가 하던 업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자제해 달라고요."
- 김재종 옥천군수 2019년 11월 22일(금) 인터뷰
<명가>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에 대한 김 군수의 입장은 이렇다. 군수가 운영했던 음식점인 만큼 자연스럽게 <명가>로 걸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김 군수 본인이 임기 시작 후 약 1년 4개월 간, 29차례에 걸쳐 직접 쓴 업무추진비만도 1천 2백 50여 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미뤄 봤을 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딸 식당서 하루 두 번 모임… '명가' 군비 지출내역엔 '꼼수결제' 정황도
김 군수와 옥천군청이 <명가>에서 군비를 지출하는 과정에서 '꼼수 결제' 정황도 일부 포착됐다.
2019년 1월 15일, 김재종 군수는 <명가>에서 하루를 보냈다. 점심에는 주민자치협의회와, 저녁에는 유관기관 단체장과의 모임을 이곳에서 했다. <명가>에서 일주일 동안 세 차례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흔적(2019년 1월 15일 2회, 1월 17일 1회)과 하루 걸러 방문한 기록(2018년 10월 13일, 10월 15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명가>에서 지출된 군비를 적게 쓴 것처럼 보이기 위한 '꼼수 결제' 정황도 보인다. 2019년 3월 지출된 두 건의 내역은 사용 시간, 참석 인원, 사용 금액이 모두 같았다. 그러나 집행 유형과 목적에 쓰인 단어들은 조금씩 달라, 마치 다른 결제 내용처럼 혼동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옥천군청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이장단은 30명이다. 금액을 적게 기록하기 위해 같은 사람들이 지출한 비용을 두 차례 나눠서 계산하는 이른바 '쪼개기 결제'로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6월 26일 결제 내역도 마찬가지다. 보건행정학과가 결제한 두 건의 내역을 보면 지출 대상이 '건강관리과장 외 19명', '보건소장 외 59명'이다. 각각 지출액은 60만 원, 180만 원으로 달랐으나 집행목적(단합대회 및 퇴직자 공로패 수여식)이 같았고, 결제 시간(20시 30분·31분)은 불과 1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80명의 보건행정과 직원이 240만 원의 행사 비용을 두 차례에 걸쳐 결제했다고 추정된다.
또한 김 군수가 <명가>에서 결제한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살펴보니 49만 8천 5백 원, 49만 8천 원 등 50만 원 근사치에서 끊어 결제한 기록이 수차례 보였다. '공무원이 업무추진비를 건 당 50만 원 이상 집행 시 주된 상대방의 소속 및 성명을 증빙서류에 반드시 기재'하라는 기획재정부의 지침이 있다.
이 때문에 김 군수가 동석자의 신원을 밝히는 걸 피하기 위한 '꼼수 결제'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50만 원 이상 금액을 반으로 나눠 두 번 결제하거나, 인위적으로 50만 원 근사치에 금액을 맞추는 등 공직자들의 업무추진비 부적절 유용 행태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된 바 있다.
2019년 4월 9일 <명가>에서 열린 '옥천군-부천시 공무원 야구동호회 친선교류' 행사에는 부천시 공무원 20명을 대상으로 70만 원의 접대비가 지출됐다. 1인당 3만 5천 원이 집행된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해석과는 청탁금지법 취지에 맞춰, 간담회 등의 식사비를 1인당 3만원 이내로 집행하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 정책과 지침이 정한 합리적 기준보다 과한 금액이 <명가>에서 쓰이고 있다.
자영업자 다 죽는데… 군수 지위 이용한 영업 문제 없나?
2019년 6월 26일 저녁 6시 반, 김 군수는 <명가> 대형홀에서 열린 옥천군보건소 직원 퇴임식에 참석해 공로패를 수여했다. 마이크를 잡고 축하 인사를 건내던 김 군수는 몇 십 분 후 옥천로타리클럽 회장·이취임식을 위해 <명가> 내 다른 홀로 자리를 옮겼다. 마찬가지로 군수는 인사말씀을 청중에게 전했다. 옥천군수 동정을 살펴보면, 유독 김 군수의 일정 장소가 <명가>인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군수 지위가 <명가> 이용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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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종 옥천군수가 딸 소유 음식점인 '명가'에서 개최된 군청 및 민관 행사에 참여한 모습 ⓒ옥천군청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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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종 충북 옥천군수는 26일 오후 6시 30분 옥천읍 명가에서 진행되는 옥천군보건소 퇴임식에 참석하고 오후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옥천로타리클럽 제42·43대 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한다. -<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 기자 /2019년 6월 25일 기사
<충북인뉴스> 기획탐사팀은 실제 <명가>에서 사용된 옥천군 군비가 4천 만 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취재진이 분석한 지출 내역은 옥천군청이 사용한 것만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군수가 당연직으로 회장을 맡아 온 옥천군체육회처럼 보조금을 지원받아 군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민·관 기관과 단체들은 제외한 액수다.
"눈도장 찍어야죠. 사회단체나 기관이나 봉사단체나 모든 곳이 그쪽(김재종 군수)으로 줄을 서니까. 눈도장도 찍어야 하고, 줄도 서야 하고… 군수님 본인 사업장이니까 거기 방문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작년에 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어요. (공직자들이) <명가> 예약 일정 비어 있는 시간에 맞춰서 식당을 가더라고요." - 옥천군 의회 소속 A 군의원
실제 옥천군체육회가 충북도민체육대회(이하 도민체전)에 참가한 옥천군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한 해단식 장소를 <명가>로 잡은 것을 보면, 군수의 존재가 음식점 영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도민체전 옥천군 선수단 해단식은 2014년부터 3년간 옥천의 다른 연회장이나 식당에서 개최됐으나, 김 군수 임기 시작 이후인 지난해와 올해 모두 <명가>에서 열렸다. 이와 관련해 취재진이 추가 질의를 하고자 옥천군청에 연락했으나 "서류를 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즉답을 피했고, "곧 연락하겠다"던 옥천군 체육회도 회신이 없었다.
옥천군 소재 음식점은 모두 840여 곳.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옥천에서 <명가>로 대형 행사들이 몰리는 바람에 지역 경제가 입는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명가>에서 집행된 군비는 모두 군민의 세금이다. A 군의원은 "이건 군수님 본인 의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며 "옥천에 소상공인들이 너무 힘드니 살리자고 말하면서 앞에서 일머리 잡고 끌고 가는 분이 말로만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