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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난 마을을 위성지도를 이용해 살펴봤다. 한때 그의 이름으로 역 이름을 정하자는 움직임이 지역사회에서 주장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역 이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뚜렷이 남은 '백마고지역'이 됐다. 그의 월북 이력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 있지 않았나 싶다.

역은 2012년 11월에 개통됐다. 경원선의 철도역이었으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이래로 철원군에 생긴 최초의 철도역이었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 문단의 촉망 받는 작가였다.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리는 '이태준'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 올바른 우리말 글짓기를 가르치는 <문장강화>는 지금도 글쓰기 분야의 명저로 꼽힌다.
 
이태준 지음, <문장강화>, 창비.
 이태준 지음, <문장강화>, 창비.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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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라는 뼈 아픈 통점이 있는 현 시대에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장강화>는 1939년 2월 그가 주관하던 <문장>지 창간호부터 연재되다가 9회로 그치고 이듬해 문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이다.
 
"광복직후인 1946년에는 그 증정판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되는데, 해방적 감격과 함께 우리의 말과 글을 자유롭게, 바르게 쓰자는 '국민적 각성'에 따라 보급되는 추세였다. 이런 <문장강화>가 분단상황의 악화 · 경직으로 절판되어 자취를 감췄다가 무려 40여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창비는 지난 1988년에 <문장강화> 신판을 간행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개정판을 낸다."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 고문으로 있는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쓴 개정판 머리글 일부이다. 2020년 현재 책의 역사는 80여년의 세월을 품고 있었다. 2005년 개정판이 나오고, 2019년 7월 기준 28쇄가 발행됐다.

대략 30년을 한 세대로 규정한다면, 증조 할아버지 때의 유산이 할머니, 아버지, 딸을 거쳐 손자·손녀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대는 흘렀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글쓰기 책은 <문장강화>의 큰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 비약하여 말한다면, 현대의 글쓰기 책들 대부분은 <문장강화>의 아류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어가 상징하듯, 분단된 조국에서 피륙 같은 문장을 직조하고 마침내 한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정신적 유산이 전승된 것일까. 너무 허황되고 거창하다고 걱정 듣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 이태준의 문장을 마음 깊숙이 품어본다면, 그것이 오늘날 문장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삶에 비춰본다면, 결코 정신 사나운 소리는 아닐 것이다.

들려주고, 알려주고, 보여줘라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은 좋은 말을 쓰려는 노력인 것이다. 생활은 자꾸 새로워지고 있다. 말은 자꾸 낡아지고 있다. 말은 영구히 '헌 것, 부족한 것'으로 존재한다. 글 쓰는 사람은 전래어든, 신어든, 외래어든, 그 오늘 아침부터라도 이미 존재하는 어떤 언어에도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이 새 언어의 탐구자라야 한다. (...) 아무튼 언어는 민중 전체가 의식주보다도 평등하게 가지는 최대의 문화물이다. 글 쓰는 이는 문장보다 먼저 언어에 책임이 크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94~95p)

요컨대, 글 쓰는 사람은 언어에 관한 탐구자이자 자신이 쓴 언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작권이나, 특허권과 같은 법률적인 것이기 전에, 글쓴이 스스로가 윤리적 관점에서 지켜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제목인 '문장강화'의 의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결을 사유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관절 언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성격 중에 가장 비중이 큰 것이 경제성이다. 언어는 절제되어야 하며, 압축되고, 곧바로 말하는 사람과 청자 간에 교감을 획득할 수 있는 단어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문제는 경제성을 띤 단어다보니,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어는 충분한 마음의 진동을 담은 울림을 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하나로 표현할 수 없어, 시인들은 '사랑'이 내재한 감정의 폭, 말하자면 '사랑'의 결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소설가는 '사랑'이 머문 상황의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문장과 문장사이에는 호흡이 있다. 그 사이에 작가는 예리한 신경의 촉각을 세워 사물을 감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 암기 지식의 나열이나, 그럴듯하게 포장된 유명인의 명언, 명구를 인용하여 맥락에 관계없이 풀어 놓는 것은 언어 탐구의 자세라 할 수 없고, 언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도 아니다.

저자는 글은 들려주고, 알려주고 보여주는 것을 한다고 했다. 들려주는 것이 운문의 일이고, 알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산문의 일이다고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름답구나!' 하는 것은 자기의 심리다. 자기의 심리인 '아름답구나!'만 써가지고는, 독자는 아무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다. 독자에게도 그런 심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풍경이 아름다운 까닭을, 즉 하늘, 구름, 산, 내, 나무, 돌 등 풍경의 재료를 풍경대로 조합해서 문장을 표현해주어야 독자도 비로소 작자와 동일한 경험을 그 문장에서 얻고 한가지로 '아름답구나!' 심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249쪽)

말하자면, 아름답다는 정서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감각으로 느끼는 사물들의 조합이 독자의 눈에 활자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물은 나무, 돌 등과 같은 것일 수 있고, 새 소리, 비 소리, 음악 등과 같은 청각적인 것일 수 도 있다.

글은 곧 언어 생활을 하는 삶

<문장강화>에서 저자가 이와 같은 것을 쓰기 위해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리 두기와 관찰이었다. 케케묵은 상식만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새롭게 독해하려는 노력이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을 비롯해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사유하는 것이 관찰이다.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작가인 모파상과 비견해 한국의 모파상이라는 별칭이 붙은 저자였다. 그 저자가 글을 쓰는 자세와 기술을 논하는 책이 바로 <문장강화>이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말을 찾는 탐험가의 눈빛, 손아귀에 힘을 주고 꾹 눌러쓴 단어라도 책임의 관점에서 의심하려는 태도를 강조했다.

저자는 이렇게 글을 써야 한다고 훈시하지 않았다. 쓰고자 하는 글의 종류에 따라 좋은 문장의 사례를 독자에게 보여줬다. 궁극에 이것은,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융합되는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문장강화>는 글 쓰는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글 읽는 삶이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의 삶에서 '글이라는 것, 문장이라는 것, 결국에는 언어 생활을 하는 삶이라는 것'에 관해 저자의 사유를 담은 책이다. 그 사유의 뜨락을 맨발로 밟으며 이제 싹이 돋기 시작한 여릿한 풀잎을 발등에 스쳐도 좋을 듯하다. 자신의 글쓰기 환경과 삶을 반추하면서 말이다.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창비(2005)


태그:#이태준, #문장강화, #글쓰기, #오마이뉴스, #김성훈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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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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