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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는 인도의 스위스로도 불린다.
 마날리는 인도의 스위스로도 불린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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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티베트 음식을 먹어야 한다
 

아침 일찍 도착한다는 버스는 점심 무렵이 다 되어가도 쿨루(Kullu)에 멈춰 섰다. 마날리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동네에서는 그나마 큰 마을. 버스는 길 위에서 속절없이 시간만 보낼 뿐이고, 상황을 알 리 없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서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전 정류장에 내린 승객의 짐이 바뀌어버린 탓에 다시 짐을 바꿔주러 갔다는 거였다. 장거리 버스인 데다 승객도 꽤 있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람들은 한 시간 넘게 일정이 지체됐지만 싫은 내색 없이 여유를 즐겼다. 숨이 턱 막히지 않는 날씨, 그리고 산과 강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 온갖 것들로 뒤엉킨 델리와는 차원이 다른 풍경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트인 걸까.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나오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올드 마날리와 일반적인 시가지가 자리한 뉴 마날리, 그리고 그사이에 자리한 숲길. 내가 있던 곳은 올드 마날리였다. 동네가 작고 식당이나 여행사, 상점같이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기반이 한 데 모여있어서 다니기엔 편해 보였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온 곳은 티베트 음식점,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한 뗌뚝과 칼국수와 비슷한 뚝바는 국물 음식이 잘 없는 인도 음식에 아쉬움이 더해질 때 찾게되는 완벽한 대체재였다. 여행자 거리가 작은 덕분에 간판만 보고도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티베트식 수제비 요리, 뗌뚝
 티베트식 수제비 요리, 뗌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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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에 맛보는 뗌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듯 식당에 들어가 공허한 속을 달래주던 그런 음식. 어쩌면 4년 전 인도여행 때 매일같이 찾던 이 맛이 그리워서 다시 인도에 온 건 아니었을까.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가 들어간 만둣국 또한 일품이었다. 주문할 때 이야기만 하면 맵기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 인도 음식 대체재를 넘어서 한국 음식 대체재로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힌두교 사원인 하딤바 데비 사원
 힌두교 사원인 하딤바 데비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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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산물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

마날리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새겨 보자. 우선 근방에 바쉬싯이라는 작은 마을과 폭포, 온천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바쉬싯 근처면 나중에 라다크에서 내려온 다음에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마날리에 다시 왔을 땐 같은 숙소에서 하루만 머물고 떠났다.

크게 가본 곳을 꼽자면 뉴 마날리로 이어지는 숲길과 '하딤바'라는 이름의 힌두교 사원, 그 옆으로 이어진 숲길이다. 사원은 인도인 관광객이 워낙 많은 데다 힌두교를 믿지 않는 이상 크게 와닿는 바는 없어 보였다. 어떤 신이 모셔져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데다, 설령 알고 있다 해도 힌두교를 믿는 여느 인도인처럼 기도를 드리거나 종교적 의식을 행하진 않았을 거다. 내겐 이들처럼 힌두가 곧 문화고 삶이 아니었다. 그저 텍스트로 인지한 정보 조각에 불과할 테니, 멀리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선택이 없어 보였다.
 
힌두교 사원 옆으로 이어진 숲길
 힌두교 사원 옆으로 이어진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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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그나마 와닿는 바도 있었고 외려 안정감도 주었다. 길을 걸었을 때 바람에 나무가 살랑였고 잔잔한 소리와 함께 나무 특유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살랑이는 나무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식물과 동물들이 공존하는지 알고 있다면 같은 숲이라도 시야의 폭이 달라지겠지만, 이를 모른다고 해서 자연이 주는 감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일주일간 머물렀던 마날리의 숙소
 일주일간 머물렀던 마날리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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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의 대화가 서툰 이유

끼니를 해결하러 갈 때 말고는 대부분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같은 숙소 사람들과 카드게임을 하거나. '우노'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흔히 하는 카드게임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규칙만 조금 다를 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익숙하게 하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금방 할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끝을 맺는 이는 늘 정해져 있었다. 브라질 사람, 일본 사람, 그리고 각각 북인도와 남인도에서 온 인도 사람. 나보다 먼저 숙소에 머물던 이들이었고, 내가 떠나기 전까지도 머물던 이들이었다. 게임으로 하나 된 공동체 사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하나의 친숙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문화권이 완전히 다르거나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주류문화에 일가견이 없어도 얼마든지 공동체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 사실 그간 외국인 여행자와 대화를 할 때면 국적이나 여행 계획, 그동안 다녀왔던 여행지와 상대방이 나고 자란 국가에 대한 일말의 지식만 몇 개 얘기하면 대화 주제가 소진됐다. 그렇다고 빌보드 차트에 나오는 해외 팝송이나 외국 드라마, 영화를 자주 보는 편도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유할만한 공감대가 적었다. 늘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지 않아 그저 겉핥기식으로 스쳐 지나간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자 거리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한 집들
 여행자 거리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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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 마날리는 달랐다. 여행자들 사이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고 편하다는 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달랐다. 정말이지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것도, 외국인 여행자와 잘 못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이들과 딱히 할 얘기가 없었던 것 뿐이다.

태그:#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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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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