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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충북 청원군의 두루봉 한 동굴에서 구석기시대인 것으로 추정되는 2구의 유골이 발견되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약 4만 년 전, 4~6세 정도 남자아이가 어떤 병으로 죽었고, 시신을 동굴에 나란히 누이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을 것이다고 추정하는 흥수아이' 이야기다.

흥수아이가 관심을 끈 또 다른 이유는 유골에서 많은 꽃가루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례에 쓰인 것은 국화. 미뤄 짐작, 많은 꽃으로 시신을 덮었을 것이다, 국화가 많이 피는 가을에 아이들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살았다는 4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에는 국화꽃 외에 또 어떤 꽃들이 피었을까? 아이들 장례에 쓰였다는 국화는 어떤 종류였을까? 들국화일 것.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들국화와 같을까? 선사인들에게 꽃은 어떤 존재, 어떤 의미였을까?' 등, 오래전 흥수아이에 대해 읽으며 작은 충격과 함께 많은 것들이 궁금했었다.

구석기시대 유골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꽃가루만으로도 어느 꽃인지 알아낸다거나, 어느 시대 유골인지를 알아낼 수 있음에 대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호기심 충족은 쉽지 않았다. 아마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인인 내가 접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성 때문이었다.
 
<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책표지.
 <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책표지.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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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금굴과 청원의 두루봉 제2 동굴에서는 구석기시대 전기에서 후기에 걸친 다양한 식물이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 동굴 장식에서 발견되는 식물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이 많다. 국화, 백합, 붓꽃, 진달래꽃은 크기가 큰 편으로 모양이 예쁘고 빨강이나 노랑으로 화려하다. 쥐손이풀 꽃은 작지만 귀엽고, 쥐똥나무는 꽃과 열매가 아름다우며, 단풍나무, 소나무, 주목은 잎의 모양이 개성적인데, 특히 주목은 빨간 씨앗이 예쁘다. 이들 식물은 개화 시기가 다양하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봄에는 붓꽃과 진달래꽃, 여름에는 백합꽃,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쥐손이풀과 택사꽃, 가을에는 국화꽃, 단풍잎과 주목열매, 겨울에는 소나무와 주목의 잎과 가지로 동국 안을 장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굴이라는 열악한 주거환경이지만 관상식물로 사철 동굴 안을 장식하여 두고, 아름다운 꽃과 잎, 열매 등을 보면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을 것이다. (19~21쪽)
 
그래서 <삼국시대의 꽃 이야기>(한티재 펴냄)처럼 우리 조상들과 함께해온 식물들 이야기만 따로 모은 책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책이 더욱 의미 있게 와 닿았던 것은 원예학 박사인 저자의 회한이 느껴지는 책의 취지 때문이다.

소개하면, 얼마 전까지 연구실에서 꽃(식물) 연구를 해왔다. 그런데 꽃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연구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꽃이, 내가 사는 아파트와 늘 걸어 다니던 길에서 예사로 보곤 하던 꽃이 어느 날 새삼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년 무렵이었다.

'꽃 전문가'라는 소리를 평생 들었으며, 스스로 그렇다 자처하면서도 꽃의 아름다움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울러 내게는 연구대상일 뿐인 것과 달리 대부분 사람은 꽃의 생김새와 아름다움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득 그들처럼 꽃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것도 꽃 전문가가 잊지 말아야 할 당연함 아닐까 생각했다. 이와 같은 계기로 꽃의 아름다움과, 꽃과 관련된 문화에 관심 두게 되었다.

그런데 꽃과 관련된 문화에 관심 두자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그동안 서양의 꽃 관련 설화나 신화, 꽃말 등이 더 많이 알려졌으며,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꽃 관련 문화에 더 익숙하다는 것. 상대적으로 우리와 함께해온 식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그다지 없다는 것.

그렇다면 왜일까? 우리의 옛 문화가 상대적으로 꽃과 관련이 적기 때문일까? 관심 갖게 되었고, 그로 우리 조상들은 어떤 민족보다 꽃(식물)과 밀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누군가 정리해 많은 사람과 당연히 공유하여야 한다. 이렇게 나온 책이라고 한다.

흥수아이처럼 꽃이나 식물 관련 유물이나 역사적 사건들은 물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같은 기록물 등을 바탕으로 연구한 것들을 책으로 묶은 이 책은 ▲구석기시대인들의 꽃장식과 흥수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꽃들 ▲나무와 풀과 꽃 이름을 가진 역사 속 여인들과 남자들 ▲삼국시대의 조경 ▲곡을 하는 느티나무처럼 기이한 사건과 함께 하는 식물들 ▲식물 이름을 붙인 삼국시대의 지명들 ▲삼국시대의 꽃놀이 풍경 ▲유물과 유적에 피어난 꽃들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관상식물 등 우리 조상들과 함께해온 나무와 꽃 관련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풀어 놓는다.
 
20쪽에 실린, 구석기시대 장례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들국화 일종인 감국. 들꽃 그림들도 실려 있어서 읽는 맛과 보는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20쪽에 실린, 구석기시대 장례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들국화 일종인 감국. 들꽃 그림들도 실려 있어서 읽는 맛과 보는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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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의하면 흥수아이의 장례식에 쓰인 국화는 '우리나라 토착 자생종인 감국이나 산국, 구절초 등의 노랗거나 흰색의 들국화였을 것'(22쪽)이라고 한다.

선비들이 사랑했다는 사군자를 그린 그림들이나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연꽃이나 소나무처럼 특별한 상징으로 여러 문헌에 기록된 식물 등을 통해 그래도 조선 시대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았을까를 아쉽게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접했을 들꽃에 관한 기록은 아마도 거의 없어 아쉬움은 여전히 많지만 말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이전에는 기록물조차 거의 없는 상태, 그래서 조선 시대 이전 꽃과 식물을 다룬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와 닿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에는 특별한 나무가 자란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 처마 밑에 자라는 선비화가 그것.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싹 터 자랐다는 그 나무는 골담초이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시 한 주택에서 찍은 것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에는 특별한 나무가 자란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 처마 밑에 자라는 선비화가 그것.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싹 터 자랐다는 그 나무는 골담초이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시 한 주택에서 찍은 것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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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의 지팡이는 실제로 갈잎떨기나무인 골담초 줄기이며, 나무에서 줄기를 자른 시기는 눈이 자발적으로 휴면을 하는 가을에서 강제휴면을 하는 늦겨울 사이이고, 살아 있는 눈이 붙어 있는 지팡이를 꽂은 시기는 이른 봄 지팡이에서 싹이 나기 전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팡이를 꽂은 자리는 처마 밑이라 하였으니 직사광선이 없는 반그늘로, 상대습도가 높고, 토양수분이 충분하고, 토질도 적당하여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으리라 본다. 또, 의상이 지팡이를 사용한 기간은 길면 대여섯 달이고 짧으면 한 달도 안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상의 골담초 지팡이의 새싹은 오옥신(꺾꽂이한 나무줄기가 뿌리내리게 하는 식물의 호르몬) 생성 능력이 컸다. 의상이 꺾꽂이의 원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의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꺾꽂이를 실행한 사람이 되었다. 비선화수로 불린 골담초는 지금도 영주 부석사에서 잘 자라고 있어서, 기록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182~184쪽)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에 가면 특별한 나무가 자란다. 의상대사(신라 625~702년)가 꽂은 지팡이가 싹터 자랐다는 조사당 처마 밑 선비화(골담초)가 그 나무. 꾸며낸 이야기로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부석사를 찾아 나무를 본 후 썼다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시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된 나무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지팡이가 어떻게 싹을 틔워 자랄수 있을까? 식물을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관련 지식들도 만날 수 있다. (*흥수아이는 발굴 조사 발표 후 시대적 배경을 두고 논란 중이다.)

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 원예학자와 떠나는 역사 속 꽃 여행

김규원 (지은이), 한티재(2019)


태그:#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흥수아이, #부석사 조사당 선비화, #골담초, #의상대사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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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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