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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4월 8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1975년 4월 8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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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중단의 날적이(일기의 순우리말)를 8000일로 채워가는 날입니다. 18년 전 이맘때쯤의 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생이던 저는 적지 않은 상금을 수중에 넣으려고 사형을 주제로 삼은 논문을 써서 투고했습니다. 당시에는 솔직히 저도 여느 평범한 시민의식이 그러하듯 형벌은 모름지기 저지른 죄에 응당한 되갚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충실했던 터라 형벌의 목적은 국가가 범죄의 피해자를 대신하는 공적 복수의 실현이라는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형을 지지하는 쪽에서 즐겨 제시하는 논거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입니다. 간명하게 말하자면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정서가 사형이 형벌로 존속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므로 사형을 감히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깨우치게 된 사실은 법감정이라는 것의 실체는 불분명하고 여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각색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맹목에 가깝게 형성된 허구라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을 뿐더러 불분명한 감정에 기대어 사형을 요구하는 것은 사형을 유지해야 하는 마땅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국민 67.9%가 알고 있다고 하는 사형제도
 
 윤봉길 의사 순국하시기 전, 목재 십자가 사형대에 묶여있는 모습
 윤봉길 의사 순국하시기 전, 목재 십자가 사형대에 묶여있는 모습
ⓒ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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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 및 대체 형벌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조사의 일환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국민 1000명 가운데 67.9%가 사형이라는 형벌을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말한다면 우리 국민은 사형이 생명을 단절하는 형벌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 실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사형이 얼마나 선고됐으며, 몇 명이 사형당했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물론 잠정적이지만 최소 923명에서 최대 1310명에 이르기까지 집계 방식이나 통계를 생산한 주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수치를 나타내는 결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 확정자를 집행한 내용은 다른 어떤 통계보다도 엄격하고 정확한 것이라야 합니다. 인간 존엄의 바탕이 곧 그 존재적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에 있기에 국가가 생명을 단절하는 형벌을 선택해 부과한 것이라면 그 결과에는 단 한 명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와 독재가 전횡하던 정권에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이에 관하여 그 어떤 경로로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을까요?

대다수 국민은 사형으로 흉악한 범죄자를 성실하게 단죄해 왔다는 국가가 제시하는 그릇된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인류 사회에서 사형은 패륜적인 흉악범죄자를 건강한 시민들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반대자와 그 세력을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방책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조선의 국왕 가운데 순조는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917명의 백성을 국법을 바로 세운다는 미명 아래 사형의 형식을 빌려 참살하였고, 고종은 '병인박해' 기간 천주교를 믿는 백성들을 무려 8000여 명이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좀더 가까운 일제 강점 초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활동을 했던 이 땅의 수많은 우국지사들 또한 '적도처단례'라는 무시무시한 봉건적 법률의 표적이 되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제주와 여수 그리고 순천에서의 사형집행, 급조한 악법에 따라 이루어진 한국전쟁 시기의 숱한 사형 집행 또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이념적 반대세력에게 억울한 누명을 덧씌워 죽이는 사법살인 내지는 사법학살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 약 200여 년의 기간만을 따져 보더라도 예상과 달리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사형보다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자에 대한 사형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사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67.9%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악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를 구분하여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던 한국전쟁 기간, 당시 정권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라는 대통령긴급조치를 급조하여 적을 돕는 이적행위를 한 부역자를 가려내 사형으로 말살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UN 소속 영국군 주둔지 인근에서는 부역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단심 재판에 의해 평상시라면 5년의 유기징역도 부과되지 않았을 범죄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가 빚어낸 일이었고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반인권적인 법령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법령은 1960년까지 존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만, 1975년 5월 유신체제 아래에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 후 권위주의 정권이 극에 달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올 때까지 이 법령은 야수의 이빨을 숨긴 채 생명력을 이어왔고, 1989년 6월 '전시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으로 다시 이름을 바꾼 뒤 1990년대 문민정부에서부터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시대기법령'으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휴면상태로 있겠지만, 만에 하나 전쟁을 비롯한 국가위기 상황에는 다시금 긴 잠에서 깨어나 단심 재판에 의한 사형 선고와 집행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어왔던 형법을 비롯한 형벌 규범에는 흉악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할 뿐이라는 신뢰는 전혀 온당치 않는 일입니다. 사형집행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는 온건한 태도 역시 사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빚어진 오해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집행관(헌병 간부)들이 총살 집행 후에도 숨이 붙어 있는 일부 사형수를 찾아 권총으로 근접 확인 사살하고 있다.
 집행관(헌병 간부)들이 총살 집행 후에도 숨이 붙어 있는 일부 사형수를 찾아 권총으로 근접 확인 사살하고 있다.
ⓒ NARA/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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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사형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25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형법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학자로도 유명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에서 사형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형 유지와 폐지의 입장은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지지자는 응보필벌의 복수가 곧 정의의 실현이며 부수적으로 범죄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반대자는 오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사형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회복 불가능성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제대로 형성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사적 복수가 널리 허용되었고 따라서 나와 나의 가족, 나아가 내가 소속된 집단에 가해지는 부당한 공격과 침해에는 복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습니다.

국가체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인이 일어나더라도 국가는 그것을 개인 간의 분쟁으로 간주하여 가급적이면 국가형벌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지만 굴복하지 않는 적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국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식량을 비롯한 한정된 자원을 적에게까지 분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적의 목숨을 단번에 끊는 것이었고, 이러한 조치는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이 일상화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자신의 신민으로 복속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가가 가지게 되면서, 달리 표현하자면 국가의 통제력 안에 이들을 관리하고 교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되자 감옥이라는 감금시설을 고안하게 됩니다. 범죄자 역시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는 적으로 간주되었기에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계몽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나게 되는 사형의 완화와 폐지의 추세는 국가가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그 통제력 또는 통치 시스템 안에서 규제하고 단속할 수 있다는 검증된 믿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형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국가 논리의 핵심에는 외관상으로 국민적 여론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 본질은 그만큼 해당 국가의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사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대체로 국민을 그의 통제력 안에 둘 수 없음을 자인하거나, 국가의 정치체계가 불안정하거나 민주적이지 아니한 경우들이 대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벌의 외관, 그러나 형벌이 아닌

사형 지지자의 핵심 논거인 복수의 속성은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적인 보복 욕구의 충족 이외에 정의를 비롯한 어떤 다른 가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정확히 셀 수조차 없는 사형집행 가운데 이른바 반인륜적인 생명 침해 범죄자들에 대한 집행이 있었고, 지금도 60명의 사형확정자가 생존해 있지만, 국가는 이들을 교수대에 세우거나 세울 것을 경고하는 위협 이외에 이들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유족들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형 집행을 통해 유사한 범죄의 발생을 미연에 예방한다는 목적이라는 것도 과거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때마다 일상적으로 관용어처럼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러나 존엄한 인간은, 그가 사형확정자라고 하더라도, 단언하건대 목적 그 자체이지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우하는 그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심각한 인간 존엄 말살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형벌의 목적은 단순한 보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에 있습니다.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올바른 전제는 진정 어린 반성과 용서와 화해에 있지만,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문명사회의 형벌이 감당해야 할 절반의 기능조차 제대로 다 하지 못하는 형벌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형의 치명적 결함: 되돌릴 수 없는 오판의 결과

사형의 가장 큰 폐해를 꼽는다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실수에 의하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판단의 오류인 오판을 회피할 수 없으며,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매년 사형을 일정하게 집행해 오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나타나는 오판 문제가 확실한 정보와 통계적 근거를 토대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의 오판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판사로 재직했던 이찬형이라는 분은 독립투사에게 어쩔 수 없이 사형선고를 한 후 법복을 벗고 출가하여 평생을 불가에 귀의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법관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오판을 진솔하게 고백한 사례가 없습니다.

2003년 10월 이루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113명의 판사들 가운데 69.9%가 오판에 의한 사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합니다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과오가 있었음을 인정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우리 법관들의 자질이 다른 나라의 법관보다 뛰어나고 전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오판에 의한 사형은 결코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지난해 사형확정자 61명의 판결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형집행이 아니라 병사 또는 자살하여 사라진 사형 확정자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 시종일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수사 과정에서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제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죄가 의심되는 사정은 남겨진 판결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사형 폐지를 운운할 수 있느냐고 강변합니다. 그렇다면 그 질문에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그 무고함의 신원(伸冤)은 누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출발점
 
 지난 11월30일 세계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한 Cities for Life조명퍼포먼스
 지난 2017년 11월30일 세계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한 Cities for Life 조명 퍼포먼스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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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후보 시절 사형제도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은 폐지에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 2월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9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에 사형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며, 지난 10월 10일 20대 국회에서도 여덟 번째로 사형폐지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공약과 헌법재판의 진행, 입법기관의 법안 제출이라는 일련의 과정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사형폐지로 나아가는 길이 평탄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헌법재판의 결과, 그리고 법안 실정화의 문제는 결국 국민의 정서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귀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사형은 국가형벌권의 목록에서 반드시 최상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는 형벌이라는 관념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형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말하기 이전에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의와 역할과 기능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하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우리가 논쟁하고자 하는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서 그 당부를 말하는 것은 올바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사형의 존속을 지지하거나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는 사형이 어떠한 형벌이었으며 어떠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자문하는 것으로부터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이덕인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경찰경호학과 교수입니다.
- 이 글은 38회 인권주일 자료집 <교회와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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