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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경복궁 광화문과 해태상 사진. 광화문 현판이 비교적 가깝게 찍힌 사진이다.
▲ 광화문 전경 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경복궁 광화문과 해태상 사진. 광화문 현판이 비교적 가깝게 찍힌 사진이다.
ⓒ 코넬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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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도인들은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투에 경계심을 돋우며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1893년 2월 7일 동학이 서학을 배척하는 일로 한성에 있는 서양공관(영사관)에 격문을 발송하였다. '동학당 대표 손천민'의 명의로 된 '격문'의 내용이다.

격    문

서학 종교의 두령들은 타이르는 일을 너희들이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할 것이다. 기수(氣數,길흉화복의 운수)가 쇠퇴하고 세상의 도가 무너져서 묘당(廟堂)이 더러운 때를 감싸는 교화로 너희를 허용했는데, 관문을 두드려서 들어가기를 요청하고 적국과 화친하는 정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관문을 설치하고 종교를 전파하는 일은 조약 중에 너희들 종교 두령에게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제멋대로 몰려와서 명복은 비록 상제를 공경해서 기도를 글로 만들었으나 야소(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만 '야소'를 찬미하는 것을 법으로 삼아 전혀 바른 마음과 성실한 뜻의 배움이 없다. 또한 말을 실천하고 행실을 돈독하게 하는 실제가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한다고 하나 '부모'가 살아서는 공양하고 순종하는 도가 없고 죽어서는 곡읍(哭泣:소리내어 슬피 우는 것)과 분상의 절차가 없으니 이것을 떳떳한 인륜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혼인의 풍속은 처음에는 야합을 하고 끝내는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고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헤어지는 폐단이 있으니 부부의 도라고 할 수 있는가? 너희들은 구걸하는 부류로 너희 교회에서 관례적으로 정한 돈과 밥을 지나치게 탐하고 훌륭한 거처와 음식에 마음을 쓴다.

처음에 영어 교리를 익히다가 한문으로 양가의 자손을 꾀어 끝내 너희들의 교회 속으로 압박해서 들인다. 게다가 밥과 옷을 제거해서 학생에게 빌려주고 여분은 돈으로 계산하니 어찌 이처럼 비루한가? 단지 전도라고 하는 것은 유람이고, 경전을 파는 등의 일이 가장 긴요한 일이다.

이와 같다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생하는 곳은 너희들이 반드시 먼저 들어갈 것이니 두렵지 않겠는가? 이번에 감히 와서 변론하기를 요청했는데, 어찌 수도하는 우리 동학이 이로움을 다투는 너희들과 함께 앉아 말을 하겠는가?

이처럼 너희들을 타이르니 속히 짐을 꾸려 본국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병사와 인자하고 의로운 방패로 죄를 성토하고 토벌할 것이다. 다음달 3월 7일까지이니 이것을 잘 알라. (주석 9)

 
솔뫼마을의 동학을 설명하는 강순원씨(위), 대접두 손천민이 기거했던 대도소 터(아래)
▲ 솔뫼마을의 동학을 설명하는 강순원씨(위), 대접두 손천민이 기거했던 대도소 터(아래) 솔뫼마을의 동학을 설명하는 강순원씨(위), 대접두 손천민이 기거했던 대도소 터(아래)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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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사관에 붙은 격문

동학도인들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 영사관 벽에도 격문을 붙였다.

너희는 비록 오랑캐지만 천품 받음이 대략 같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이미 인도에 처하였으면 각기 나라를 다스리고 각기 생산을 보호하여 길이 강토를 보존하며 위로는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망령되이 탐욕의 마음을 가지고 남의 나라에 웅거하여 공격을 장기로 삼고 살육을 근본으로 삼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이며 끝내는 무엇을 하려는가? 안위는 기회는 너희들이 스스로 잡는 것이니 후회하지 말라. 우리는 두말하지 안 하오니 급히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주석 10)


주석
9> 앞의 책, 119~120쪽.

10> 「일본외교문서」, 1893년 4월 10일자.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동학혁명 ,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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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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