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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1977년 여름에 작은누나가 사준 <이광수전집>을 읽고 있다. 모두 10권인데, 어제 6권이 끝났다. 옛날 책인 데다가 깨알 같은 글씨가 3단 세로로 돼 있어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 밤에 책을 읽다가 잠깐 쉴 때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요즈음 누나가 1977년 23세 때 사준 열 권짜리 이광수전집 독서에 깊이 빠졌어. 사실 그동안 얼마 못 읽었거든. 곧 6권이 끝나. 워낙 책이 두꺼운 데다가 글자가 아주 작아서 분량이 엄청나거든. 10권까지 다 읽으면 고마움을 기념하며 한턱낼게. 하하하. 8월의 어느 날에 마침표를 찍게 될 거야.'

한 10여 분 뒤에 답장이 왔다.

'그래? 내가 사준 책이야? 생각 안 나.'

전혀 생각지 못한 답장이었다. 이어서 나는 그 당시 내가 고등학교 3학년 19세인데, 집에 온 책 장사꾼이 선전하는 걸 듣고 누나한테 사달라고 했으며, 누나가 돈도 넉넉지 않았을 텐데 나를 위해서 사줬다고 했다.

글을 보내긴 했으나 그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을 생각하지 못하는 누나가 퍽 아쉬웠다. 나는 내가 그 일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누나도 당연히 기억하리라 생각했었다. 예정대로라면 8월 어느 날에 그 책을 다 읽게 될 것이다. 그때 작은누나네에 가서 내가 생각했던 대로 한턱낼 것이다. 누나가 그것을 잊어버린 게 매우 아쉽긴 하지만,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일이므로.

몇 년 전에 학생들에게 중국의 문호 루쉰이 지은 수필 <연>을 가르치기 위해 미리 공부할 때 일이다. 지은이가 어린 시절에 남동생과 지내며 일어났던 사건 하나가 중요한 소재였다. 동생은 연을 만들어 날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형은 그건 철부지나 하는 거라며 몹시 싫어했다. 어느 날 무서운 형 몰래 헛간에서 동생이 열심히 연을 만들고 있었다. 그걸 우연히 발견한 형이 그 못된 심술이 발동해서 그것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먼 훗날에 형은 그 일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운 나머지 동생을 만나서 용서를 빌기로 했다. 그런데 어렵게 자리를 만들어서 그 사건을 말하며 미안하다고 했더니, 놀랍게도 동생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남동생이 떠올랐다. 사건은 다르더라도 동생이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매우 아쉬웠던 때가 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1년 7월 말의 일이다. 나는 13세 남동생은 10세였다. 6월 말에 나는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동생을 떠나서 두 누나가 자취하는 서울에서 지내게 됐다. 한 달 뒤에 여름방학이 돼서 누나랑 밤에 고향에 내려갔다.

지금도 그날의 정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부모님과 동생이 모기장을 들추고 마루로 나왔다. 나와 두 누나도 부모님과 동생을 부르며 뛰어갔다. 그랬다. 마루다. 아주 조그만 마루다. 거기에서 나와 동생은 얼싸안았다. 마루에 뒹굴었다. "형!" "성열아!" 아마 똑같이 애타게 불렀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 광경을 부모님과 두 누나는 흐뭇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동생이 태어나서 10년 동안 우리 형제는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형제간의 정을 마음껏 나누면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며 생활했다. 처음으로 우리 형제가 떨어져서 지내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그때, 모르긴 몰라도 눈물이 찔끔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을 나중에 동생에게 얘기했을 때, 동생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쉬웠다. 동생이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일까? 아니면 동생은 그 일이 나처럼 그리 소중하지 않기 때문일까?

작은누나가 나에게 책을 사준 걸 기억하면 얼마나 좋을까? 동생이 우리 형제가 한 달 만에 만나 마루에서 얼싸안고 뒹굴었던 걸 기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기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이 나와 생활하며 있었던 어떤 것을 기억하는데,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사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나의 경우는 루쉰과 비교하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나는 두 가지 사건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좋은 추억인데, 루쉰은 하루라도 빨리 동생한테 뉘우치고 싶은 추억이기 때문이다.

태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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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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