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0 09:07최종 업데이트 19.12.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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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일대에 눈이 내려 신호 대기를 하던 라이더들이 눈을 맞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청과 고용노동부가 12월 1일부터 오토바이 교통 위반 집중단속에 나선다. 암행 단속은 물론, 국민들이 언제든지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 국민제보' 앱에 이륜차 신고 항목을 별도로 신설한다.

배달로 먹고사는 라이더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나에게도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나는 경찰 단속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 조합원들 중에도 경찰 단속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다만 빠른 배달을 강요하는 배달업체들을 단속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라이더만 잡겠다고 나서니 황당할 따름이다. 그렇게 하려면 고용기업부로 이름을 바꾸는 게 낫겠다.

나는 오히려 정부에 역제안을 하고 싶다. 이번 기회에 경찰청, 고용노동부뿐만 아니라 국토부와 공정거래위까지 끼워서 배달업계 전체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단속했으면 한다.

이륜차 전용주차장 없는 배달음식점 영업을 정지시켜보자

오토바이는 자동차이기 때문에 인도에 주차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도로에 세우면 불법 주정차로 걸린다. 주차장에 세워야 하는데, 주차장은 오토바이를 안 받아준다. 일명 '포켓 주차장'이라고 불리는 이륜차 전용 주차장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시민들 중에 이륜차 전용 주차장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울시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약 45만 대, 이륜차 전용 주차장은 46개, 수용 가능 대수는 797대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음식전문배달업체 앞에 있는 오토바이는 모두 불법이다. 불법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법을 지시하는 이들 음식점들의 영업을 중단시키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게 라이더들을 하나하나 잡는 것보다 효과적이지 않겠나.

배달용 오토바이에 부착된 배달통과 핸드폰 거치대도 사실 모두 불법부착물이다. 당연히 "맛있는 통닭이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배민라이더스의 오토바이도 불법이다. 암행 단속은 할 필요도 없이 동네에 오토바이가 세워져있는 부릉, 바로고, 요기요플러스, 생각대로 등의 배달대행 사무실을 찾아가서 벌금을 매기면 된다. 맥도날드, 교촌치킨 등 배달 전문 회사도 마찬가지다. 불법을 대놓고 하고 있는 이들 업체에 제재를 가하면 라이더를 단속할 필요도 없다.

손님들도 불법을 요구하면 안 된다. 손님들은 이륜차 전용 주차장이 없는 가게에 배달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배달통이 없으니 도저히 들고 갈 수 없는 피자를 주문하면 안 되고, 배달통 밖에서 바람을 맞아 음식이 식어도 불평하면 안 된다. 핸드폰 거치대가 없으니 핸드폰 배터리가 다되면 라이더들도 쉬어야 한다. 빠른 배달은 불가능하다.

번쩍 배달, 로켓배송, 30분 배달제도 단속할거죠?
 

쿠팡 로켓배송 ⓒ 쿠팡

 
이쯤 되면, 신호위반 같은 게 문제지 위의 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 아니냐고 따질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근데 요즘 택시에는 배달의 민족 광고 '번쩍 배달'이 부착되어 있다. 쿠팡의 로켓보다 빠른 번개 배달이다. 번쩍 배달 광고를 부착한 택시가 오토바이가 빨리 간다고 빵빵거리는 상황에 직면하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이더가 사용하는 쿠팡이츠 앱 화면에는 오른쪽 상당에 고객과의 '약속시간'이 떠서 시간을 카운트한다. 라이더들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배달시간을 보면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다른 배달대행사들도 음식가게에서 음식을 픽업하는 시간 15분, 손님에게 전달하는 시간 15분을 기본으로 정하고 있다. 시간제한이 없어도 음식점에서 왜 아직도 배달을 안 했냐고 전화가 오기도 하고, 손님들이 라이더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서 '왜 길을 돌아서 왔니, 왜 이렇게 늦었니' 컴플레인을 건다.

고용노동부는 당연히도 이 모든 것을 금지하고, 라이더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앱도 개발하고, 몰래 배달을 시켜서 암행 단속도 할 거라 믿는다. 라이더유니온이 밝혀낸, 배달업체의 위장도급, 산재 미가입 및 산재 거부, 불공정거래 행위 등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대적인 단속을 하길 기대한다.

국가와 우리 사회에 보내는 청구서

라이더들은 그동안 음식 가게, 배달 업체, 국가, 손님이 지불했어야 할 비용을 자신들이 떠안으면서 일했다. 오토바이도 스스로 마련하고 불법 주정차에 대한 위험도, 사고에 대한 책임도 홀로 책임지면서 음식 가게와 배달 업체의 비용을 줄여주었다.

내가 지난 3년간 손님이 늦게 온다고 다그쳐서 신호 위반하고 배달을 하다가 경찰에게 잡혀서 납부한 금액만 12만 원 정도다. 배달업체와 음식점 시민들의 갑질을 정부가 방치해서 생긴 피해들도 모두 홀로 감당했다. '양아치'라는 시민들의 욕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경찰의 단속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누구보다도 법대로 배달을 하고 싶다. 대신 라이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해주기를 바란다. 신호를 지키고 전용주차장에 주차를 한 다음에 걸어서 음식을 배달하려면 적어도 30분은 걸린다. 지금까지는 이 배달 1개에 소비자와 음식 가게가 공동으로 3500원에서 4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여기서 라이더에게 2500원에서 3000원, 나머지 500원에서 1000원을 배달 플랫폼사와 배달대행업체가 나눠 먹었다.

완벽하게 법 지키면서 배달하려면 1시간에 2개 정도이니, 라이더가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 1만30원과 비슷하게 벌려면 배달 1개당 6000원 이상은 줘야 한다. 기름값과 보험료를 빼면, 최저임금보다도 모자란다. 라이더들의 난폭운전과 신호위반은 그동안 지불하지 않은 사람값의 결과일 뿐이다.

정부가 이번 단속을 하면서 라이더는 쏙 빼놓고 배달 업체만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만약 라이더들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면 좀더 건설적인 제안을 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물론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라이더들도 싫어하는 불법튜닝(일명 마후라 개조)과 역주행부터 집중단속하고, 업계의 무리한 업무지시와 낮은 배달 단가, 정부의 이륜차와 배달산업 방치문제 등을 함께 해결했다면 라이더들의 지지와 동의 속에서 배달업 자체를 개선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 유튜브 프로그램 '워크맨'에서 장성규가 라이더들의 출입이 어려운 메세나폴리스에서 힘겹게 배달하는 모습이 공개되어 손님 갑질 논란이 있었다. 과거 화물용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라이더유니온과 갈등을 빚었던 아파트다. 그런데 논란이 일자 워크맨은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고 영상을 다시 올렸다.
 

메세나폴리스 주민으로부터 배달 주문을 받고 어려움을 겪은 장성규씨 ⓒ 워크맨

 
그 건물에서 배달 일을 하는 나로서는 워크맨의 대응이 아쉽다. 초보일 때 나 역시 메세나폴리스에 몇 번씩 갇혔다. 손님이 입구를 찾을 수 있도록 메모 한 줄 남겨주거나, 업체에서 교육을 해주면 될 일이었다. 겨우겨우 손님을 찾아 전달했는데 다음 배달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책임을 눈앞에 보이는 만만한 상대에게 전가하는 건 쉽다. 힘없는 사람을 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륜차 단속뿐만 아니라 배달업계와 배달문화 전반을 점검해봐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민갑용 경찰청장,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라이더유니온과 함께 이 문제 해법을 위해 만나보자. 정부는 라이더에게 딱지를 끊겠다고 하지만, 라이더 역시 정부에게 보내지 못한 청구서가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라이더들을 너무 싼값에 부려먹었다. 이제 미루어놓았던 정산을 해볼 때다.
덧붙이는 글 박정훈 기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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