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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는 천식을 앓는 아들을 위해 전기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공기청정기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전기와 화학물질을 적게 혹은 거의 쓰지 않는 방식의 생활용품 1000여 개를 발명했다.

20년 전 그는 전기와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인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을 일본 나스에 만들었고, 자신의 가치와 기술을 제자들에게 전달해왔다. 그는 돈과 에너지가 없이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발적이며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너지와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자립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발명가가 아닌 일반인이 전기와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도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2019년 11월 21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자리 잡은 '비전화카페'에 찾아갔다. 비전화카페는 최소한의 전기만으로 운영되는 카페로, 후지무라 야스유키 발명가의 비전화제작자 과정을 경험한 청년들이 도시에서 자급자족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전기와 화학물질 대신 불편함을 선택했다
  
비전화카페 앞에 서있는 진찰스님
 비전화카페 앞에 서있는 진찰스님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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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박진철이라고 합니다. 비전화카페에서는 '진찰스'로 불리고 있어요.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비전화제작자 교육을 받은 후 졸업했어요. 현재는 주로 비전화카페를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비전화공방과 비전화제작자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비전화공방은 전기나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가치를 실천하고 제안하는 곳이에요. '비전화공방 서울'은 서울시가 일본 비전화공방 설립자인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와 업무 협약을 맺고 서울혁신파크에 유치한 해외 혁신사례 기관이죠. 이곳에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2명의 청년을 뽑아 비전화공방의 가치를 교육하는 '비전화제작자 과정'을 운영했어요. 일 년 동안 농사, 건축, 목공, 비즈니스 등에 대해 교육과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2018년 11월 17일 오픈한 비전화카페도 비전화제작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웃음)."

- 비전화라는 말이 낯선 분들을 위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전기와 화학물질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와 지향을 담고 있나요?
"저도 처음에는 비전화라는 말이 낯설었어요. 집을 지을 때도 화학물질이 엄청나게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비전화공방에서는 전기없는 삶을 실천하면서, 우리가 평소 얼마나 전기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느끼게 해줘요. 불필요한 곳에도 과도하게 전기와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죠.

가령 청소할 때 전기청소기를 쓰면 빠르게 청소를 끝낼 수 있지만, 청소 자체의 경험은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것으로 끝나요. 반면 빗자루를 사용해서 청소하면 바닥의 쓰레기들을 직접 모으고 쓸면서 치우는 행동에 몰입하게 되죠. 청소기보다 느리지만, 자연과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저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전화와 가까워지다 보면, 애초에 저희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도 깨닫게 돼요. 비전화정수기와 일반 정수기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비전화정수기(투명한 유리병에 잘게 썬 야자 껍데기와 활성탄을 채워 넣어 수도꼭지에 바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정수기로 비전화카페에서 사용하는 정수방식)를 선택할 거예요. 훨씬 건강한 느낌이 들고, 지구와 공존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두에게 이러한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건축 초짜들이 흙과 볏짚으로 만든 '비전화카페'
 
비전화카페의 내부
 비전화카페의 내부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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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화카페를 만든 과정이 궁금해요.
"비전화제작자과정에서 건축프로그램 중 하나로 비전화카페를 만들게 되었어요. 비전화제작자 1기분들이 하반기에 기틀을 잡았고, 2기가 들어와서 벽체를 고정하고 흙 미장, 석회 미장, 실내 미장까지 마무리했어요. 1, 2기가 협업을 한 거죠. 일주일에 이틀, 여섯 명씩 조를 나눠 작업했어요. 건축에만 쏟은 시간은 6개월 정도 될 것 같아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방식으로 건축되었어요. 처음에는 콘크리트 기초로 바닥을 먼저 깐 다음 비닐로 습기를 막고 경량목구조로 목조를 했어요. 이후 스트로베일(볏단)을 차곡차곡 쌓아서 단열효과를 주고 대나무를 대고 코코넛 끈을 엮어서 벽을 탄탄하게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흙과 모래, 볏단을 섞어 벽에 발라 두께감을 만들었고 석회 미장으로 마무리했어요. 직접 저희가 만들었으니까 보수도 직접 할 수 있고, 생태건축이어서 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벽 자재인 볏짚이 보이도록 건물 벽에 낸 작은 창이 하나 있어요. 저희는 그걸 '진실의 창'이라고 불러요. 저희가 비전화카페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볼 수 있는 창문이에요."
  
- 건축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모여서 비전화카페를 지은 거네요.
"맞아요. 카페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의미예요. 직접 만들어서 더 애정이 가요. 건축은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라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기 어렵고, 배운 것을 풀어낼 기회도 드물어서 더 의미가 있어요."

- 비전화카페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비전화카페의 카페지기는 다섯 명 정도예요. 시기에 따라 2인 1조로 일을 하기도하고 한 명씩 하기도 해요. 운영 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6시지만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어요."
  
얼음은 없지만 찬 음료가 가능하다? 
    

- 비전화 카페의 운영 기준이 궁금해요. 비전화라는 원칙을 가져가야 할 텐데, 카페에서 하기에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희도 보수적으로 '전기는 일절 없어야 한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태양광 전구 하나를 설치했어요. 여름에 차가운 음료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얼음이 든 음료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스팩을 이용해 시원한 음료를 판매하는 등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어요.

식자재는 최대한 생활협동조합에서 구매하려고 하고, 커피도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고 있어요. 빨대도 다회용 빨대인 대나무 빨대를 이용하고 있고요. 사이폰 커피(압력 차를 이용하여 커피를 내리는 방식)의 필터도 몇 개월 동안 사용이 가능한 융 필터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모든 것들을 친환경적으로 하려고 해요.

여름에는 카페 전체가 정말 더워요. 겨울은 추우면 장작을 땔 수 있는데, 여름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난해 오픈 후 맞은 첫 여름이었는데 선풍기도, 아이스 음료도 없이 보내느라 모두가 힘들었어요. 돌아오는 여름을 대비해 방법을 좀 찾아보려고 해요."
   
- 따뜻한 음료는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LPG 가스로 만들어요. 장작으로 만드는 건 힘들어서요 (웃음). 적정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방식인 것 같아요. 비전화공방에서 느끼는 것은 전기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과 내가 쓰는 에너지에 대한 자각이에요. 이전과 다르게 버려지는 전기가 없는지 신경 쓰게 되고,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원자력발전소 문제까지 생각이 옮겨가면서 더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되죠. 사실 그동안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원자력발전소로 위험부담을 늘리면서까지 불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불필요한 곳에 과도하게 사용되는 전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카페 내부의 화목난로
 카페 내부의 화목난로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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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웨이스트,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를 위해 하는 비전화카페의 실천을 소개해주세요.
"카페에 필요한 그릇과 책은 기부받아 사용하고 있어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이 포화라고 생각해서 구입하기보다는 괜찮은 것들을 받아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해요. 텀블러도 기증받아서 필요한 분께 빌려드리고 있어요. 테이크아웃을 할 때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에 담아갔다가 다시 반납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테이크아웃을 하기에는 이 공간이 정말 좋아서, 내부에서 비전화카페를 즐기는 것을 가장 추천해 드리고 있어요(웃음). 그 외에도 카페에서 나오는 원두 찌꺼기랑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퇴비함이 따로 있어요. 위에서 언급했듯 종이 필터나 일회용 빨대 대신 융 필터나 대나무 빨대를 사용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해요."
  
모두를 위한 대안을 실험하고 나누는 공간
 

- 비전화카페의 미래는 어떠한가요?
"비전화카페가 자체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어요. 카페가 단순히 카페로써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활동들을 해보려고 해요. 9월에 진행한 스웨덴 출신 국제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강연처럼 시민들을 위한 강좌나 대안적인 삶을 위한 다양한 자급기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차별 없는 카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장애인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턱을 없애고, 성소수자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손 잇는 날'이라는 장터도 열고 있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손과 손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가진 장터로, 손으로 만든 것들이 나오는 장터에요. 자급자족과도 연결되어 있고, 다른 동료를 만나는 장이기도 하죠. 가령 빵을 만드는 친구와 평상을 만드는 친구가 만나면 서로 물물교환도 할 수 있어요. 단순히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손님으로 오시는 분들도 평소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터에 와서 판매자와 물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내 삶에서 이런 것들은 자립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갖고 돌아갈 수 있어요.

최근에 퇴비함을 만드는 워크숍을 했는데, 집에 퇴비함을 만들어놓으면 식물을 키우고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 워크숍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 수 있고, 내가 알던 쓰레기 처리와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효과가 있죠. 당연하게 버리던 음식물쓰레기가 자립의 기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거, 그게 '변화의 시작' 아닐까요?"
   
손잇는날 자보
 손잇는날 자보
ⓒ 비전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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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삶을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보자 
 

- 비전화공방 졸업 이후, 비전화제작자들의 삶은 어떤가요?
"각자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저는 맥주 담그기와 천연발효빵에 관심이 있어서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있어요. 모빌을 만드는 친구도 있고, 우드카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외국의 대안적 삶을 소개하는 잡지를 번역하는 친구도 있어요. 다양해요. 자기 작업을 가지고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연결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대안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청년들이 살면서 꼭 한 번 (비전화공방같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면서 나의 삶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산다고 해서 계속 이렇게 살지 아니면 취업을 하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다만 실행해보지 않는 이상은 알 수가 없어요. 상상만 하다가 끝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삶은 다양하잖아요,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지켜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남들에게 여유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를 고민해야 하고, 간편함보다는 불편함을 추구하다 보니 몸이 굉장히 바빠요. 하지만 육체적으로 바쁘고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좋아요. 그래서 체력이 매우 중요하고요 (웃음)."

태그:#여성환경연대, #비전화카페, #비전화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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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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