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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섬'을 걷듯, 걷는 인생길

내가 살던 제주는..
19.12.06 17:3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새섬'을 걷듯, 걷는 인생길
 
어제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섰다. 그런데, 깜깜한 저녁이 되어서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겨우 도착했다. 보통 제주-부산 간 실제 비행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되지만, 부산집에서 김해공항까지 그리고 다시 제주공항에서 동생네까지의 이동시간을 더하면 세 시간이 넘게 걸리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긴 여정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제주도에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비행기 삯이 제일 싼 수요일로 날짜를 맞추고 매달 어린이집 육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날짜 개수를 넘길 일정을 맞춘다. 다행스럽게도 동생네가 민박을 하고 있어서 숙소문제는 다른 제주 여행객들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그래도 이렇게 막상 나서면 금방인데 이사를 나오면서 했던 인사말로 봄이 되면 놀러 오겠다던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겨울을 목전에 둔 지금 제주 땅을 다시 밟을 때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동생네 현관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현관에 놓인'파치'박스다. 색깔이 안 예뻐서, 모양이 울퉁불퉁해서, 수확 중에 가위에 찔려서, 배고픈 새가 맛을 봐서,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상품이 되지 못한 못난이 귤이나 황금향을 제주에서는 '파치'라고 부르는데, 오며 가며 손이 가는 대로 언제든 까먹으라고 담아두는 곳이 많다. '파치'를 담아놓은 박스를 따로 마련해 두는 것은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제주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어떤 과일이 유명한 농촌 지역이라고 해도 파치 박스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맛보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파치 나눔은 기껏해야 친한 이웃이나 친인척들에게 보내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제주에 살면서 귤을 사 먹는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말도 있다. 귤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지 않아도 집집마다 마당에 식구끼리 나눠 먹을 용도로 심은 귤나무를 찾기 쉽다. 너나없이 이 집 저 집 귤을 까먹으며 모여 앉으면 누구네 집 귤이 맛있다는 평가가 오가는 시식회로 바뀐다. 제주만의 계절인 귤철, 겨울이 되면 꼭 과일가게뿐만 아니라 맛보기용 귤들을 쌓아둔 가게들이 한 집 걸러 한 집이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깊게 자지 못했으나 일찍 잠을 깬 데는 이유가 있다. "호로로롱 삐~ 삐~" 하고 새벽 잠결에 들리는 새소리 때문이었다.낮아졌다가 다시 높아지고, 느려지는 듯 하다가 다시 빨라지는 갖가지 새들의 지저귐을 알람 대신 듣고 일어나니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면 새소리를 듣고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하는 것은 내가 임신 기간에 했던 유일한 태교법이다. 그림같이 가만히 앉아서 십자수를 놓거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얌전한 태교는 성격에 맞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는 낮은 현무암 돌담을, 그 낮은 돌담이 끝나면 이어지는 방풍림 삼나무 길을, 풀향기와 귤꽃향기를 맡으며 다니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임신 초기부터 5년을 살았던 제주살이를 끝내고 작년 연말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밥 먹듯 누릴 수 있는 일상이 아니다. 1년 만에 다시 제주에 와서 예전 다녔던 길을 이제는 6살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침 산책을 할 생각을 하니 설레서 잠이 홀딱 달아나버리는 듯하다.
"잠바 입고 엄마랑 같이 바다 보러 나갈래?"
"나도 갈래."
 
밤사이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아이는 말 한마디에 선뜻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야옹~ "
현관문을 여니 마당에서 키우는 노란 고양이가 아침 인사를 했다. 소위 집사가 아닌데도 다가와 내 다리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몸으로 비비다가 다시 자기 밥그릇이 있는 자리로 유유히 걸어가는 고양이를 아이와 함께 몇 걸음 따라가 구경했다. 어젯밤에 마당에 들어서다 백구랑 인사하던 나를 어느 돌담 구석에서 지켜보고 한 집 식구로 인정해주었나 보다. 앞마당 화단에 여기저기 핀 꽃들을 구경했다. 동생네가 오일장에서 사서 심었던 나무들이 아직도 잘 자라고 있는지 훑어보았다. 아이가 이 시간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 전해지도록 손을 꼭 잡았다.
 
대문이 없는 마당 입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일주도로까지 쭉 뻗은 골목길 전체가 보였다. 아직은 새벽이라 저 멀리 보이는 일주도로에 오가는 차가 뜸했다. 할머니가 산다는 이웃집 담벼락 안에서 열심히 겨울을 준비하며 자라고 있는 귤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올해 귤은 얼마나 자라고 있나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초록색 귤들이 땡글땡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있다.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제주 앞바다는 바람에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흩어졌다. 아직 빛이 없는 어둑한 시간, 받은 하늘빛만큼 보답해주는 바닷빛은 하늘에 잔뜩 낀 구름 탓에 아침 햇살이 없으니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명암을 이루었다. 귓가에 부는 바람은 지난밤에 비가 와서 물기를 머금어 오늘은 어제보다 더 서늘한 가을다운 공기가 되었다. 속된 말로 진짜 찐!가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바람을 올해 들어 오늘에서야, 제주에 와서야 제대로 맞아보다니 새삼스러웠다.
 
바닷가에 산책로를 새로 정리를 했기에 둘러보려고 했는데,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파도 소리가 크게 들려서 겁이 났는지 집으로 가자고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겁보인 아이의 뜻도 알고도 모른 척, 추운 거냐고 옷매무새를 다시 만져주고 내 욕심대로 서너 걸음을 앞서 걸었다. 이번에는 무섭다며 안 가겠다고 기어코 울음이 터졌다. 1년 만의 산책은 거기서 끝이 나는 듯했다.
'이 겁보야~! 엄마가 오랜만에 무드 좀 잡아보려는데~! 다음엔 안 데리고 온다~!! 반드시 혼자 오고야 만다!!'
 
기대만큼 못 걸어 아쉬우니, 더 멀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노인정을 지나는 길에 있는 귤밭에는 밤사이 주인님 밭을 잘 지켰노라고 줄에 묶여 인기척에 내다보는 누렁이들이 보였다. 우리가 낯선지 개들이 "컹컹"하고 짖었다.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덩치가 큰 개떼들이 많은 제주라는 게 생각나서 아까부터 다리가 아프다며 찡얼대는 아이를 업었다. 일곱 살이 되는 내년부터는 엄마가 못 업어준다고 다짐을 받았지만, 아직은 겁보인 아들을 좀 더 업어주고 싶다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주방에서 제부가 칼질을 열심히 하고 있다. 새벽 세시에 해루질(밤에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일)하러 나가는 현관문 소리는 들었는데, 오늘의 전리품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슬쩍 들여다보았다. 월척이다!!
"잡았어요? 뭐예요? 어디서요?" 질문을 쏟아냈다.
"다금바리요~ 이만큼 컸어요. 45cm예요."
생선 머리만 해도 이만한 손바닥만 했다며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아 보이는 제부는 뿌듯하게 웃었다.
"오~! 회는 모닝회라면서~!!" 기대에 잔뜩 부풀어 덩달아 웃었다.
 
며칠 전 태풍이 와서 물이 뒤집혔을 때, 양식장 쪽 바닷가 물 빠진 웅덩이에서 돌돔을 주웠단다. 오늘 새벽에도 혹시나 하고 나가봤더니 그 웅덩이에 자연산 횟감들이 무려 4마리가 있더란다. 제일 큰 고기가 이 다금바리라, 손질할 인건비도 안 나올 법한 제일 작은 고기는 그냥 놓아주고 나머지 3마리만 건져왔단다. 장화 달린 옷을 입고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서 잠자는 고기 깨워서 건져오기 힘들었다고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두두두두두! 개봉박두!!소고기가 안심, 등심 등 부위마다 육질이 다르듯 생선도 크기가 커지니 부위마다 육질이 달라진다. 귀한 생선이니 아이에게 작은 크기 한 조각을 권해 보았다. 한 점 한 점 야무지게 잘 받아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하였다. 하~ 그 기름진 뱃살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시가로 계산하는 자연회는 정말 사랑입니다!! 문득 손주를 위해 우럭구이 반찬을 해주려고 아침마다 길 건너 앞바다에 낚싯대 한 대만 들고 나타난다는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제주에 오래 살게 되면 자기만의 냉장고 포인트가 생긴다더니, 제부는 드디어 그 포인트를 찾은 것이다. 바다를 찾아가면 바다가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토산에서 서귀포로 이사 가서 지냈을 때, '제주도의 모든 오름을 오르겠다.'는 혼자만의 야무진 포부로 지역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혼자 걸어 다니기에는 무서우니 삼삼오오 같이 모여 운동하자고 말이다. 무턱대고 글 하나 쓴 덕분에 육아전선의 최전방에서 만난 동지들이 생겼다. 내 포지션은 나이만 많고 육아에 대해 1도 모르는, 체력이 저질인 노산맘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첫 해여서 혼자 끙끙 앓던 중에 궁금한 것들도 물어보고 답을 얻으면서 많은 의지가 되었다. 전국 팔도에서 제주로 입도한 사람들이 많은데 결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운이 좋았다. 특히 외동인 아이도 계절마다 산으로 바다로 착한 형들과 다정한 누나들과 어울리며 제주의 특혜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지냈다. 그런 동지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서 버스 안에서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경력단절로 지내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건너편에 작은 옷가게를 차린 대구 언니네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평소에 옷가게를 가면 이 옷 저 옷 입어대며 쇼핑을 못 하는 한도 풀 겸,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며 근황을 나누었다. 나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수어를 배우러 다니고, 낮에는 YWCA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지냈다고 했다.
"도영이는 부산에 가서도 부지런히 배우면서 잘 다니고 있네." 하면서 모두가 입을 모았다.
비록 당시에는 동지들과 운동을 빙자한 먹방을 다니는 쪽으로 만나게 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차가 없는 뚜벅이라 멀리 나가지 못하니 짬짬이 걸어서 서귀포 온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서귀포를 기준으로 멀게는 동쪽으로 공천포까지, 서쪽으로 서귀포 월드컵경기장까지, 북쪽으로 솔오름(미악산)까지, 남쪽으로 새섬(조도)까지 이렇듯 사방팔방으로 걸어서 2시간 정도를 걸어 다녔다. 스케줄에 따라 동선을 더 짧게 잡거나, 아이와 함께 할 때는 삼매봉도서관, 칠십리 시공원, 자구리 공원, 솜반천, 정방폭포, 이중섭거리를 오갔다. 서귀포 외곽 포인트를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다 가봤다고 하면 세컨카가 필수인 제주에서 거기까지 걸어 가봤느냐며 다들 놀라워했다.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길은 천지연 폭포를 들렀다가 새연교를 지나 새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남쪽 코스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종점이 있어 접근성이 좋아 자주 찾았다. 자꾸 보면 정든다고 새섬은 제주도에서 나의 최애 장소가 되었다. 비가 오면 꽃무늬 비옷을 입고 나서고, 눈이 오면 눈발 날리는 것을 보러 가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새섬으로 갔다.
 
 
'한자로 조도(鳥島)인 걸 보면 새가 많이 사는 섬인가?' 짐작대로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걷는 동안 귀가 즐겁다. 자갈로 된 새섬 순환로를 딛는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도, 턱까지 숨이 차올른 거친 숨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진짜 뜻은 (억)새가 많이 자라고 있는 섬이라 하여 '새섬'이라 한다. 천지연 폭포를 보고 다리를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돌면 서귀포 시내권인데도 불구하고 깊은 숲속에 와 있는 듯한 피톤치드 향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서귀포항도 마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체 관광을 온 팀들이나 가족 여행객들이 새연교를 건너 쉼터까지는 잘 온다. 벤치에 걸터앉아 기념사진도 찍고 저 멀리 해지는 바다를 감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섬 입구에 있는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을 한 눈으로만 보고 새섬 도는 것은 포기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히 한 바퀴 돌고 나와요!! 풍경이 정말 좋아요!!" 하고 새섬을 도느냐 마느냐하는 실랑이를 볼라치면, 나는 안타까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바퀴 돌고 오자는 의견 쪽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그리고 새섬을 도는 중에 사진 촬영을 부탁받으면 기꺼이 '찍사'가 되어 준다. 왜냐하면 나 혼자 그들을 기특해했으니까.
 
운동에서 나아가 어린이 도서연구회를 다녀보자, 요가도 같이 다녀보자, 정리수납전문가 공부를 해보자, 바리스타 2급을 공부해보자 등으로 동지들을 꾀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다양하게 많이도 권했고 함께 하는 것이 안 되면 혼자서라도 나를 채우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못 이룬 계획들이 남았다. 예를 들면, 귀농, 귀촌 교육과 해녀 교육을 받고 싶었는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것을 써먹으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다음으로 기약해버린 것이 이제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부산에서 혹은 어디에서든 지내다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 서귀포로 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살던 서귀포는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 곳이다. '지레짐작해서 채 돌아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새섬'은 이제 나에겐 없다.
 
나는 인생의 보물과 같은 '나의 새섬'을 다시 거닐고 있다. 그 시원한 수평선을 보기 위해서, 그 싱그러운 숲길을 걷기 위해서라면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올립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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