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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을 당시 모습.
 2016년 4월,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을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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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80살을 먹었는데 지금 또다시 그런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누구를 돕거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던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다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느냐를 두고 정치권은 며칠 동안 술렁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모두 미래가 없다, 제3정치세력 출현의 적기라는 내용의 강연까지 한 그였다. 본인의 정치적 진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하느님이 나라를 위해 뭐라도 해봐라 계시라도 내리면(?)'이라고 손사래 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또다시 미래통합당 상임선대위원장으로 하마평에 오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결국 선대위원장 자리는 틀어졌다.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 선대위원장을 둘러싼 해프닝은 결국 '정치 노욕'만 드러낸 꼴이 됐다.

미래통합당에서도 이번엔 '꽃가마' 태워서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과거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한 삼고초려도, 금의환향의 떠들썩함도 없었다. 행보가 정해지기 전 나왔던 발언이 예기치 않은 후폭풍을 불러오며 일이 틀어졌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사천'으로 평가절하하고, 태영호 전 공사의 서울 강남갑 공천을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고 규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형오 공천위원장은 직을 내려놨고, 태영호 후보는 '탈북민에 대못 박는 말'이라면서 격한 반응으로 맞받았다. 심재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도 김 이사장에게 사과를 요구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쯤이면 '노욕이 망신을 불렀다'는 지적도 그리 틀려 보이진 않는다. 

망신살
 
태영호 전 주영북한대사관 공사. 사진은 지난 2월 16일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총선 지역구 출마를 공언하는 기자회견 당시 모습.
 태영호 전 주영북한대사관 공사. 사진은 지난 2월 16일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총선 지역구 출마를 공언하는 기자회견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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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이사장의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 행은 결국 좌절됐다. 김 이사장은 '태영호 후보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게 낫다는 뜻'으로 말했고, '황교안 대표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수습과 구애로 선대위원장직에 대한 미련을 에둘러 표현한 듯하지만, 당내 반발을 넘어서진 못했다.

2012년 새누리당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으면서 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김종인 위원장. 2016년에는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도 맡았다. 과거 전두환 정부의 민정당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4대 민자당 의원, 17대의 새천년민주당 의원 등 '비례대표만 5선'이라는 이례적인 이력을 갖고 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이력 탓에 능력이 검증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여야를 오간 정치행보를 두고 혹자는 '선거 떳다방' 같은 표현으로 힐난했다. 

이런 비난은 과거와 지금, 여와 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그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은 민주당을 향해 총선을 겨냥한 부문별한 영입이라는 비판을 쏟았다. 그러면서 김 이사장에 대해서도 '선거 때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마치 자신만이 최고 전문가인 듯 처신한다'면서 날을 세웠다. 최근 민주당이 김 이사장의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설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보이진 않았지만, 속마음은 과거 새누리당의 논평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국민 여론도 존경보다는 냉소가 주를 이뤘다. 
   
미래통합당이 김 이사장을 염두에 둔 이유는, 아직도 '김종인표 경제 화두'가 중도층에 먹힐 수 있다는 판단, 그리고 '선거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총선 승리를 안겨다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김종인 이사장이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오랫동안 여야를 오가면서 선거마다 경제 분야의 단골공약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그가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선거를 겨냥한 상품이었을 뿐 제대로 입안되고 안착됐다고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재벌 개혁을 저지하고 소득주도 성장론을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이름을 바꾸고 김종인 이사장을 불러들여 경제민주화를 띄운다면 어찌 될까. 그것은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국민 기만행위라고 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책임이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의지 탓이라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안착시키려는 노력보다 공약 장사 행세를 한 본인의 책임도 적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20대 총선 민주당 승리에 각각 역할을 한 김 이사장은 두 세력의 경제민주화 실패에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속죄부터 했어야 했다. 선거 때는 선대위원장으로 표를 모으다가 다음 선거 때엔 심판자로 나서는 것을 아이러니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뭐라 불러야 할까. 

'킹 메이커'라는 이름의 오만함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긴 이유는 대표를 맡은 내가 당을 중도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2012년 총·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긴 것도 마찬가지다. 당 행복추진위원장을 맡은 내가 '보수 꼴통'인 당을 좌클릭해 중도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당 정강·정책을 경제민주화, 복지로 확 바꾸고 65세 이상 국민에 기초연금 20만 원 준다는 공약을 밀어붙였다. 투표율 낮은 노인층을 투표장에 유인해야 이긴다는 전략이었다. 딱 먹혔다." - 2019년 11월 29일 <중앙일보> 보도
 

김 이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사실 불쾌했다. 2012년 총·대선도, 2016년 총선도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본인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강변이다.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은 노인층을 투표장으로 불러 내기위한 전략이었음도 자랑처럼 말했다. 대선도, 총선도 자신의 결정에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노인들에게 20만 원 기초연금을 준다고 하면 표를 얻어낼 수 있다는 포퓰리즘적 사고도 안쓰럽다.
 
2012년 10월 1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배석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박 후보를 쳐다보고 있다.
 2012년 10월 1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배석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박 후보를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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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 주장이다. 2012년 선거도, 2016년도 선거도 모두 국민의 선택이었다. 비록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의 선택에 잘못이 있었다는 게 역사 속에서 입증됐다. 하지만 그건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당시 행복추진위원장이 국민을 속였고, 유권자가 속은 결과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이상한 기관으로, 정부의 사법·언론 개혁을 '장악'이라고 강변하는 김종인 이사장, 결국 그의 통합당 선대위원장행은 좌절됐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본다. 한 사람이 선거를 좌지우지하고 '20만 원 기초연금' 같은 공약을 던지면 표가 몰리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코로나사태로 더 어려워진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해보려 했던 것"이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변명이다. 그의 복귀는 '정치 노욕이 빚은 망신살 해프닝'으로 끝났다. 진정 코로나19로 인한 국가경제가 걱정된다면, 4.15총선에서 유권자로서 한 표 잘 행사하시기 바란다.

태그:#김종인, #미래통합당, #4.15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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