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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걷는 공원에 가니 무심하게 스쳐 지나쳤던 것이 보였다. 동네 한 바퀴, 6km 코스가 소개되어 있었다. 언제 동네를 이렇게 샅샅이 볼 일이 있을까 싶어 시간을 만들어 걸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잊고 있다 드디어 나섰다. 햇빛을 가리는 모자와 선글라스, 팔도 보호하기 위해 긴팔 남방도 하나 걸치고, 발을 든든하게 감싸는 운동화를 신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이까짓 것 했지만 어림짐작으로도 꽤 멀리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도 크게 했다.
 
부천 중앙공원의 동네 한 바퀴 걷기 코스
▲ 동네 한 바퀴 걷기 코스 부천 중앙공원의 동네 한 바퀴 걷기 코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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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한쪽에서 출발했다. 길눈 어두운 사람이라 지도를 보고 또 봐야 했지만, 옆에 길눈 밝은 남편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공원을 건너 학교 담벼락과 인접한 샛길로 들어섰다. 찌는 듯한 무더위는 아니었지만,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통로였다. 걷는 길을 따라 남은 거리를 안내하는 표지도 나왔다. 중간 기점까지 2.6km 남았다고. 안내 표지를 따라 쭉 걸어가면 되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길의 끝에서 휴대폰 사진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으니 놀이터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사진으로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이곳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동네마다 골목길의 풍경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나무판에 시를 적어 판화처럼 길 양쪽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익숙한 시들이 보였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나, 수능을 경험한 사람이면 한 번쯤 보았음 직한 시들이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는 그 느낌이 새로웠다.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 같이,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는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이른바, 시와 꽃이 있는 거리였다. 걷다가 시를 즐기기에는 제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걷는다면 이야기 거리도 만들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이 끝나니 대로가 앞에 펼쳐졌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이동하고, 다시 왼쪽 방향으로 큰길을 건넜다.
 
동네 한 바퀴 길 안내 표지
▲ 동네 한 바퀴 길 안내 표지 동네 한 바퀴 길 안내 표지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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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안내 표지가 다시 발밑에 보였다. 중간 반환점이 있는 공원까지 1.3km 남았다고. 웃음이 나왔다. 그냥 공원을 몇 바퀴 돌아도 될 터인데 이렇게 길을 찾아가며 걷다니... 숨겨진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어색한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부천 하얀마을 생태 놀이터의 모습
▲ 부천 상동 생태 놀이터 부천 하얀마을 생태 놀이터의 모습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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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옆 길을 따라 걸으니 개천이 보였다. 생태 놀이터로 조성된 곳. 오래된 아파트여서 제법 모양을 갖춘 생태 놀이터처럼 보였다. 물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누군가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가 싶었다. 지나는 사람에게는 산속에서 개울물을 만나는 것 같은 재미를 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싶은 궁금증을 안고 그곳을 지나쳤다.

생태 놀이터를 지나 직진하니 어느새 위로 외곽 순환도로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반환점인 호수공원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한 길이었다.

반은 왔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외곽 순환도로 밑으로 표지판이 하나 보였다. 해그늘 식물원. 꽤 많은 종류의 꽃과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시멘트 교각, 삭막한 곳에 조성된 식물원이라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것 같아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반환점이 있는 공원 쪽으로 방향을 트니 울창하지는 않아도 큰 나무들이 양쪽에 나란히 있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시멘트 바닥보다는 걷는 느낌이 좋았다. 걷는 길은 이래야지 싶었다.

드디어 호수공원에 진입, 멀리서도 공원 안에 있는 큰 상징물이 보였다. 아이들 놀이터에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있었다. 그제서야 오늘이 휴일이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오는 내내 코스대로 길을 따라 걷는 듯한 사람은 없었고, 산책 겸 나와 골목을 거니는 한두 명을 마주칠 뿐이었다. 이곳에 오니,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공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가까이의 공원은 네모 반듯한 외곽을 따라 걷기에만 충실했는데 이곳은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조형물도 많았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벤치도 나무 사이사이로 하나 둘 놓여 있어서 아무 곳이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된 느낌이 썩 괜찮아 보였다.  

다시 목표를 생각하고 돌아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동 IC 진입 진출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이제부터는 직진만 하면 출발한 곳까지 길을 찾는 수고가 필요 없는 구간이었다.

아는 곳이라서 눈 돌릴 곳도 많았다. 안중근 공원도 지나고, 백화점도 지나고, 대형 마트도 지나며 더위를 피해 지하도와 지상 도로를 오르내리며 걸었다.
 
길냥이에게 먹이 주는 곳
▲ 길냥이 길냥이에게 먹이 주는 곳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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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으면 목표한 동네 한 바퀴, 6km 구간이 끝난다. 무념무상, 걷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우리는 걷다가 길냥이도 만났고 멋진 조형물 앞에서 어떤 의미일지 서성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노는 공원도 몇 개 지나며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도 남겼고, 시가 있는 거리에서는 아는 만큼의 시와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 전문을 낭송하기도 했다.

목적지를 잃지 않도록 길에 박아놓은 길 안내 표지와 청소년을 위한 상담 전화 안내 등, 발 밑에 꽤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곧 시작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깃발과 로고와 다양한 포스터 등 길 위에 넘치는 정보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구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코로나 시대 새로운 시대 구분을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눈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 무엇이든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헬스에 가도 마스크를 쓰고 운동할 것을 권하고 있고, 답답함을 이기고 운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요가 등의 그룹 운동은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혼자 운동해야 한다면, 새로운 코스를 찾아가며 걷는 것도 신선한 운동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실외에서 2m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질병관리본부에서도 권고하고 있다. 주말 운동삼아 걸었던 동네 한 바퀴, 6km 걷기는 두 시간이 걸렸다. 걷다 멈추고,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휴식의 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네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태그:#동네 한 바퀴, #6KM 걷기, #동네 골목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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