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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 중등 자녀가 있는 큰딸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루를 산다. 명절이나 방학 때만 볼 수 있어 내심 손녀들이 보고 싶어도 힘들어하는 딸의 마음을 살펴 자주 오라는 말을 삼키고 손녀들 목소리만 듣는다. 겨울방학 때 아이들 스케줄 조절해서 한번 온다던 딸아이는 차일피일 미루다 코로나19로 일정을 기약 없이 연기했다.

"엄마, 우리 드디어 갈 수 있어. 하민이 스케줄이 주말로 미뤄졌고 시간도 조절할 수 있어서 석가탄신일에 갈 수 있어."

사위가 승진 턱을 내겠다고 한 약속도 지킬 겸 징검다리 연휴 동안 겸사겸사 내려온다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는 순간 온몸에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바로 달력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먹이고 싶은 것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긴 연휴를 보내고 행복한 이별을 했다. 어버이날 번갈아가며 딸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하러 또 전화를 해, 왔다 갔는데." 다녀가긴 했지만 당일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라며 말한다.

"엄마, 아빠의 딸이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건강해야 해요."

엄마가 너무도 그리운 5월

결혼하고 맞벌이를 해야 했던 나에게 친정엄마는 등불 같은 존재였다. 50대에 홀로 된 친정엄마는 두 손녀를 예쁘게 키워주셨다. 그렇게 10여 년 함께 살다가 하늘로 가셨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오월이 되면 나는 유난히 눈물이 많아진다.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너무 불러보고 싶어서다. 불러보고 싶어도 불러볼 수 없는 엄마,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엄마여서 걷다가도 하염없이 하늘을 본다.
 
tvN 가정의 달 특집 드라마 <외출>
 tvN 가정의 달 특집 드라마 <외출>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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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가정의 달 특집 드라마 <외출>에서 기침하는 엄마에게 감기약 먹으라고 독촉하는 워킹맘 정은(한혜진)을 본다. 아픈 엄마가 걱정되는 게 아니라 자기 딸아이에게 감기 옮길까 걱정해서다.

손녀딸 유나가 죽고 죄인이 된 친정엄마에게 "당신 때문에 유나가 죽었어"라고 탓을 하고 싶었던 자신도 한스러운데, 치매까지 겹쳐 정신없는 엄마를 향해 시어머니가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모진 말을 한다.

"엄마 아픈 건 모르고 제 딸 아플까 봐 그것만 신경 썼어요." "왜. 다들 우리 엄마만 잘못이라고 하는 건데요. 왜 우리 엄마가 내 딸을 봐줬어야 했는데요. 왜 그랬어야만 했는데"라며 절규하듯 꾸욱 참아왔던 한탄과 울분을 쏟아내는 정은이. 

맏며느리이면서 친정엄마와 함께 사는 뻔뻔한 며느리라고 못마땅해 했던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빚을 갚기 위해 맞벌이하는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같은 여자이고 같은 엄마인데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왜 다를까?

맏며느리 주제에 친정엄마와 함께 사는 정은이가 바로 나였다. 손녀가 떠난 유나 방에 등을 구부리고 잠든 엄마를 품에 안으며 "엄마"를 부르는 정은이처럼, 너무 안아보고 불러보고 싶었던 엄마가 그립고 그리운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엄마의 기일이 어버이날이다.

손녀 둘을 키우면서 성품처럼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신 덕분에 두 딸들은 외할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인다. 결혼 후 기일마다 함께 미사를 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기도할게요"라고 답한다.

사십 중반에 양가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우리 부부는 어버이날이라고 분주하게 부모님을 챙기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명절, 생신, 어버이날이면 현물이나 현금으로 나름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 담아 기쁨을 선사하긴 했지만 자녀 된 의무감과 더불어 부담감도 있었다. 돌아가시고 나니 허전함이 구름처럼 떠다니고 부모님의 빈 자리는 더 크고 넓게 커져만 간다.

그래서일까. 자녀였던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문득 자녀들에게 짐이 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곤 한다. 그런데 바쁜 일정으로 전화 시간이 맞지 않아 새벽이나 늦은 밤에 아이들에게 전화하면 딸들은 식겁한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 먼저 놀라서 묻는다.

나도 그랬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는데 내가 벌써 그 나이가 되어 자녀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뜨고 지는 해처럼 자연의 순리를 역행할 수는 없다.

모처럼 준비한 카네이션
 
직접 가슴에 달아주지 못하는 그리움담아 하늘로 보내는 마음 꽃
▲ 하늘로 보내는 카네이션 직접 가슴에 달아주지 못하는 그리움담아 하늘로 보내는 마음 꽃
ⓒ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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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동안 해마다 오는 기일인데 누워도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유난히 애달픔이 크다. 어버이날 나름 선물과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 드렸지만 왜 이리도 엄마의 가슴이 그리운 걸까. 밤새 뒤척이다 이른 아침 꽃집으로 향했다.

살아생전 꽃을 준비할 때는 귀찮고 번거롭기도 했는데 기일 아침 꽃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나비처럼 꽃을 찾아가는 설렘으로 가벼웠다.
   
오월은 성모님의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성모님 앞에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을 봉헌하며 기도했다. 하늘엄마 성모님께, 하늘로 가신 엄마에게, 너무 일찍 하늘로 가셔서 한 번도 가슴에 꽃 한번 달아드리지 못한 아빠에게, 남편을 낳아주신 시부모님께 한 다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서다.

그리고 엄마의 딸이 엄마가 되었기에 초 10개를 밝혔다. 세 자녀의 가정과 아프고 힘들어하는 대자녀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축복의 촛불이 되기를 염원하며 하늘로 카네이션 꽃을 보내고 왔다.

태그:#어버이날, #카네이션, #부모와 자녀, #엄마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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