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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일이 바빠 보름 정도 거기서 보내시다가 오랜만에 부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집 근처에 볼 일이 있으셔서 나오셨다가 다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엄마가 뭐 먹고 싶냐고 묻길래 떠오르는 것도 없고 해서 "감자탕 사다 먹을까?" 하고 대답했는데 내키지 않으신가보다.

오랜만에 집에서 먹으니 뭐라고 해주고 싶으신 눈치다. 냉장고를 살피시더니 "김치찌개 먹을래?"라고 물으시길래 냉큼 YES를 외쳤다. 김치찌개는 부모님도, 나도, 아이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메뉴다.

찌개를 끓이려고 김치를 써는 중에 아이들은 할머니 옆에 붙어서 "할머니, 저 김치하나만 주세요~" 하고는 입에 넣어 간다. 맵다고 호호 거리면서도 "큰 거 주세요, 하나만 더 주세요" 하며 입을 벌린다. 친정 엄마는 그런 손주들을 보며 매우면 밥이랑 먹으라고 하시면서도 자꾸 넣어주신다. 김치찌개를 끓이는 동안 아이들이 좋아하는 울릉도 부지깽이나물도 무쳐주셨다.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밥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밥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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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 밑반찬은 나와 아이들 셋이 먹을 때랑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엄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와 부지깽이 나물, 그리고 부모님 수저 두 벌만 추가되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며칠 굶은 것처럼 맛있게 밥을 먹는다. 친정아빠는 숟가락질을 멈추시고 아이들이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밥그릇을 비우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아~잘 먹었다. 할매가 매일 집에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덧붙이는 말. "할매밥은 푸짐한데..엄마밥은...좀..그래."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내가 밥을 해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매일 저녁마다 새로운 반찬을 하고 국도 끓였는데 뭔가 좀 억울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우리집은 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새벽 등교길에도 눈꼽만 떼고 졸면서도 밥은 먹고 가야 하는 것이 아침의 시작이었다.

독립을 하고 자취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내려올 때, 결혼하고 내 살림이 생겨 친정에 오는 날에도 자식들은 부모님께 맛있는 한 끼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부모님은 따뜻한 집밥을 내어주셨다. 희한한 건 같은 재료라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준 된장으로 내가 된장찌개를 끓이면 신기하게도 엄마 된장찌개 맛은 없어진다. 엄마가 담가준 김장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도 맛이 다르다. 정말 엄마의 손맛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나도 엄마 나이가 되면 우리 아들딸들이 엄마밥이 먹고 싶다고 할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부른 것은 밥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일까?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맛이 다른 것처럼 같은 밥을 먹어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으면 그저 그렇게 느껴지듯이 아이들도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먹으니 더 푸짐하게 느껴졌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반찬들이 상 위에 올라오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눈빛이 조미료가 되어주니 아이들은 음식으로 배부르고, 마음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사람 사는 맛, 가족의 맛을 아이들이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괜시리 미안했는지 아이들이 이야기한다.

"엄마, 근데 엄마 밥이 맛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음... 그냥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할매 밥이 더 맛있다는 뜻이야. 알지? 난 엄마 사랑해."

귀여운 아이들이다.

"얘들아, 엄마는 괜찮아. 엄마도 아직 할머니 밥이 더 맛있단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많이 먹고 든든하게 자라렴.♡"

태그:#할머니사랑, #집밥, #엄마손맛, #가족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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