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쉽게 반하곤 하는 나. 그렇게 덕질의 대상이 된 캐릭터를 열거하자면 열 손가락도 부족할 것이다. 매번 새로운 캐릭터에 애정을 쏟아붓기 바쁘니 오랜 시간 부동의 '인생캐'로 자리잡은 캐릭터는 드문 편이다.

그러나 최근 5년 간 나의 인생캐이자 최애캐로 등극한 유일한 캐릭터가 있다. 사실상 롤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캐릭터. 바로 2015~2016년에 방영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변요한 분)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 (변요한 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 (변요한 분) ⓒ SBS


나의 인생캐이자 최애캐, 이방지

2011년에 방영한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선 배우 우현이 이방지로 분했는데, 이때는 노년의 이방지로서 주인공 강채윤(장혁 분)에게 무술을 가르친 스승으로만 등장해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퀄인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젊은 배우 변요한이 이방지 역을 맡으면서 주인공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방지는 어릴 적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가, 우연히 태극권의 창시자 장삼봉(장삼풍)을 만나 무예의 절기를 전수받고, 훗날 '삼한제일검'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SBS <육룡이 나르샤> 스틸컷

SBS <육룡이 나르샤> 스틸컷 ⓒ SBS


뛰어난 검술 솜씨로 정도전의 호위무사가 되어 활약하면서, 이성계는 그에게 "앞으로 너를 아들처럼 대할 것"이라며 자신의 아들들이 쓰던 방(芳)자 돌림을 써서 '이방지'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최고 권력의 주변에 머무르게 됐지만, 이방지에게 정치적 대의명분이니, 대업이니 하는 그런 '윗것'들의 일은 관심 밖이다. 그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어릴 적,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그런 트라우마 탓일까. 말수도 없고, 사람을 잘 믿지도 않는다. 그의 캐릭터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고독한 무사'가 적당할 듯싶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변요한 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변요한 분) ⓒ SBS


그러나 이방지가 활약하는 시기는 혼란스러운 여말선초. 더욱이 정도전의 호위무사로 활약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이방지는 그토록 고강한 무예 실력을 갖췄음에도, 결국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 그의 삶은 비극에서 시작되어 비극으로 끝난다.

비록 그의 삶은 비극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무예 연마에만 매진하는 그의 캐릭터는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또 겸손하기까지 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검객이 되었음에도 뽐내거나 자만하지 않고 더 강해지기 위해 매일 밤 수련에 몰두한다. 최고 권력의 곁을 지키면서도 권력이나 재물을 쫓지 않는 그의 우직한 성격도 매력을 더한다.

이방지 보고 부대 옥상에서 매일 칼 휘둘러

<육룡이 나르샤>가 한창 방영될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생활관 TV에 등장하는 이방지의 화려한 검술 액션신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단연 압권은 최고의 적수였던 길태미(박혁권 분)와의 대결신이었다. 무술감독이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워서 연출한 듯한 최고의 명장면이었는데, 이 장면만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몸이 너무 근질근질거리는 까닭에 당장 뭐라도 손에 잡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어렸을 적부터 무예를 좋아했던 나는 가뜩이나 군대에 와서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못해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병장'이라는 계급만 믿고서 바로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에게 '목검 반입'을 건의했고, "후임을 괴롭히는 데 쓰지 않겠다"고 두 번 세 번 맹세까지 한 뒤에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휴가 때 목검을 반입해 온 나. 남들이 전투체육 시간에 족구를 하며 땀을 흘릴 때, 나는 홀로 옆구리에 칼을 차고 옥상에 올라가서 이방지에 빙의되어 칼을 휘둘렀던 추억이 있다.
 
 검술을 연마하는 나의 모습

검술을 연마하는 나의 모습 ⓒ 김경준

 
이방지 덕분에 슬럼프도 극복

전역한 지 한참 지났지만 이방지는 여전히 나의 인생캐다. 핸드폰 배경화면이며 PC 바탕화면을 온통 이방지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밤이면 늘 공원에 가서 무예를 수련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슬럼프란 게 찾아올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지가 등장하는 액션씬을 돌려보거나, <육룡이 나르샤> OST 중 이방지 테마인 '하날히 달애시니'를 듣는다. 그러면 식었던 의욕도 다시 불타오른다.

헤어스타일도 이방지처럼 해보고 수염도 한 번 길러보고 싶었지만 가족들도, 여자친구도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접어야만 했다. 내 얼굴은 변요한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까닭이다.

올해 서른, 여전히 무림고수를 꿈꾸며

2020년은 내게는 조금 특별한 해다. 서른이 됐기 때문이다. 마냥 생각없이 놀기만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20대를 벗어나 내 앞가림은 내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가 되니,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도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수련의 '끈'을 놓지 말자는 것이 새해 목표 중 하나다. 이방지처럼 '고수'가 되고 싶다는 어릴 적 로망을 그저 추억 속의 로망으로만 묻어둔다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천하무림기행'을 떠나는 것도 나의 버킷리스트로 세웠다. 전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무술을 체험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2020년에도, 그후에도 내게 이방지는 추억이 아닌 현실의 이상향으로 자리할 것 같다.
 
 중국에서 양쯔강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은 나

중국에서 양쯔강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은 나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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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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